평행론(parallelismus)

철학 용어로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라이프니츠다. 그는 이 개념으로, "영혼에서 일어나는 과정들과 물질 세계 내의 사건들 사이에 완전한 평행상태가 성립하며, 비록 영혼과 그 활동들은 물질과 구별되는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물질로 이루어진 기관들을 덜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신의 철학적 중요 테제를 언급한다. 이 테제의 기초에는 당시의 메커니즘적인 자연과학적 탐구방식을 온전하게 인정하되, 그와 동시에 그 방식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동기가 놓여있다. ... 역사적으로 보면 평행론을 이끌었던 문제 제기는, 데카르트의 정신(res cogitans)과 물체(res extensa)에 관한 엄밀한 이원론(im strengen Dualismus)에 기반을 두고..

Philosophical 2024.04.17 0

용서의 어려움

기독교도 유대교도 모두 자기네가 더 온화한 종교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는 다 거짓말이다. 기독교 전통에는 처벌에 관한 엄청나게 많은 자원이 존재한다(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유대교 전통이 죄의 댓가를 엄격히 기록하고 힘들게 속죄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 두 전통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연속성이 존재한다. 대체로 기독교가 유대교와 같은 방향으로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 ‘교환적인 용서’의 개념은 기독교 복음서에도 등장한다. “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거든 꾸짖고, 뉘우치거든 용서해주어라.”(누가복음 17.3-4) … “그러니 여러분은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실 것이며, 여러분은 주께서 마련하신 위로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Philosophical 2024.04.05 2

DIY, 고구마, 그리고 Sauerteig(levain) ㅡ 또는 빵굽기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작(poiêsis)의 예로, 집을 건설하는 건축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는 의사를 들고 있다. 이때 poiêsis의 결과물은 개별적인 물건, 상태, 또는 조건 등이 될 수 있다. 그가 행한 최초의 구분, 즉 외부 목적을 가진 제작과 내부 목적을 가진 행위(praxis)의 구분은 미학과 관련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예컨대 독립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활동은 poiêsis의 예시가 될 것인데 비해, 하프 같은 악기 연주 같은 [역시 예술] 활동은 행위의 사례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떤 작가의 행위도 내적인 목적을 지닌 praxis로 간주될 수 있다. 비록 그 최종 결과물은―이것은 행위가 목적론적인 완성에 이를 때가 아니라 오히려 중..

etc. 2024.03.30 2

노트 필기

"김교수, 막스 셸러 'Gefühlsdrang'이란 개념 설명해줄 수 있수?" 수화기 너머 낯익은 목소리. 수년 전 이미 정년하신 어떤 선배 교수님이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예? 셸러요? Gefühlsdrang이라 ... 글쎄요,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가물가물하네요 ..." 학문에 뜻을 둔 어떤 사람이 당신께 설명해달랬단다. "유학 시절 오르트 교수 수업 때 셸러도 다루었었긴 한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도 기억날만한 게 있나 한번 찾아 보고 연락 드릴께요." 연구실 서가 귀퉁이에 꽂혀 먼지만 맞고 있던 낡은 필기노트 묶음을 꺼내 펼쳐보았다. Wolfgang Orth, "철학적 인간학" 강의 기록이었다. 1990년 7월 6일 강의 내용일테..

etc. 2024.02.2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