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bs 15 (2026. 7. 14)

6개월짜리 평화 암 환우의 시간은 달력으로 흐르지 않는다. 6개월 단위의 정기검진으로 흐른다.검진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은 요상하게 바빠진다. 몸은 별다를 것 없어도, 머릿속은 이미 온갖 가능성을 혼자 다 검토하고 있다. 의사보다 내가 먼저 진단을 끝내는 셈이다. 오늘도 아침 일찍 병원으로 출근했다.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채혈실.하나하나 꽉꽉(?)채워져 통에 담기는 용기들을 보면 늘 드는 생각이 있다.'저 많은 피가 정말 다 필요한 걸까?' 채혈하는 분들은 능숙하게 몇 통이고 받아 가는데, 환자인 나는 속으로 계산한다.'이 정도면 내 혈액 재고 관리에 문제가 생기는 거 아닌가?' 채혈이 끝나면 간단히 요기를 하고, 이제 두어 시간짜리 기다림이 시작된다.진료 대기실은 묘한 곳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은 거..

etc. 2026.07.14 2

Krebs 14 (2026.4.6)

선배 암환자인 철학자 피터 라베 선생은 내게 이런 조언을 건넸었다.“아직도 인생에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으니, 미래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계획(outrageous plans)도 마음껏 세우시라”https://philkant.tistory.com/entry/Krebs-3-20241292025510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당장이라도 히말라야에 깃발이라도 꽂으러 갈 기세였다. 하지만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나의 '담대한 계획'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히말라야는커녕, 동네 공원 산책 가는 계획조차 “오늘 공기가 좀 차갑나?” , "미세 먼지가 많구나." 하면서 보수적으로 검토하다 포기하기 일쑤다. 담대한 계획은 고사하고, 온건한 계획들조차 내 몸 눈치 보느라 침대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라베 선생의 ..

etc. 2026.04.0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