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etc. 85

예술, 철학 그리고 호크니의 봄

>는 예술비평가 게이포드(Martin Gayford)가 화가 호크니(David Hockney)와 오랜 기간에 걸쳐 나누었던 대화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우리말 번역이 나온지는 좀 오래됐는데 난 최근 어느 FM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방송 작가도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원제는 Spring cannot be cancelled이니 번역서(주은정 옮김, 시공사, 2021)의 제목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림을 잘 몰라서 그런가 책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호크니의 그림들이 별다른 감흥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무식하니 용감하게 평하자면, 그저 조금 단순한 터치로 그려낸 풍경화와 정물화가 대부분이며, 첫인상으로는 사물에 대한 표피적인 묘사에 불과하고 뭔가 깊이가 부족해 보인다. 내가 갖..

Miscellaneous/etc. 2025.02.11

Fulmen e caelo sereno

2024년 12월 3일은 국가적으로는 fulmen e caelo sereno (청천벽력) 같은 사건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a WTH moment 같은 일로 인해 이래저래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거 같다. 지금도 장난 아니게 쪼그러든 기억력 수준이 치매로 이행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한 세기가 넘게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정치ㆍ사회적 격변을 몸소 체험한 철학자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한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부실한 구석이 많은지를 다시금 뼈저리게 실감케 한다. 104세 노옹은 정치 지도자들의 "공동체 의식과 역사관 부재"를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짚었다. 또 다른 노철학자는 "이념과 이해관계"에 얽혀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당장 내 눈앞의 이익"..

Miscellaneous/etc. 2025.01.30

동글이를 떠나 보내며..

2018년부터 힘든 구간을 함께 달려준 동글이가 당근을 통해 새 주인을 찾아갔다.불광천을 따라 한강 방면으로 하늘공원으로 또 동부이천동까지 .. 대전에 따라와서는 출퇴근을 책임져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갈비 두 대 골절상까지 함께 겪어야 했던 찐 친구. ㅎ아침 출근 전부터 새 주인 오기 전에 쌓여있던 먼지 닦아주고 타이어 공기까지 배불리 채워주느라 왔다갔다 하니 와이프가 뭘 그렇게까지 부산을 떠느냐고 ..히스토리를 함께헌 물건은 그냥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네. 이 정도 예의는 갖춰 보내야지. 암. 잘가라 ~. 새 주인 잘 모시고, 내게 못 받은 사랑까지 듬뿍 받기를 …

Miscellaneous/etc. 2024.12.24

DIY, 고구마, 그리고 Sauerteig(levain) ㅡ 또는 빵굽기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작(poiêsis)의 예로, 집을 건설하는 건축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는 의사를 들고 있다. 이때 poiêsis의 결과물은 개별적인 물건, 상태, 또는 조건 등이 될 수 있다. 그가 행한 최초의 구분, 즉 외부 목적을 가진 제작과 내부 목적을 가진 행위(praxis)의 구분은 미학과 관련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예컨대 독립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활동은 poiêsis의 예시가 될 것인데 비해, 하프 같은 악기 연주 같은 [역시 예술] 활동은 행위의 사례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떤 작가의 행위도 내적인 목적을 지닌 praxis로 간주될 수 있다. 비록 그 최종 결과물은―이것은 행위가 목적론적인 완성에 이를 때가 아니라 오히려 중..

Miscellaneous/etc. 2024.03.30

노트 필기

"김교수, 막스 셸러 'Gefühlsdrang'이란 개념 설명해줄 수 있수?"수화기 너머 낯익은 목소리. 수년 전 이미 정년하신 어떤 선배 교수님이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어리둥절했다."예? 셸러요? Gefühlsdrang이라 ... 글쎄요,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가물가물하네요 ..."학문에 뜻을 둔 어떤 사람이 당신께 설명해달랬단다. "유학 시절 오르트 교수 수업 때 셸러도 다루었었긴 한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도 기억날만한 게 있나 한번 찾아 보고 연락 드릴께요." 연구실 서가 귀퉁이에 꽂혀 먼지만 맞고 있던 낡은 필기노트 묶음을 꺼내 펼쳐보았다. Wolfgang Orth, "철학적 인간학" 강의 기록이었다. 1990년 7월 6일 강의 내용일테니..

Miscellaneous/etc. 2024.02.29

Life & Bildungsgedichte

Louise Bogan (1897–1970) At first, we want life to be romantic; Later, to be bearable; Finally, to be understandable. "나뭇잎 사이로"로 유명했던 싱어송 라이터 조동진(1947~2017) 의 곡 "제비꽃"의 노랫말이 Bogan의 구절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비꽃 (원곡: 조동진)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음 ~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면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음 ~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너머 먼눈길, 넌 웃으며 내게 말..

Miscellaneous/etc. 2023.12.28

寫經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도리천에 계시면서 어머니를 위하여 설법하셨다." 경전을 옮겨 적다가 문득 내 글씨체가 누군가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유품 정리하다 발견한 전화번호 수첩에 그 답이... 경전의 세부 내용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또 오늘의 일반적인 가치관과 무척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지만, 하나는 알겠다. "착하게 살아라!" 그러고 보니 79년 여름 해인사 백련암에서 뵈었던 性徹 스님도 바로 이 말씀을 했었다! "부처님 가르침은 딴 거 없다. 착하게 살라는 거다." 다 마치고 보니 이 나이 먹도록 오롯이 누군가를 위해 해본 일은 처음 같다. 숙제를 내주셨던 스님께 감사할 일이다.ㅎ 대가족에 시집 오셔서 어지러운 세상 탓에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하셔야 했던..

Miscellaneous/etc. 2023.10.13

남미에 간 이유를...

"교수님, 저 책 내게 되었어요. ... 직접 드려야 도리이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택배로 보내드리려고요. ..." 간만에 날라온 카톡 문자 그리고, 택배 꾸러미. 나이탓인가, 살짝 긴장감(걱정!)을 주면서 한 호흡에 읽게 될만큼 글의 전개가 흥미롭다. 물론 자극적이지는 않다. 어쨌든 언제 이런 경험을 다 했나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기억 속 이미지와 사뭇 다른 주인공을 마주하는 듯했다. 당찬 건 좋은데 앞으로 또 비슷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급적 든든한 사람(!)과 함께 하기를. 공감되는 구절들... 어쩌면 지금 20대 젊은이들은 라떼 세대의 그 시절보다 더 성숙한 것 같기도 하다. "노인네들은 철이 없고, 젊은 애들은 싸가지 없네..." 어쩌구하고 수업중 내뱉었던 말을 되삼킬 수도 없고 ..

Miscellaneous/etc. 202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