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etc. 90

맥아더와 아이크

"맥아더와 식사를 할 때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알게 되지요. 그러나 아이크(아이젠하우어)와 식사를 같이 하면 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된답니다." 두 사람을 가까이에서 경험했던 뉴욕 타임즈 기자가 한 말이란다.모르긴 해도 어설픈 리더십 강의의 단골 소재 정도는 될만도 하긋다.그런 강의를 통해서라도 - 대개는 인맥쌓기가 목적이겠다마는 - 꼭 리더가 되겠다는 욕망을 지닌 사람이라면 난 되려 아이크 류의 인간과는 조금(!) 거리를 두라고 조언하겠다. 아이크 같은 사람은 내 이익과 무관하게 내게서 어쨌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가고야 말테니까.

Miscellaneous/etc. 2025.04.01

Krebs 7 (2025.3.7)

https://youtu.be/Az-MGC8JPWg?si=rLHsTdppDLPhMWhJ "출발지에서 종점까지 빤히 보이는 길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그런 길이 있다면 질려서 운전하는 맛이 없을 겁니다."유학시절 독일 아우토반 위에서 내가 간파했던 독일 고속도로와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차이가 바로 이거였다! 난 운전할 차가 없어 얻어 타는 게 전부였지만, 언덕과 고개, 산맥으로 가득한 한반도와 달리 드넓은 평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굳이 완만한 곡선으로 뚫은 이유는 십분 짐작되고도 남았다. "[인간은] 앞날을 미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겁니다. ...만약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면 살맛이 안 날 것입니다. ...인생은 모르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어나..

Miscellaneous/etc. 2025.03.08

Krebs 6 (2025.2.27)

방사선 조사 후유증은 상당히 늦게서야 나타난다고들 하는데, 벌써 통증 사흘째. 대낮부터 누워있자니 기분이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비몽사몽 진입 중에 별안간 휴대폰이 울린다. ”요새 출근 안 해? 이사 전에 보자더니 왜 감감 무소식이야?“ 한줌도 안 되는 친구 중 한 녀석이 안부 전화다. 최후까지 내곁에 남는 건 누굴까?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이다.어쩌면 마누라나 자식이 아니라 친구일지도. 이도 저도 아니면 반려동물이라도 키워야 할라나? 아니지. 말년에 갸들 개모차나 밀고 다니는 집사 노릇은 할 짓이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저번에 애니매이션에서 봤던 것 같은 약간 어수룩한 AI 장착 로봇이 낫지. "대체 어떻게 산 거냐? 암에나 걸리고." 헉, 이건 얼마 전 인터넷에서 어떤 암 환우가 암환자에게 가장 ..

Miscellaneous/etc. 2025.03.07

Krebs 5 (2025.2.17)

방사선 치료 담당의사는 아들 녀석 나이 정도나 되었을까, 앳된 여의사다. 눈빛이 초롱초롱… '사이버나이프'라는 정말 생소한 이름의 치료법으로 결정되었단다. 여전히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가 ㅡ 평소 잘 꾸지도 않던 요상한 꿈은 비몽사몽간에 또 왜 그리 자주 꾸는지! ㅡ 포기하고, 대신 큰 병원 외래로 가기 전까지 원래 다니던 대전 병원 어플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생검 확인 작업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잠이 들긴 했었나? 새벽에 눈이 떠져 폰으로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암 전문 기관 의사들이 공동 집필한 논문을 찾을 수 있었다. 국내엔 2002년경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술되기 시작한 것 같으니 아직 보급된 지 20여 년밖에 안 된 새로운 방사선치료기법인가 보다. 금침을 체내에 영구적으로 삽입하..

Miscellaneous/etc. 2025.03.07

Krebs 4 (2025.1.21)

방사선 종양학과 대기실은 머리에 두건 쓴 여성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부작용 때문이리라. 나야 여차하면 집에서 머리카락을 밀어내면 되니 그 사람들보다야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어떤 여성 환자가 간호사에게 잔뜩 불만을 털어놓았다. 몸이 무척 불편하고 보호자도 없는 듯 보였다. 나중에 병원 관계자가 와서 진정시키는 걸 보고서야 내 마음도 평정을 되찾았다. 새벽에 깨어 폰 들여다보다 우연히 어느 암 환자 블로거의 글을 발견했다. 어차피 공동주택인 아파트 단지 내에서 지들이 데리고 아니 모시고(!) 다니는 반려동물 똥오줌도 분간 못해 치우지도 못하는 인간들이 천지 삐까리인데, 그들한테 뭔 제대로 된 위로를 받아내겠다고 ㅎ."Quid desideras, quod consolatus es ab..

Miscellaneous/etc. 2025.03.07

예술, 철학 그리고 호크니의 봄

>는 예술비평가 게이포드(Martin Gayford)가 화가 호크니(David Hockney)와 오랜 기간에 걸쳐 나누었던 대화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우리말 번역이 나온지는 좀 오래됐는데 난 최근 어느 FM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방송 작가도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원제는 Spring cannot be cancelled이니 번역서(주은정 옮김, 시공사, 2021)의 제목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림을 잘 몰라서 그런가 책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호크니의 그림들이 별다른 감흥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무식하니 용감하게 평하자면, 그저 조금 단순한 터치로 그려낸 풍경화와 정물화가 대부분이며, 첫인상으로는 사물에 대한 표피적인 묘사에 불과하고 뭔가 깊이가 부족해 보인다. 내가 갖..

Miscellaneous/etc. 2025.02.11

Fulmen e caelo sereno

2024년 12월 3일은 국가적으로는 fulmen e caelo sereno (청천벽력) 같은 사건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a WTH moment 같은 일로 인해 이래저래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거 같다. 지금도 장난 아니게 쪼그러든 기억력 수준이 치매로 이행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한 세기가 넘게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정치ㆍ사회적 격변을 몸소 체험한 철학자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한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부실한 구석이 많은지를 다시금 뼈저리게 실감케 한다. 104세 노옹은 정치 지도자들의 "공동체 의식과 역사관 부재"를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짚었다. 또 다른 노철학자는 "이념과 이해관계"에 얽혀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당장 내 눈앞의 이익"..

Miscellaneous/etc. 2025.01.30

동글이를 떠나 보내며..

2018년부터 힘든 구간을 함께 달려준 동글이가 당근을 통해 새 주인을 찾아갔다.불광천을 따라 한강 방면으로 하늘공원으로 또 동부이천동까지 .. 대전에 따라와서는 출퇴근을 책임져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갈비 두 대 골절상까지 함께 겪어야 했던 찐 친구. ㅎ아침 출근 전부터 새 주인 오기 전에 쌓여있던 먼지 닦아주고 타이어 공기까지 배불리 채워주느라 왔다갔다 하니 와이프가 뭘 그렇게까지 부산을 떠느냐고 ..히스토리를 함께헌 물건은 그냥 물리적 사물이 아니라네. 이 정도 예의는 갖춰 보내야지. 암. 잘가라 ~. 새 주인 잘 모시고, 내게 못 받은 사랑까지 듬뿍 받기를 …

Miscellaneous/etc. 2024.12.24

DIY, 고구마, 그리고 Sauerteig(levain) ㅡ 또는 빵굽기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작(poiêsis)의 예로, 집을 건설하는 건축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는 의사를 들고 있다. 이때 poiêsis의 결과물은 개별적인 물건, 상태, 또는 조건 등이 될 수 있다. 그가 행한 최초의 구분, 즉 외부 목적을 가진 제작과 내부 목적을 가진 행위(praxis)의 구분은 미학과 관련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예컨대 독립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활동은 poiêsis의 예시가 될 것인데 비해, 하프 같은 악기 연주 같은 [역시 예술] 활동은 행위의 사례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떤 작가의 행위도 내적인 목적을 지닌 praxis로 간주될 수 있다. 비록 그 최종 결과물은―이것은 행위가 목적론적인 완성에 이를 때가 아니라 오히려 중..

Miscellaneous/etc. 2024.03.30

노트 필기

"김교수, 막스 셸러 'Gefühlsdrang'이란 개념 설명해줄 수 있수?"수화기 너머 낯익은 목소리. 수년 전 이미 정년하신 어떤 선배 교수님이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어리둥절했다."예? 셸러요? Gefühlsdrang이라 ... 글쎄요,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가물가물하네요 ..."학문에 뜻을 둔 어떤 사람이 당신께 설명해달랬단다. "유학 시절 오르트 교수 수업 때 셸러도 다루었었긴 한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도 기억날만한 게 있나 한번 찾아 보고 연락 드릴께요." 연구실 서가 귀퉁이에 꽂혀 먼지만 맞고 있던 낡은 필기노트 묶음을 꺼내 펼쳐보았다. Wolfgang Orth, "철학적 인간학" 강의 기록이었다. 1990년 7월 6일 강의 내용일테니..

Miscellaneous/etc. 20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