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etc. 105

Krebs 14 (2026.4.6.)

선배 암환자인 철학자 피터 라베 선생은 내게 이런 조언을 건넸었다.“아직도 인생에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으니, 미래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계획(outrageous plans)도 마음껏 세우시라”https://philkant.tistory.com/entry/Krebs-3-20241292025510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당장이라도 히말라야에 깃발이라도 꽂으러 갈 기세였다. 하지만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나의 '담대한 계획'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히말라야는커녕, 동네 공원 산책 가는 계획조차 “오늘 공기가 좀 차갑나?” , "미세 먼지가 많구나." 하면서 보수적으로 검토하다 포기하기 일쑤다. 담대한 계획은 고사하고, 온건한 계획들조차 내 몸 눈치 보느라 침대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라베 선생의 ..

Miscellaneous/etc. 2026.04.06

21세기 실리콘밸리에 나타난 칸트? 팔란티어의 온톨로지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원유가 그냥 기름덩어리일 뿐이듯,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데이터는 그저 디지털 쓰레기에 불과할 수 있다.이 무의미한 데이터 더미에 철학적 마법을 부려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든 인물이 있으니 바로 팔란티어(Palantier Technologis)의 CEO, 알렉스 카프(Alexander Caedmon Karp)다. 그는 왜 일반인은 물론 공학자들, 심지어 철학 전공자들(특히 영미 철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생소할 수 있는 온톨로지(Ontology, 존재론)라는 개념을 외치고 있을까? 카프 그리고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틸(Peter Andreas Thiel)은 모두 철학 전공자라는 점뿐만 아니라, 톨키니스트(반지의 제왕의 작..

Miscellaneous/etc. 2026.02.01

Krebs 13 (2026.1.13)

약은 줄고, 마음의 무게는 늘고 ..인생은 해석의 예술이라지만 일상의 작은 경험들은 해석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난해한 텍스트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나름 평생 서양철학의 개념들로 세상의 문법을 해독하느라 애써왔지만, 정작 이번 정기 점검 결과와 함께 병원 주치의가 내준 처방전은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Krebs환자라는 원치 않던 새로운 '직함'을 단 이후, 나는 매일 아침을 수많은 알약을 삼키며 시작한다. 그중에는 건강보험의 따뜻한 품을 거부하는, 이른바 '비급여'의 몸값을 자랑하는 비싼 약들이 섞여 있다. 통장에 찍히는 연금의 잔고와 내 몸 속 Krebs 세포가 사멸하는 속도 사이의 긴장 관계가 신경 쓰이던 나는, 5분 이내의 거의 기계적인 말만 하는, 아직 한창인 나이의 주치의에게 슬쩍 회의 섞인..

Miscellaneous/etc. 2026.01.15

오스카 와일드와 나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집을 처음 읽었던 때는 아마도 초등 2-3학년 정도였을 듯하다. 사촌 형님들 방 책꽂이에 꽂혀 있던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니 이 제목이 틀린 것일 수도 있겠다)을 하나씩 빼내서 읽었던 건, 내가 조숙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어린이가 읽을 만한 책이나 달리 가지고 놀 장난감이 집안에 없어서였다. 대가족의 3형제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아이였다. ― 세상의 모든 둘째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 ― 그러다 보니 난 예컨대 대부분 또래 애들이 타고 놀던 세발 자전거나 여타 장난감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비록 직접 읽어보진 않았지만, 영국 왕실의 차남 해리 왕자가 수년 전 펴낸 자서전 제목이 “Spare”라는 보도..

Miscellaneous/etc. 2025.12.26

Krebs 12 (2025.11.28)

한 해의 마침표를 찍을 시기가 되어서일까, 문득 달력의 메모들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다가오는 12월 3일은 이 나라가 특이한 계엄 선포로 인해 본래의 궤도를 벗어나 헤매는 불행이 시작된 지 만 1 년이 되는 날이고, 또 개인적으로는 공식적인 Krebs 진단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나라 전체가 방향을 잃은 지 1년이 다 저물도록, 정치권, 사법부 그리고 일반 국민들마저도 현재의 혼란을 초래한 진정한 원인을 두고 패가 갈려 서로를 물고 뜯기에 여념이 없다. 수십 년 이어진 동창들의 우정이 정치적 견해차로 갈라지고, 심지어 별 갈등 없이 잘 지내던 부부까지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싸운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Krebs 진단이 개인적인 불운임은 틀림없지만, 역설적으로 병으로 인한..

Miscellaneous/etc. 2025.11.28

사라진 근대사 100 장면

벌써 오래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인데, 읽다가 많이 불편해져서 아무데나 던져뒀다가 결국 1권을 다 읽었다. 여전히 2권 읽기가 망설여진다. ㅎ. "우리는 명나라의 아들이로다”1749년 5월 9일[영조, 명나라 계승 선언]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이 벌어지고 조선은 오랑캐 청에 항복합니다. 오랑캐 말발굽에 짓밟히던 대륙에서는 1644년 명이 멸망합니다. 1662년 명 황실 잔당인 남명이 망했습니다. 결국 대륙은 '오랑캐' 청나라가 주인이 됐죠. 그사이 조선에서는 효종이 죽고 현종이 죽고 숙종이 왕이 됐습니다.전쟁 냄새는 사라지고 태평성대가 왔습니다. 1704년 2월 14일입니다. 숙종이 느닷없이 어전회의에서 이리 한탄합니다. "명나라가 망한 지 올 4월로 60년이다. 숭정 황제가 나라를 잃으니 울음이 솟..

Miscellaneous/etc. 2025.10.26

AI 혁명을 헤쳐나가려면 위대한 철학자가 필요할 것이다 - 구글의 데미스 하사비스

AI 혁명에는 수많은 AI 및 ML 연구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컴퓨팅 하드웨어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예상치 못한 분야, 즉 철학자도 필요할 수 있다.구글 딥마인드의 CEO이자 공동 창립자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류가 첨단 AI라는 미지의 영역을 헤쳐나가도록 인도할 심오한 철학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해 고심해 왔다. 그의 관찰은, 현재 진행 중인 AI 혁명의 매혹적이고 잠재적으로 중요한 측면을 강조한다.하사비스는 "훌륭한 철학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세대의 위대한 철학자는 어디 있나요? 칸트나 비트겐슈타인,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인물들 말입니다."그는 이러한 철학적 마인드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를 다음 단계로 이끌어가려면 이러한 철학적 사고가..

Miscellaneous/etc. 2025.09.20

Krebs 11 (2025.7.18)

대학 병원 진료 대기실은 언제나 만원.아픈 사람들 대부분은 노령 인구다. 헤아려 보진 않았지만, 환자 본인뿐 아니라 보호자도 태반이 노인이다. 환자나 보호자나 상태가 영 ~ . 그러다 보니 진료 이후 일정이나 다음 진료 예약 사항을 제대로 알아듣고 환자를 이끌고 다녀야 할 보호자 자신이 환자 못지않게 청각이나 기억력이 거의 장애급인 경우를 정말 자주 보게 된다. 진료실 밖에서 간호사 설명을 들으면 뭐하나, 두세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와 묻고 또 묻고 … 나의 가까운 미래를 보는 것이라 생각하니 착잡한 기분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채혈실 들러 피 뽑히고 늦은 아침 떼우고, 그래도 통상 내 진료 시간까진 두어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이 병원 1 층 한 구석엔 미니 화랑 같은 공간도 있으니 사정이 ..

Miscellaneous/etc. 2025.07.18

法과 劍, 그 어그러진 影 von ChatGPT

Homunculus에 관한 학술적인 질문엔 계속 거짓말로 뻔뻔하게 응대하던 챗지피티와 Perplexity.원서 해당 페이지를 캡쳐해 들이미니 그제서야 오류를 인정하고 "죄송"하다고."번역서나 2차 해설에서 개념을 정리하며 추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착오가 생겼단다.결국 AI 헛소리의 뿌리는 칠칠치 못한 빙구리 인간의 허접쓰레기(글)라는 얘기.내가 다시, "너를 도저히 믿지 못하겠어"하니까 반응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정확성에 오류가 있었던 부분은 분명히 인정합니다. 당신이 신뢰를 보낼 만한 정보를 원하셨고, 저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한다. 혹시 너 시도 쓸 수 있겠냐 하니, 반색이다. "물론이죠! 어떤 주제나 분위기의 시를 원하시나요? 예..

Miscellaneous/etc. 2025.07.11

Krebs 10 (2025.6.19)

에세를 읽다 보니 새삼 병을 대하는 몽테뉴의 태도가 작지 않은 울림을 준다.너는 아픈 것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병의 도움 없이도 죽음은 너를 능히 처분한다. 어떤 이들은 병이 죽음을 멀리 떼어 놓기도 하는데, 자기들은 이제 다 끝나 죽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더 오래 살았던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상처들이 그렇듯 치료해 주고 건강을 돌려주는 병들도 있다. 결석은 흔히 당신 자신보다 더 싱싱하게 살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극도의 노년기까지 줄곧 이 병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게 되지만, 자기들이 먼저 이 병을 떠나지만 않았다면 이 병은 훨씬 더 오래 그들과 동행할 참이었다. 병이 당신을 죽이는 것보다 당신이 병을 죽이는 경우가 훨씬 흔하며 [병이 치료되었다는..

Miscellaneous/etc. 2025.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