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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와 나

Kant 2025. 12. 26. 22:42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집을 처음 읽었던 때는 아마도 초등 2-3학년 정도였을 듯하다. 사촌 형님들 방 책꽂이에 꽂혀 있던 <세계단편문학전집>(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니 이 제목이 틀린 것일 수도 있겠다)을 하나씩 빼내서 읽었던 건, 내가 조숙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어린이가 읽을 만한 책이나 달리 가지고 놀 장난감이 집안에 없어서였다. 대가족의 3형제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아이였다. ― 세상의 모든 둘째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 ― 그러다 보니 난 예컨대 대부분 또래 애들이 타고 놀던 세발 자전거나 여타 장난감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비록 직접 읽어보진 않았지만, 영국 왕실의 차남 해리 왕자가 수년 전 펴낸 자서전 제목이 “Spare”라는 보도를 접했을 때, 난 격하게 그의 처지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어쨌든 거의 다 사라진, 와일드의 소설 내용에 관한 기억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굳건하게 남아 있는 단어는 The Nightingale and the Rose의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형이상학"이란 단어다. 초딩 저학년이었으니 이 낱말의 뜻은 당근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주변의 형들, 누님, 어른들한테 물어봐도 도통 이게 무슨 뜻의 어휘인지를 설명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안 계셨다. 

2022년이던가, 소설 속 그 장면을 인터넷에서 모처럼 다시 찾아 보게 되었는데, 그건 우연히 대전 남문광장에 있는 한 벤치에서 오스카 와일드가 적었다는 또 다른 글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나이팅게일과 ... 』의 내용에서 형이상학이 등장하는 장면을 옮겨보면,

 

“사랑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학생은 멀어지며 혼잣말을 했다. “무엇 하나 증명해 주지 못하니 논리학의 절반만큼도 유용하지 않구나. 게다가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늘어놓으며, 사실이 아닌 것을 믿게 하니 말이야. 한마디로 사랑은 전혀 비실용적이야. 실용적인 것이 전부인 이 시대에, 나는 다시 철학으로 돌아가 형이상학이나 공부해야겠다.”

 

‘뭔진 모르겠지만, 사랑보단 이 형이상학이란 게 훨 중요하고 재미있는 건가 보네! 언젠간 꼭 읽어 봐야지.’ ― 초딩 저학년이던 난 분명 이런 생각을 했었던 거 같다.

 

대전 남문광장 벤치의 글

 

 

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오스카 와일드의 예의 그 글귀였다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정작 정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 다시 이런 그의 글귀를 만나다니 묘한 인연이다. 휴직 없이 정상적인 정년을 맞을 수 있었더라면 공식적인 자리 같은 데서 한번 인용해 보고 싶던 말이다. 내 경험상으론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의 인삿말은 그저, 그 자리에 있는 후배 동료들에게 혹 그동안 자신이 실수한 일이나 섭섭하게 한 일이 있었다면 너그러이 이해 내지 용서해 달라는 식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헌대 “떠날 때마다 [자신이 몸담았던 장소에] 행복을 만들어낸다”? 참으로 오스카 다운 표현 아닌가!

 

오스카 특유의 재치와 역설이 잘 드러나는 다른 문장들:

 

-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내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There is only one thing in the world worse than being talked about, and that is not being talked about. 마치 내 처지를 염두에 둔 거 같다.)

 

- 아름다운 여자를 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조건 사랑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여자를 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남자를 소개해주는 것이다.(The only way to behave to a woman is to make love to her, if she is pretty, and to someone else, if she is plain. 원문보다는 의역이 더 우리 정서에 맞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