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숙교수의 논문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읽고 -
철학연구의 스타일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유형은 한 철학자의 사상을 연구하되 그 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보다는 그 사상의 도움으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시대가 당면한 문제 해결을 꾀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연구 스타일에게서 발견되는 문제점은 연구자가 드물지 않게 해당 철학에 대한 (창조적?) 오해도 불사한다는 점이다. 다른 유형은 한 철학자의 사상을 가능한 한 그 철학자의 의도에 충실하여 파악하려는 입장으로서 일종의 순수주의 내지 결벽주의(Purismus)적인 연구태도라 부를 수 있겠다. 이러한 태도를 중시하는 연구자들은 문헌적 자료나 철학사적인 배경 등에 관심을 두며, 해당 철학의 한계와 이해의 제한된 지평을 인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칸트 연구와 결부시켜 본다면 이것은 이른바 “Kantianer”와 “Kantforscher”의 대립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두 방향들 중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하는 것은 물론 쉽게 판가름날 일이 아닐 것이지만 후자가 기초가 되어 전자로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이리라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칸트 이후의 철학사를 조금만 살펴보아도 자신들의 철학적 계보를 칸트에게서 찾으려 한 철학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신칸트학파가 그랬고, 우리가 실증주의 논쟁의 대립 당사자로 잘 알고 있는 포퍼나 하버마스 등도 스스로를 칸트 정신의 진정한 후계자로 간주했다. 이러한 사실은 칸트 철학이 내포하고 있는 다면성,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적인 논의가 학문적인 엄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정당화시켜 줄 수도 있다. 더구나 어떤 사상가가 단순히 한 위대한 철학자의 권위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철학적 계보를 들먹인다든지, 또는 이미 선배 철학자들이 발견한 진리를 정확히 연구해 보지도 않고 마치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인 양 떠들어대는 경우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는 철학 연구에서 결벽주의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혜숙교수는 “방법으로서의 철학”이라는 - 논평자를 위축시키는 제목의 - 발표문에서 “칸트의 형이상학에 대한 태도와 그것이 지닌 흥미로운 ... 함의가 영미분석철학의 발전과정에서 극단화된 형태로 구체화되어 드러난다”고 하며, 그러한 점에서 영미분석철학이야말로 “칸트철학이 지니는 진실된 철학적 면모”를 계승하고 있다고 한다.(1쪽) 발표자는 우선 칸트가 형이상학을 “초감성적인 것”에 대한 지식을 욕구하는 인간지성의 활동의 결과물로 보았으면서도 그 초감성적인 것을 이론적 인식의 대상인 “무엇(what is)”으로 간주하지 않고, 단지 “대상경험의 총체적 한계조건”(9)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러한 칸트의 형이상학적 태도가 비트겐슈타인이나 카르납, 스트로슨, 데이비슨 등과 같은 영미분석철학자들에게서 “좀더 극단화된 형태”(7)로 나타난다고 한다. 예컨대 “감성에 주어질 수 없는 형이상학의 대상들에 관한 이론적 지식”이 불가능하다는 칸트의 생각과 “경험적 진리조건, 즉 검증가능성의”의 기준에 의거하여 “형이상학에 관한 진술들”이나 “술어들”, 예를 들어 “‘이데아’, ‘절대’, ‘무제약자’, ‘무한자’, ... ‘물자체’, ...‘자아’” 등의 단어들이 무의미하다고 하는 카르납의 태도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또 칸트가 “새로운 형이상학(선험철학)”이 “과학적 지식의 체계 너머의 그 무엇에 관한 사태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적 지식 체계 전체의 가능성의 조건을 다루는 것”으로 본 것 역시, 논리실증주의가 형이상학을 “과학적 지식의 체계 전체의 논리적 토대,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으로 대치”하고 따라서 “논리적 분석의 방법”만을 철학의 유일한 과제로 본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강조한다.(8)
영미철학에 관해 소박한 이해밖에 갖고 있지 못하는 논평자는 발표자의 주장 중 영미분석철학에 관한 부분은 일단 접어두고 주로 칸트와 관련된 해석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칸트의 형이상학의 중심 능력인 이성을 바라보는 카르납 등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시각,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배경으로 한 발표자의 시각이 너무 좁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칸트가 “형이상학의 가능성은 순수 이성의 전체능력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한다”(2)고 했을 때, 여기서 칸트는 이성을 한갓 인식능력에 국한시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미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칸트가 이때의 이성을 단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주어져 있는 실재 세계 내지 사태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또는 기술하는) 능력에 그치는 것으로 간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칸트의 이성은 오히려 세계 - 물론 현상으로서의 세계 - 를 구성하는(einrichten) 능력이다.
칸트의 선험철학은 발표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예비학인 동시에 존재론 내지 형이상학이다. 그것은 이성을 비판함으로써 그저 “초감성적 초월적” 존재에 관한 이론적 지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성 자신이 현상으로서의 존재를 구성해 낸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형이상학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가 ꡔ순수이성비판ꡕ에서 “형이상학은 순수이성에 의한(=의해 주어진) 우리의 모든 소유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재산목록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A XX; 보충 논평자)라고 했을 때, 그 소유물은 다름 아닌 현상계의 존재원리인 감성형식이나 순수오성개념 등이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성비판(선험철학)은 현상으로서의 존재의 가능성을 다루는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발표자가 “존재론”이라는 어휘를 놓고 “의미의 이중성과 불분명성”(4) 운운한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발표자는 그저 칸트가 선험철학이 “초감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포함한다는 점에서”(3) 또 “초감성적인 것과의 연관을 담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 의도에서”(4) 존재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추측하지만, 오히려 칸트의 의도는 경험 가능한 대상으로서의 존재를, 즉 현상으로서의 존재를 존재 일반의 차원에서 문제삼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 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발표자는 칸트가 형이상학을 “총체성과 체계성의 문제”이자 “전체를 두고 사고하는 하나의 방법, 혹은 과정”으로 파악한 것이 논리실증주의의 논리적 분석의 방법과 상통한다고 한다. “논리적 분석의 방법을 통해서 과학적 진술의 체계를 가장 단순한 원초적 진술들과 그것들로부터의 복잡한 진술들의 구축, 진술들 간의 논리적 관계”(8)를 밝히는 작업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원초적 진술들이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전제된 존재 세계에 관한 진술로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판적 검토도 거치지 않은 것이라 여겨진다. 이에 비해 칸트의 선험철학의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존재 세계의 가능성을 먼저 밝히고 그 존재 세계에 대한 경험의 전체적인 의미나 한계를 읽어내고자 신, 자아, 자유 등과 같은 이념들을 문제삼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작업이 서로 유사하다는 주장은 억지 아닐까? 만일 칸트가 논리실증주의자들을 평가한다면, 아마도 그들이 경험의 대상으로서의 실재만을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인정한 것은 독단주의에, 그리고 그 경험적 실재를 넘어서는 세계를 무의미하다고 한 것은 회의주의에 각각 해당된다고 하지 않을까?
또 논평자는 칸트의 형이상학의 이념들을 단순히 총체성, 완결성에 대한 욕구와 결부시켜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발표자가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념들은 인간이성이 경험의 도움 없이 자신으로부터 만들어 내는 개념으로서 대상경험의 총체적 한계조건을 드러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특히 “도덕, 입법, 종교와 관련해서는 (선의) 경험 자체를 가능케 하는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ꡔ순수이성비판ꡕ B 375; 강조 논평자) 이러한 칸트의 입장과, “‘이데아’, ‘절대’, ‘무제약자’, ‘무한자’, ... ‘물자체’, ...‘자아’” 등의 형이상학적 개념들이 무의미하다고 하고 결국 “형이상학의 진술을 느낌의 문제로 둠으로써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것으로 더욱 격하시켜”(7; 강조 논평자) 놓은 카르납의 관점이 과연 화해할 여지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논평자는 발표자가 칸트의 형이상학적 태도를 해석하는 근거로 ꡔ형이상학의 진보ꡕ를 줄곧 인용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우려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논평문을 마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이 저술은 칸트가 죽고 난 직후 그의 제자 Friedrich Theodor Rink가 편찬(Kompilation)해 출판한 유고이며 따라서 집필 시기나 출판 시기로만 보면 원숙기 칸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곳에서 편찬자가 개악한 부분들(korrupte Stellen)을 포함하고 있다.(학술원판의 Gerhard Lehmann의 “Einleitung”, XX 479 이하 참고) 어디까지가 칸트의 글이고, 어디부터가 Rink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의 기록인지를 가려내기가 어려운 작품인 것이다. 칸트는 당시 강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던 비판철학의 용어 대신에 주로 좀더 친숙하고 일반화된 볼프 형이상학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비판철학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키고자 했으나 -그는 당시 베를린 학술원의 심사위원들의 친-볼프 성향을 고려하였을 것이다 -, 이 점이 오히려 현대의 독자들을 더 혼란시키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발표자가 이 작품으로부터 형이상학에 대한 칸트의 정의로서 인용한, “형이상학은 이성에 의해 감각적인 것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초감성적인 것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학”(2)이라는 구절은, 칸트가 형이상학을 독단주의자들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정의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칸트 자신의 최종 견해를 표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