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란 [어떤 것이 그] 범위나 정도에 의해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크기이다. 인간은 자신의 정신 능력으로 그러한 범위나 정도를 가늠해 보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때 그 거대함이 주는 공포는 (예를 들어 우리의 지척에서 울리는 천둥소리나 높고 험한 산맥 같은 것들) 인간이 그 크기의 범위와 정도를 스스로 평가하여 자기 자신과 비교함으로써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만, 위협적인 것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그 순간에 안전한 장소에 있다면, 그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의 정신 능력을 한 곳에 모으게 되는데, 이때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그 현상의 크기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불안감과 경이감(이 후자는 고통을 지속적으로 극복하는 데에서 나오는 쾌적한 감정이다)이 발생한다."
칸트에 따르면, 상상력이 처음에 포착한 감각자료의 일부를 상실함이 없이는 전체를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수학적 숭고)나 힘(역학적 숭고)을 지닌 대상이 숭고의 대상이 된다.
그가 살던 시대만 해도 그 정도의 크기나 위력을 지닌 대상을 자연 현상 가운데나 건축물 등에서 접하여 숭고미를 경험하기가 어렵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지구조차도 우주에서 한눈에 감상할 수 있고 적어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시시각각 캡처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숭고미를 말할 여지가 있을까? 이런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나름 정당하다고 본다.
그런데 …
돌로미티 패스에서 바라 본 알프스는 칸트의 설명이 대부분 옳았다는 점을 사실로 증명해 주었다. 엄청난 크기의 대상을 일정한 거리 -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 를 두고서 감상한다면 숭고의 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
카메라의 앵글 안에 포착된 대상은 이미 상상력의 한계 안의 것이니 실제의 숭고의 대상과 같은 것일 수는 없겠지만 …
"어떤 자연 현상에 대한 지각이 우리에게 무한성에 대한 이념을 일깨워 줄 경우, 그러한 자연은 숭고하다."
"우리는 숭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숭고란 (자연의) 하나의 대상인데, 우리의 심성이 그것을 머릿속에 그릴 때, 자연[의 그 대상]이 어느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기 때문에 이념의 현시로서 생각되는 것이라고."
무한성의 이념이 정신적 orientation에 대한 필요 즉 철학의 출발로 나타난다면, 숭고의 경험은 결국 철학의 출발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판단을 내릴 때, 우리의 심성은 고요한 관조의 상태에 머물며, 자연의 숭고를 떠올릴 때에는 동요를 느낀다. 이러한 동요는 (특히 그것이 시작될 때) 한 물체에서 반발하는 힘과 끌어당기는 힘이 급속하게 교차할 경우 발생하는 진동 상태와 비교될 수 있다. 상상력의 극한은 (상상력은 직관이 사물을 포착할 때 그러한 극한에 몰리게 되는데) 말하자면 그 상상력 자신이 그 속에 떨어져 버릴까봐 두려워하는 심연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상력의 노력을 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초감성적인 것에 관여하는 이성 이념[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극한적인 것이 아니라, 합법칙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한 감성에게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이성에게는 다시금 그와 동일한 정도로 매력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숭고의 대상은 무한에 도전해서 그 무한을 어떻게든 유한 속으로 끌어내리려는 인간의 학문적 노력과 분발을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위협하는 것처럼 깎아지를 듯이 치솟은 기암괴석, 번개와 천둥을 동반하며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무서운 파괴력을 과시하며 이글거리는 화산, 엄청난 상흔을 남기고 지나가는 태풍, 노호하듯 파도가 몰아치는 끝없는 대양, 힘차게 흘러내리는 높은 폭포 등과 같은 것들은, 우리들의 저항력을 그것들과 비교할 때 아주 미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안전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곳에 있기만 하다면, 그러한 광경은 두려움을 주면 줄수록 더욱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러한 대상들은 우리의 정신 능력을 일상적이고 평범한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또 우리의 내부에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 능력이 있어서, 우리 자신에게 자연이 보여주는 절대적인 힘에 견줄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그러한 대상들을 기꺼이 숭고하다고 부르는 것이다."
"무한한 우주의 크기에 대한 수적인 표상이나, 영겁, 신의 섭리, 인간 영혼의 불멸 등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은 어떤 숭고함과 위엄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내부에 있는 본능보다 우월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 있는 자연(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한에 있어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한, 숭고는 자연의 사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심성 속에만 있는 것이다. 우리 정신 능력의 힘에 도전하는 자연의 힘들을 포함하여, 우리에게 이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모두 (비본래적인 의미에서이긴 하지만) 숭고하다고 불린다."
"도덕적인 것과 유사한 심성의 상태와 결합되어 있지 않은 그러한 자연의 숭고에 대한 감정은 아마 사실상 생각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이 아무리 숭고한 것일지라도, 인간이 자신의 이념을 사용할 경우, 그 인간의 손아귀 속에 들어올 만큼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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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작품이 감동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이 없다면 적막강산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산골짝 사이사이나 기암절벽에 그림 같은 건물 짓고 그 걸로도 모자라 목숨 걸고 레일 깔고 케이블 탑 설치해서, 가능한 한 숭고의 감정을 더 가까이 느껴보고자 한 인간들의 도전이 있기에 신의 작품이 더 빛나 보이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