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학 이론으로서 『판단력비판』의 특징
1.1 아름다움(숭고함)의 영역을 인식과 욕구, 즉 진리와 선의 영역으로부터 구별하여 독립시키면서 동시에 이 두 영역의 상호 조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1.2 그러나 칸트는 인식의 문제를 판단의 문제로 다루었던 것처럼 미의 문제도 일차적으로 심미적 판단 즉 취미판단의 문제로 다루었다.
1.21 그는 취미판단이 개념, 정확히 말해 규정적 개념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 아니며—만일 그렇다면 취미판단은 인식판단이나 도덕판단과 동일한 셈이다—오히려 비규정적, 반성적 개념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211 다시 말해 취미판단은 인식판단에서처럼 지성의 개념들이 주어져 있고 구체적인 개별 표상들이 그것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표상이 주어져 있고 그것으로부터 보편적인 어떤 것, 즉 주관에 대한 형식적인 합목적성의 관계를 고안해 내는 데에서 성립한다는 것이다.
1.3 이는 그가 취미의 문제를 합리론 전통처럼 인식의 문제로 보려는 입장을 거부한 것을 뜻한다.
1.4 다른 한편 취미판단은 규정적 판단은 아니지만 그것과 유사하게 보편적인 것과 관계를 가지는 판단이기에 단순한 감각판단과도 같은 것일 수 없다.
1.41 그런 의미에서 영국 경험론 미학의 심리학적(생리학적)인 해석과도 거리를 두는 것이다.
1.42 감관의 자극에 의존하는 감각판단이 아니면서 동시에 일정한 개념에 기초하는 판단도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러한 취미판단이 주장하는 바가 과연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닌 판단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다.
2. 칸트의 전략
2.1 칸트는 일단 취미판단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에서 착안한 것처럼 보인다.
2.11 이는 그가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2.12 양상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것은 칸트가 『도덕형이상학 원론』이나 『순수이성비판』에서도 채택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2.121 예컨대 『순수이성비판』의 “선험적 감성론”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아프리오리한 종합판단의 실제 사례들(기하학, 수학)에서 출발하고 있고, 『도덕형이상학 원론』은 일상적인 도덕 경험이나 판단, 태도에서 출발하여 도덕법칙의 최고 형식에 도달하고 있다. → 그는 이를 “분석의 방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2.2 칸트는 ‘실제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미에 대한 판정을 내리는가?’라는 물음을 4 가지 계기(성질, 분량, 관계, 양상)에 입각해서 분석해 들어간다.
2.3 그 결과: 취미판단은 ①대상 자체에 대한 무관심적 만족을 표현하며, ②개념을 떠나서 보편성에 대한 요구, 즉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며, ③아름다움이란 특정한 목적의 내용에 따라서 가능한 대상도 아니면서 (즉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아무런 목적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합목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표상을 제공하며, 마지막으로 취미판단은 ④역시 개념에 기초하지 않으면서도 필연적인 방식으로 내려진다, 즉 누구나 반드시 동일한 방식으로 판단할 것을 기대한다.
2.4 숭고함의 판단의 경우는 4 가지 계기 분석이 조금 다르게 이뤄진다.
분량: 단적인 크기에 대한 판단 / 성질: 숭고에 대한 판단에서 야기되는 감정은 불쾌감 또는 공포, 좌절의 감정에서 쾌의 감정으로 변경되는 경외의 감정 / 관계: 숭고의 판단은 우리 내부의 마음의 능력의 소산인 이념과 관계한다 / 양상: 마음의 능력들이 제대로 기능하고 어느 정도 도야된 사람이라면 숭고에 대한 판단이 필연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3. 취미판단의 선험적 연역
3.1 취미판단의 사실에 관한 분석만으로 그것의 보편성과 필연성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3.11 다시 말해 우리가 실제로 취미판단을 내리면서 보편성과 필연성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곧 그러한 요구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 quid facti vs q. iuris
3.2 더 수행되어야 하는 작업은 취미판단의 선험적 연역이다.
3.21 선험적 연역이란 제1비판에서는 “지성개념의 선험적 연역”에서 보듯 대상 경험을 통해 주어지지 않은 지성의 개념(범주)이 어떻게 그 대상에 관계할 수 있는가, 즉 적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 칸트에게 10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소모시킨 고통스러운 작업
3.22 칸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 ‘물자체’와 ‘현상’을 구분하고, 현상으로서의 대상의 가능성이 곧 그 대상 인식의 가능성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해결했다.
3.221 우리가 사물 자체에 대한 인식에는 도달할 수 없다 하더라도 현상으로서의 사물은 인식할 수 있는데, 이 현상으로서의 사물이 우리에게 경험되기 위한 조건이 곧 범주 개념들에 의해 포섭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범주가 없으면 대상이 아예 주어질 수 없다는 것, 즉 현상으로서의 대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3 하지만 취미판단은 지성개념과 같은 아무런 규정적 개념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어떠한 선험적 연역이 필요하다는 걸까?
3.31 칸트는 앞서 정리한 것처럼 취미판단의 주장, 즉 “ … 은 아름답다”라는 주장이 단순히 감각판단, 쾌적한 감각의 만족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보편타당성에의 요구를 내거는 것이고 또 그러한 요구가 정당한 것이라면, 실제로 사람들이 어떤 취미판단에 대해 동의하든 말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 판단은 반드시 아프리오리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3.32 그리고 그것을 역시 인식능력들을 비롯한 마음의 능력들(Vermögen des Gemüts)의 조건들, 더 정확히 말하면 보편적으로 전달(소통)이 가능한 마음의 능력들의 상태에서 찾는다.
3.33 물론 여기서도 미에 대한 취미판단과 숭고에 대한 취미판단은 조금 다른 마음의 능력들과 그 관계로 설명된다.
3.331 전자는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조화, 후자는 상상력과 이성—인식능력이면서 동시에 실천능력이기도 한—의 충돌로 발생하는 전달 가능한 주관의 상태로 설명된다.
3.332 인간이면 누구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마음의 능력들을 갖고 있으며, 취미판단 시 이 능력들의 관계 역시 모든 주관들 속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자가 주관적으로 판단을 내리지만 합치(Zusammenstimmung, 감응)가 일어난다.
3.333 역학적 숭고에 대한 판정의 경우는 특히 관계나 양상의 계기에서 인간 마음의 능력들의 도야(Kultivierung)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4. 취미판단의 대상 문제
4.1 마음의 능력들을 활동시켜 취미판단의 결과로서 쾌의 감정을 야기하는 대상과 관련해서 칸트는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었다.
4.11 그는 취미판단을 대상에서 주어지는 감관적 요소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판단이 그 대상의 형식적인 요소들(형태, 규칙성 등)에 제한되어야 하고 (숭고의 경우에는 몰형식성, 크기, 힘 따위) 그것에 의해 관조될 수 있는 합목적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형식주의 미학의 특징을 보인다.
4.2 그는 나아가 아름다운 것이나 숭고한 것에 대한 주관의 직접적이고 순수한 관심, 또 그것에 의해 야기되는 쾌의 상태 및 마음의 능력들의 상태가 도덕적인 것, 선한 것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나 지각과 유사하고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 인식이나 지각의 영역과 도덕적 실천의 영역 사이의 매개가 미학적 영역에서 이뤄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