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은 국가적으로는 fulmen e caelo sereno (청천벽력) 같은 사건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a WTH moment 같은 일로 인해 이래저래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거 같다. 지금도 장난 아니게 쪼그러든 기억력 수준이 치매로 이행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한 세기가 넘게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정치ㆍ사회적 격변을 몸소 체험한 철학자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한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부실한 구석이 많은지를 다시금 뼈저리게 실감케 한다.
104세 노옹은 정치 지도자들의 "공동체 의식과 역사관 부재"를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짚었다.
또 다른 노철학자는 "이념과 이해관계"에 얽혀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당장 내 눈앞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의 문제"를 언급했다. 이분은 ”언론도 ...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법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선 이념과 이해관계를 벗어나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해관계는 그렇다 쳐도 이념의 구속이라 .. 그런데 솔직히 난 우리가 진보든 보수든 이념에 충실한 정치인이나 언론인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기사 언제부턴가 정통임을 자부하는 언론사들 조차 fake 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복제 수준의 무책임한 기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가짜뉴스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 "돈과 권력"이라던데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로 무지막지하게 생산되는 가짜 내지 편향된 정보의 기세에는 그들도 속수무책인듯 하니, 노철학자의 말씀에 토를 달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예측 불가 대통령의 경악스러운 판단 수준이나 무소불위 거대 야당의 망나니식 탄핵 칼춤보다 나를 지속적인 체증에 시달리게 만드는 건 정치인들의 리더십 부재, 사회적 미성숙 같은 추상적인 문제보다는 우리 교육 과정과 내용의 문제다.
현대 국가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권력 분할 구도가 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 할지라도 이 구분을 뛰어넘는 권력을 추구하려는 불순한 시도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묘안은, 제도나 시스템의 완성도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전문가 집단을 길러내는 교육 과정과 내용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권력 추구욕에 쉽게 굴복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명예로운 의무에 대한 인식, 자부심이 부족한 탓 아니겠는가?
예컨대, 롤즈를 언급할 것도 없이 입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헌재 재판관 만큼이나 영예로운 관직이 또 있을까마는, 후보자들 신상에 관한 보도에서조차 늘 우리 사회 보통 구성원들에게서도 맞닥뜨리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들이 거론되곤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지지난 정권 말의 대통령 탄핵 판결 직후 한 강의에서 내가 그 탄핵 판결문의 논리성을 지적했던 때가 생각난다. 듣는 내내 불편한 표정을 짓던 어느 노신사 한 분이 "그런 주제는 다루지 마시죠"하더니 곧 자리를 박차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20대쯤 되어 보이던 청년 한 명도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당시 언론은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모두 그 판결문에 대해 칭송 일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 법 적용은 기계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해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자신이 지지했든 아니든 한 나라의 원수를 권좌에서 끌어내 처벌하는 과정은 좀더 신중했어야 했지 않겠냐는 의견을 원천적 오류쯤으로 치부한다면 유사한 불행은 반복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구치소의 현대통령이 바로 그 프로세스의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이니 더 갑갑하다.
"세상의 상황이나 실망스러운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피하고, 주로 당신 자신과 가족의 행복에 집중하려 해보세요."
라베 선생이 보내 준 조언에나 집중해야 할 시간 같다. 무엇보다 계엄 난리 나고 며칠 뒤 받아 온 약봉다리 사이즈가 나를 압도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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