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counseling

P. Hadot, “오직 현재만이 우리의 행복이다”: 괴테와 고대 철학에서 현재의 순간이 지니는 가치

Kant 2022. 5. 26. 16:47

그때 정신[영성]은 미래나 과거를 바라보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이 우리의 행복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2의 이 구절은, 현재의 순간이 지니는 가치에 집중하고 인식하는 기술(the art)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 같은 고대 철학이 특히 강렬하게 살 것을 주장했던 바로 그 시간 경험에 해당하는데, 이하에서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경험에 특히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대사가 등장하는 문학적 맥락을 잊어서는 안 되며, 또 이 대사가 파우스트 2의 맥락에서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 괴테의 작품 내에서 의미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하의 논의 과정에서 바로 괴테 자신이 우리가 언급한 유형에 속하는 경험에 대한 주목할 만한 증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인용된 구절은 파우스트 2의 클라이막스들 중 하나를 표시하며, 파우스트가 내세운 최고의 존재에 대한 요구의 정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그의 옆에는 그가 그녀를 위해 마련한 왕좌에 헬레나가 앉아 있다. 그는 첫 막에서 어머니들의 나라를 다녀온 후에 황제를 즐겁게 하기 위해 헬레나를 불러내었으나 그녀와 희망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름다움의 샘이 그 강둑을 흘러 넘쳐

내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 온 건가요? …

그대에게 가장 강력한 힘이 만들어낸 동요(動搖, the stirring)를 바칩니다,

정념[열정]의 본질도;

그대에게, 애정, 사랑, 숭배, 그리고 광기도.

 

2막 전체를 통해 그리고 그리스 고전의 모든 신화 속에서 파우스트가 찾아다녔던 것은 헬레나다. 그는 켄타우로스인 케이론, 무녀인 만토와 함께 그녀에게 말을 건낸다. 그리고 마침내 3막에서 그녀는 중세풍의 요새로아마도 펠로폰네소스의 미스트라일텐데피신하게 되는데, 파우스트가 다시 그곳의 군주로 등장한다.

바로 그때 파우스트와 헬레나 사이의 특별한 만남이 일어난다. 파우스트는 중세의 기사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근대인을 형상화한 것이며, 헬레나는 트로이 전쟁의 여주인공 형태로 환생하지만 실제로는 미의 형상 그 자체이며, 결국 자연의 미를 뜻한다. 괴테는 최고의 장인 솜씨로 이 두 형상들과 상징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파우스트와 헬레나의 만남을 두 연인의 만남만큼이나 감동적으로 또 역사적 의미가 담긴 두 시대 사이의 만남으로서, 그리고 의미로 가득한 인간과 운명의 만남으로 창조해 냈다.

시적 형식이 두 연인의 대화와 두 역사 시대의 만남을 모두 표현하기 위해 매우 능숙하게 사용된다. 3막이 시작될 때부터 헬레나는 고대 비극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고 그녀의 말은 약음 삼중계의 리듬에 맞춰져 있으며, 반면 포로로 잡힌 트로이 여성의 합창단은 [고대 그리스 합창곡의 절()] 스트로프와 안티스트로프로 그녀에게 화답한다. 그러나 이제 헬레나가 파우스트를 만나고 파수꾼 린세우스가 운율이 있는 2행의 대구(對句)로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그녀는 이 미지의 시 형식에 놀라고 매료된다.

 

한 마디 말이 귀에 닿자 마자

다른 말이 이전 말을 어루만지네.

 

파우스트에 대한 헬레나의 사랑의 탄생은, 파우스트가 시작하고 그녀가 끝내는 동일한 운율의 대구로 표현되면서 그때마다 운율을 만들어낸다. 헬레나는 이 새로운 시 형식을 배우면서, 포르키야스(Phorkyas)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단어의 알파벳을 발음하는 법을 배운다. 그녀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도 말을 그렇게 예쁘게 할 수 있죠?

 

아주 쉬워요라고 파우스트가 답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해요,

그리고 가슴이 그리움으로 넘칠 때,

사람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묻지요.

 

헬레나: 누가 우리와 함께 그걸 즐기게 될까?

 

파우스트가 다시 시작한다:

 

지금 영혼은 미래도 과거도 바라보지 않아요

오로지 현재만 ―

 

헬레나: 우리의 행복이 존재한다[있다].

 

파우스트: 그건 우리의 보물,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상, 우리의 것

그리고 우리의 약속.

하지만 누가 확인해줄까?

 

헬레나: 나의 손이.

 

사랑의 듀엣은 그 순간 헬레나의 포기로 끝난다. 따라서 운율 플레이는 이제 더 이상 운율의 메아리가 아니라 손의 선물인 확인”(confirmatio)으로 끝난다. 파우스트와 헬레나는 침묵에 빠지고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껴안는다. 코러스는 축가(epithalamion)의 톤으로 이들의 포옹을 묘사한다. 그리고 사랑의 대화그리고 운율을 지닌 대화가 파우스트와 헬레나 사이에서 다시 시작되며, 우리로 하여금 시간과 드라마가 모두 멈춘 것 같은 강렬함의 순간과 다산(풍요, pregnancy)의 순간을 살게 해준다. 헬레나가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멀게, 하지만 또 너무 가깝게도 느껴져요.

그리고 나는 너무나 기뻐서 말하죠: 내가 여기 있다네! 여기에!

 

파우스트: 나는 숨 쉴 수조차 없어요. 나의 말소리는 떨리고 비틀대죠;

이건 꿈이야, 시간과 장소가 사라져 버렸잖아.

 

헬레나: 난 나이가 들며 무너져버린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제 나는 너무도 새로운 기분;

당신과 함께하니, 나는 미지의 것이라도 믿어요.

 

파우스트: 당신의 운명에 대해 골치아파하지 마세요, 정말 유니크하죠!

존재는 의무에요, 잠시뿐일지라도.

 

여기서 드라마는 마치 멈춘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헬레나와 파우스트가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이 서로의 존재에 의해 충만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때 그리스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포르키야스라는 기괴한 가면을 쓴 메피스토펠레스가 메넬라오스 군대의 위협적인 접근을 알림으로써 이 완벽한 순간을 깨뜨리고, 파우스트는 그의 부적절한 타이밍의 방해를 질책한다. 기적 같은 순간은 이제 사라졌으나, 파우스트와 헬레나가 시의 천재 유포리온을 낳는, 이상적인 아르카디아를 묘사할 때는 여전히 두 사람의 성향이 반영된다.

우리가 인용한 대화는 여러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모든 곳의 연인들을 닮은 두 연인의 대화가 흥미롭다. 파우스트와 헬레나는 사랑받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현재 존재 상태로 흠뻑 빠져든 두 연인이다. 그들은 이 현재 존재 상태만 경험할 뿐, 과거와 미래는 모두 잊어버린다. 그들의 과도한 행복은 그들에게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는 꿈 같은 비현실적 인상을 준다. 우리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을 때는,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