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일기 19

옥스포드 50주차

제국주의의 유산과 신분제 사회 영국이란 나라에서 묘한 부분을 열거하자면 수도 없을 것 같다. 자동차 핸들 위치나 차 운행 방향이 반대라는 거야 잘 알려진 일이지만 (가전 기구 플러그 모양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라 은근히 불편하다), 사회 구조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신분제 사회의 특징이 다분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근대식 의회 민주주의를 처음 정착시켰던 영국이 신분제 사회? 왕실의 권위를 이어오고 있는 전통이야 그렇다 치고, 학교교육에서 사립과 공립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 차별에 이른다. 영향력 있는 사회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명문 사립학교와 옥스브리지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마치 과거 유럽의 상류층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사교와 비즈니스를 이..

옥포일기 2010.12.13

옥스포드 47주차

북한의 연평도 포격 BBC 보도 지난 수년 간 한반도에서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일어난 주기적인 긴장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북한이 벌인 평범한 일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의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포탄에 의해 불타는 마을에서 솟구치는 연기 기둥, 겁에 질려 대피소를 찾아 뛰는 주민의 모습은 한국의 많은 연장자들이 살아 생전에 결코 다시는 보게 되지 않기를 바랬던 바로 그 장면이었으리라. 그것은 남북 해군 사이에서 간간이 벌어졌던 무력 충돌이나 전방 비무장 지대 일대에서 일어난 단편적인 총격전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수도 서울에는 패닉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비록 금융시장은 동요했고, 사람들은 내심 불안해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 바쁘고 분주한 도..

옥포일기 2010.11.25

옥스포드 44주차

옥스포드 대학의 국제적인 발전기금 캠페인 운동 "Oxford Thinking" 이 출범한지 3년도 안 되어 10억 파운드(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1조 7천7백억원인가? "0"이 너무 많아서 솔직히 자신이...)를 돌파했다고 지난 달 29일 운동본부측이 발표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훨씬 상회한 성과에 대학은 물론 지역 언론에서도 자축하는 분위기다. 대학 운영을 기금 모금에 의존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물론 없지는 않았지만... 부총장 Andrew Hamilton교수는 정부 지원이 줄어드는 가운데 기부자들이 보여준 관대함은 "옥스포드의 생명줄"과도 같다며 감사를 표시했다고. "옥스포드대가 기금 모금 캠패인을 벌여 온 지난 3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세계는 경제 침체에 빠져있었지만 우리..

옥포일기 2010.11.04

옥스포드 39주차

영국 노동당의 새 leader로 뽑힌 Ed Miliband(69년생)과 4살 위인 그의 형 데이비드 밀리반 형제로 태어나 같은 스쿨(Haverstock School)과 같은 대학(Corpus Christi College, Oxford)에서 같은 전공인 철학(PPE)을 공부한 것까지 정말 희한한 이력의 인물들이 아닐 수 없다. 에드는 토요일 치뤄진 당수 선거에서 불과 1%를 조금 넘는 차이로 형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결과 발표를 듣고 바로 동생에게 다가가 축하의 포옹을 하는 데이비드의 표정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추측컨대 대부분의 아시안들은 현장 상황을 전하는 어느 기자의 코멘트처럼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은 죽을 맛"일 형의 모습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싶다. 하지만 정작 ..

옥포일기 2010.09.27

옥스포드 38주차

교황의 일본식 사과 영국을 국가 원수 자격으로 방문 중인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제들이 저지른 성폭력에 대한 사과를 한 것으로 보도가 되긴 했는데.. 베네딕토 16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이 저지른 어린이 성추행으로 인한 엄청난 고통을 생각한다"며 "무고한 피해자들에게 '깊은 슬픔'을 표한다"고 말했습니다. (http://news.kbs.co.kr/world/2010/09/19/2163089.html) 국내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부정확하게 보도한 건지 아무튼 이곳 언론의 보도와는 큰 거리가 있다. 성폭력 희생자 대표들은 교황의 코멘트는 실제로 사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희생자 지지 모임 "One in Four" 의 콜름 오고만이란 사람은..

옥포일기 2010.09.19

옥스포드 37주차

16일부터 4일간의 교황 베네딕토16세 방문을 앞둔 영국은 요즘 한창 가톨릭교회와 교황에 대한 성토로 시끄럽다. 그동안 보고되었던 가톨릭 사제의 미성년 신도들에 대한 성폭행 사례들, 그리고 그 스캔들에 대한 교황청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 의혹,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주교 복권 결정의 부당성, 심지어 천9백만 파운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교황 방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영국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항의까지(2007년 British Social Attitudes Survey의 조사에 의하면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거주자들의 2.81%만이 가톨릭이란다). 거의 매일 이어지는 특집 프로와 보도들을 보면 과연 교황이 방문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교..

옥포일기 2010.09.15

옥스포드 34주차 - "so much owed by so many to so few.."

8월은 어느 나라나 전쟁에 관련된 기념 행사가 몰려 있는 달인듯. 영국도 이 달 20일은 처칠이 1940년 이른바 "the Battle of Britain" 중 활약한 Royal Air Force의 pilot들을 기리고 건투를 다짐하기 위한 연설을 행한 날이란다. "Never in the field of human conflict was so much owed by so many to so few. All our hearts go out to the fighter pilots, whose brilliant actions we see with our own eyes day after day…" 처칠이 그 당시 이미 "소수"라 불렀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아직 생존해 있는 극소수의 파일럿들이 참가한 기념 행사..

옥포일기 2010.08.22

옥스포드 31주차

옥스포드에 잠든 사람들을 만나다. Wolvercote cemetery에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을 비롯해 몇몇 철학자들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마침 집에서 자전거로 15분 거리도 채 안되는 곳이니 예의상 안 들려 볼 수 없지 않은가.  평소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아예 입구부터 톨킨 안내 문구와 표지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아내와 함께 묻힌 곳은 특별할 것도 없었고 다른 묘소들보다 조금 작아 보였다. 그래도 톨킨의 묘는 누군가 놓고 간 꽃화분들도 있고 한 게 을씨년스럽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생전에 자기 돈 들여 또 지관까지 고용해가며 명당 자리 선별해 누울 곳 장만하고, 주변 압도하려는 듯 야산 자락 버겁게 만드는 사람들 자..

옥포일기 2010.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