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 208

DIY, 고구마, 그리고 Sauerteig(levain) ㅡ 또는 빵굽기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작(poiêsis)의 예로, 집을 건설하는 건축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는 의사를 들고 있다. 이때 poiêsis의 결과물은 개별적인 물건, 상태, 또는 조건 등이 될 수 있다. 그가 행한 최초의 구분, 즉 외부 목적을 가진 제작과 내부 목적을 가진 행위(praxis)의 구분은 미학과 관련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예컨대 독립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활동은 poiêsis의 예시가 될 것인데 비해, 하프 같은 악기 연주 같은 [역시 예술] 활동은 행위의 사례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떤 작가의 행위도 내적인 목적을 지닌 praxis로 간주될 수 있다. 비록 그 최종 결과물은―이것은 행위가 목적론적인 완성에 이를 때가 아니라 오히려 중..

Miscellaneous/etc. 2024.03.30

노트 필기

"김교수, 막스 셸러 'Gefühlsdrang'이란 개념 설명해줄 수 있수?" 수화기 너머 낯익은 목소리. 수년 전 이미 정년하신 어떤 선배 교수님이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예? 셸러요? Gefühlsdrang이라 ... 글쎄요,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가물가물하네요 ..." 학문에 뜻을 둔 어떤 사람이 당신께 설명해달랬단다. "유학 시절 오르트 교수 수업 때 셸러도 다루었었긴 한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도 기억날만한 게 있나 한번 찾아 보고 연락 드릴께요." 연구실 서가 귀퉁이에 꽂혀 먼지만 맞고 있던 낡은 필기노트 묶음을 꺼내 펼쳐보았다. Wolfgang Orth, "철학적 인간학" 강의 기록이었다. 1990년 7월 6일 강의 내용일테..

Miscellaneous/etc. 2024.02.29

Life & Bildungsgedichte

Louise Bogan (1897–1970) At first, we want life to be romantic; Later, to be bearable; Finally, to be understandable. "나뭇잎 사이로"로 유명했던 싱어송 라이터 조동진(1947~2017) 의 곡 "제비꽃"의 노랫말이 Bogan의 구절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비꽃 (원곡: 조동진)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음 ~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면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음 ~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너머 먼눈길, 넌 웃으며 내게 말..

Miscellaneous/etc. 2023.12.28

궁동의 하늘 & ..

궁동에서 젤로 맘에 들었던 장면이었는데 정으니 지도자 동지 초대 화환이 가려버렸네. 우짤꼬... 이러니 내가 먹방을 싫어할 수밖에 충대인은 앞으로 궁동 하늘 정리해 주겠다 약속하는 지도자를 골랐으면 좋겠다. 길가에 배설해 놓는 쓰레기도..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추억거리에 비해 사진에 담기엔 벨로 같다. 우후죽순 중국어 간판들. 맛볼 엄두조차 못내는 탕후루 가게만 출근길 네다섯 개를 봤다. 와중에 올 겨울 첫 눈인형이 위로를.. 근데 이마에 뭐지?? 불과 며칠 전까지 한여름 내내 꽁꽁 잠궈놓았던 인공 폭포(!)에 푸드 트럭까지 동원해 가며 돌멩이에 본짜이 전시하던 데가 오늘 보니 .. 팔다리가 잘려진 채 .. 뒷처리(속도?)가 영~

Miscellaneous/Image 2023.11.18

寫經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도리천에 계시면서 어머니를 위하여 설법하셨다." 경전을 옮겨 적다가 문득 내 글씨체가 누군가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유품 정리하다 발견한 전화번호 수첩에 그 답이... 경전의 세부 내용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또 오늘의 일반적인 가치관과 무척 다르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지만, 하나는 알겠다. "착하게 살아라!" 그러고 보니 79년 여름 해인사 백련암에서 뵈었던 性徹 스님도 바로 이 말씀을 했었다! "부처님 가르침은 딴 거 없다. 착하게 살라는 거다." 다 마치고 보니 이 나이 먹도록 오롯이 누군가를 위해 해본 일은 처음 같다. 숙제를 내주셨던 스님께 감사할 일이다.ㅎ 대가족에 시집 오셔서 어지러운 세상 탓에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하셔야 했던..

Miscellaneous/etc. 2023.10.13

남미에 간 이유를...

"교수님, 저 책 내게 되었어요. ... 직접 드려야 도리이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택배로 보내드리려고요. ..." 간만에 날라온 카톡 문자 그리고, 택배 꾸러미. 나이탓인가, 살짝 긴장감(걱정!)을 주면서 한 호흡에 읽게 될만큼 글의 전개가 흥미롭다. 물론 자극적이지는 않다. 어쨌든 언제 이런 경험을 다 했나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기억 속 이미지와 사뭇 다른 주인공을 마주하는 듯했다. 당찬 건 좋은데 앞으로 또 비슷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급적 든든한 사람(!)과 함께 하기를. 공감되는 구절들... 어쩌면 지금 20대 젊은이들은 라떼 세대의 그 시절보다 더 성숙한 것 같기도 하다. "노인네들은 철이 없고, 젊은 애들은 싸가지 없네..." 어쩌구하고 수업중 내뱉었던 말을 되삼킬 수도 없고 ..

Miscellaneous/etc. 202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