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당신은 통 속의 뇌에 불과한가?

Kant 2007. 8. 17. 11:33
Brains in a vat



어떤 인간이 사악한 과학자에 의해 수술을 받았다. 그 사람의 뇌는 육체에서 분리되어 뇌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끔 해줄 영양분이 가득 담긴 통 속에 옮겨졌다. 신경 조직은 그대로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어 이 컴퓨터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완벽히 정상적인 듯이 보이는 환각을 일으키도록 만든다.

 

이런 상황 하에서 사람들, 사물들, 하늘 등은 모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컴퓨터로부터 신경 세포에로 이어지는 전기 자극의 결과가 된다. 컴퓨터는 그 사람이 손을 올리려고 한다면 손이 올려짐이 자동적으로 '보이고', '느끼게' 되도록 교묘히 장치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그 사악한 과학자는 여러 가지로 프로그램을 변형시킴으로써 그 사람으로 하여금 과학자가 원하는 어떠한 상황이나 상태일지라도 '경험' 하도록 할 수 있다. 과학자는 또한 뇌수술을 하였다는 기억을 삭제해 버림으로써 그 사람이 항상 그러한 상황에 있어온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의자에 앉아 어떤 사악한 과학자가 사람들의 뇌를 떼어내어 뇌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할 영양분이 담긴 통 속에 집어넣는다는 재미나면서도 불합리한 가정을 기술한 글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신경 세포는 그 뇌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이러저러한 환상을 일으키도록 하는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다.

뇌 하나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통 속에 들어있는 두뇌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사악한 과학자는 통밖에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사악한 과학자란 존재하지도 않고, 우주는 온통 뇌와 신경 조직으로 가득 찬 통만을 만들어 내는 자동 기계로 구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그 자동 기계가 우리로 하여금 서로 연관성이 없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 환각들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적인 환각을 일으키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 상상 속에서는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 스스로에게 보일 때, 당신에게는 당신이 나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때 나의 말이 당신의 귀까지 실제로 다다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실제의 귀가 없고 나에게는 입과 혀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내 뱉을 때 정말로 일어나는 일은 나의 뇌에서 발생한 전기 자극이 컴퓨터로 나가서 나는 나 자신의 음성을 '듣고', 내 혀의 움직임을 '느끼게' 하고, 당신은 내 말을 '듣고‘, 내가 말하는 것을 '보게' 하는 것들이다. 이 경우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과 나는 실제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할 수도 있다. 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는 나의 생각은 틀릴 수 없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전세계'가 하나의 집단적인 환각이라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말하고 듣는 기계적 과정이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바와는 다를지라도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이야기 할 때 결국 당신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Hilary Putnam, Reason, Truth, and History (정기도: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구별가능성 고찰>에서 재인용; http://218.38.19.75:5000/reference/virtual-reality.htm)

 

힐러리 퍼트넘은 통 속의 뇌 가설이 자가당착적이기 때문에 일관적이지 못하다(incoherence)고 주장했다. 그는 특별한 버전의 통 속의 이론을 만들어내었는데, 이를테면 어떤 미친 과학자가 뇌를 분리해서 통속에 담기 시작한 것이 아니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후 모든 사람들은 뇌만 남아서 통 속에 담긴 상태가 되어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들은 오직 통 속에 담긴 뇌, 통, 그리고 슈퍼컴퓨터들이 있는 실험실이라고 가정하자는 것. 퍼트남은 이 버전의 가설에서 그 뇌는 자신이 통 속에 담긴 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지시'와 '진리'에 대한 의미론적 고찰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예컨대 화성에 나무가 존재하지 않는데, 그곳의 화성인들이 우연히 나무를 닮은 것을 보게 되어 머릿 속에 나무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는 것이다. 이 경우 퍼트남은 화성인이 생각하는 것은 나무라고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 이미지와 실제 나무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의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어떤 사람이 처음부터 통 속의 뇌로 존재했다면, 뇌만 존재하는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나무의 이미지는 실제의 나무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쌍둥이 지구(Twin Earth) 가설: 쌍둥이 지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거주해 온, 모든 면에서 동일한 두 사람들 중  한 명이 실제의 고양이를 경험한 적 없는 상태에서 지구의 고양이를 닮은 쌍둥이 지구의 어떤 대상을 '고양이'라고 부를 경우 그는 실제의 고양이를 지시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시뮬레이션 외부에 전혀 있어 본 적이 없는 "순수한", 통 속의 뇌는 '나는 통 속의 뇌다'라는 참인 진술을 말할 수 없다. 그 진술 속의 '뇌'와 '통'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아무 관계도 맺고 있지 않는, 시뮬레이션 밖의 실제 사물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안에 있는 어떤 것만을 지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통 속의 뇌다'가 말하는 것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또 화자가 실제로 통속의 뇌가 아니라면, 이때 역시 그 진술은 당연히 거짓이다. 그렇다면 '나는 통속의 뇌다'라는 말은 반드시 거짓이고 자기 반박적인 표현인 셈이다.]  

 

"진짜 통 속의 뇌는 통 속의 뇌를 경험 할 수 없다. 그저 전기신호 8번같은 것이 입력되어서 '통속의 뇌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진짜 통 속의 뇌가 자신이 통 속의 뇌인지 의심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진짜 통 속의 뇌는 전기신호 8번에 대해 [그것에 대한 우연적 반응으로]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 반박의 핵심은, 우리가 '통 속의 뇌가 되기 전'에 통 속의 뇌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를 경우에만 원래의 가설 - 즉 '통 속의 뇌는 자신이 통 속의 뇌임을 진정으로 의심할 수 없다'는 - 이 반박된다는 것이다. 만일 통 속의 뇌라는 개념을 알고있는 A가 어제까지 멀쩡히 살다가 갑자기 납치되어 통 속의 뇌가 되고, 전기신호 8번을 받아 '통속의 뇌가 되었나?'라고 생각을 한다면 '통 속의 뇌'라는 개념을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통 속의 뇌인가?' 라는 의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반박을 요약하면,

  1. 자폐증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배고픔과 같은 욕구를 알지 못한다.
  2. 때문에 '배고픔'이라는 감각을 느끼더라도 이해하지 못한다.
  3. 그러므로 배고픔과 관련된 알고리즘이 불가능하다.

퍼트넘은 이것과 동일한 알고리즘으로, "내가 통 속의 뇌인가?" (즉, "내가 지금 배고픈 건가?") 라는 것을 의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맥락상 이해한 것이므로, 결국 그 자체가 당신이 통 속의 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전기신호 8번을 받은 사람의 생각은 '전기신호 8번'일 뿐, '나는 지금 통 속에 뇌만 잠겨있고 전기자극을 받는 상태인 것인가?'라고 인지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en.wikipedia.org/wiki/Brain_in_a_vat

 

Brain in a vat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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