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데카르트의 『성찰』

Kant 2018. 1. 2. 17:51

데카르트의 『성찰』

 

 


I. 배경(생애, 철학, 작품들 etc.)


데카르트가 예수회 소속 학교에 다녔다는 것(boarding으로!)은 그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특히 감각적 경험을 강조한 인식이론에 익숙했다는 것과 가톨릭의 med. 전통에도 익숙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 데카르트 자신도 후일에 자식 교육 문제로 조언을 구하는 한 아버지에게 추천했을 만큼 이 학교의 교육에 만족했다. 그는 거기서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플라톤 철학 등도 배웠는데, 데카르트의 성숙한 지식 이론은 감각적 경험의 기만을 제거하고 순수한 지적 깨달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전자보다 후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어느 철학 이론에서도 확실성과 명증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이 학교와 La Flèche의 지적 분위기 속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갈릴레이, 케플러 등의 천체이론에 자연스럽게 친숙해졌다.

 

아버지 뜻에 따라 Poitiers 대학에서 잠시 법학을 공부하고(Licence)나서 바로 군에 자원, 유럽 여러 곳을 돌아다님.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을 준 베크만Isaac Beeckman과 운명적인 만남을 이룸. 베크만은 갈릴레이와 무관하게 낙하법칙을 발견했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는데, 데카르트에게 수학뿐 아니라, 음악학, 운동학, 유체역학 등의 문제들을 알려주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데카르트는 자연 및 물리 현상이 수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인데, 그 운명적 만남의 상대가 꼭 사람이나 애인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한 권의 책이거나 한 곡의 음악일 수는 없을까? 사람이라면 꼭 연상이어야 할까?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중, 예수와 바울 중 누가 상대에게 더 감사해야 할까?]

 

데카르트는 베크만과의 만남 이후 수학의 문제들에 몰두, 여러 종류의 방정식과 기하학적 도형의 관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석기하학의 발견). 이러한 발견을 계기로 데카르트는 방법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수학적 과학의 가능성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대수와 기하학의 관계에 관한 발견이 가지는 명확함을 다른 분야에까지 확대시키고 싶어 했다. 16191110일 독일 울름 근처에 머물던 그는 기이한 꿈을 연속해서 꾸게 되는데, 이 꿈을 그는 새로운 학문 일반의 기초를 발견하라는 일종의 계시로 여겼다.[획기적인 발견이나 아이디어는 기이한 꿈이나 환각 체험을 동반한다? 데카르트 자신의 서술과는 달리 그는 이 시기에 할 일 없이 빈둥댄 것이 아니라, 수학과 과학의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학자 Johannes Faulhaber 등과도 대담.] 1622년경 무렵엔 결투를 벌이기도 했다고 전해지며 펜싱에 대한 논문도 썼다.

 

1628년엔 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를 집필(미완으로 1701년에야 출판)하였으며 여기서 그는 수학에서의 방법과 같은 것을 모든 학문에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를 했다. [서양 철학사에서 합리론의 특징은 바로 이 부분에 있으며, 스피노자의 철학과 같은 신비적 요소의 철학도 합리론으로 분류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The first was never to accept anything as true if I did not have evident knowledge of its truth: that is, carefully to avoid precipitate conclusions and preconceptions, and to include nothing more in my judgements than what presented itself to my mind so clearly and so distinctly that I had no occasion to doubt it.(rule of clarity and certainty)

The second, to divide each of the difficulties I examined into as many parts as possible and as may be required in order to resolve them better.(대수에서의 문제 해결 과정과 유사)

The third, to direct my thoughts in an orderly manner, by beginning with the simplest and most easily known objects in order to ascend little by little, step by step, to knowledge of the most complex, and by supposing some order even among objects that have no natural order of precedence.(종합)

And the last, throughout to make enumerations so complete, and reviews so comprehensive, that I could be sure of leaving nothing out. (대수에서의 문제 해결 과정)<AT 6: 18-19>


이 중에서 첫째와 셋째 규칙이 성찰』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규칙의 경우가 합리론 철학의 공통 취약점으로 보인다. , 철학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태에서 가장 단순한 부분(따라서 가장 명석 판명한 요소)을 무엇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파리에서의 짧은 기간을 끝내고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1629년경부터 그는 physica(자연철학: 일반 자연학, physiology, psychology, chemistry, mineralogy, geology, biology 등을 포함)및 형이상학의 문제에 몰두함. 그 이전까지는 수학과 방법론의 문제에 관심. 원래는 1629년 로마에서 관측된 해무리를 설명하는 논문을 구상하였으나 아예 모든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즉 일반 자연학으로 확대시켰다. 그 결과물이 1633년경 완성한(?) Le Monde(세계).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뤄질 계획이었다. 첫째가 빛에 관한 연구(일반 물리학을 포함), 둘째가 인간에 관한 연구(생리학 포함), 셋째가 영혼 또는 마음에 관한 연구였다. 이 중 앞의 둘만 전해오고 마지막 것은 데카르트가 쓰지 않았거나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는 이 저서에서 세계가 제한된 수의 운동 법칙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지구는 다수의 태양들 주위를 운행하는 여러 행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을 함. =>뉴턴이 수행한 역학과 천문학의 결합과 유사한 성격의 저술이었는데, 갈릴레이의 재판 소식을 듣고 출판을 포기(1664년에야 출판)했다.

 

1634-40의 기간에는 『방법서설』과 성찰』, 그밖에 광학, 기상학, 기하학 등에 관한 에세이를 씀. 광학, 기상학 등은 당시 응용수학의 분야로 인식되었다. Regulae 이래의 방법론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는 대부분의 이 시기 작품들을 불어로 썼는데 이는 여성을 포함하여 비전문가들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영국의 베이컨, 이태리의 갈릴레이 등도 마찬가지. 각국 고유 언어로 철학적 저술이 출판됨으로 해서 민족 고유의 특성을 반영한 철학이 등장하기 시작함). 『방법서설』은 익명으로 출판했으나 곧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거기서 다루어진 학문방법론이라든가 기타 불충분하게 언급된 형이상학적인 주장들에 대한 반론들에 대답하기 위해 다시 성찰』을 집필하게 되었다.

『방법서설』 이후의 서신왕래의 내용을 보면, 그가 얼마나 동시대인들에게 자신의 관점을 변호하고자 애썼는지를 알 수 있다. 또 그는 예수회 신학자들의 반응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있었으며, 철학적으로는 그의 자연학(물질, 인간)과 형이상학 사이의 관계(연결점)를 제시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찰』의 초판 제목은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in qua Dei existentia et animae immortalitas demonstrantur”(1철학에 관한 성찰. 거기서[1철학에서] 신의 존재, 영혼 불멸이 증명된다)이고 또 헌사에서도 신의 존재와 영혼 불멸의 증명이야말로 철학이 종교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실제 내용과는 차이가 나며 종교계의 반응을 계산에 둔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년 뒤(1642)의 재판은 좀 더 정확한 제목을 달고 있다.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in quibus Dei existentia et animae humanae a corpore distinctio demonstrantur”(거기서[성찰들에서] 신의 존재가 그리고 신체와 인간 영혼 사이의 구분이 증명된다). Mersenne에게 보낸 서한에서 데카르트는 성찰』의 의도가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자연학의 원리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고백했다. 철저한 회의의 방법을 통해 감각적 지식을 거부한 것은 모든 지식의 출발을 감각에서 찾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인식론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자연관(물질관)과 형이상학(심신 이원론)을 구축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암암리에 순진한 독자들을 자신의 원리들에 익숙하게 만든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는데, meditations의 형식(아우구스티누스나 이냐시오 로욜라 등의 종교적 전통 형식을 의도적으로)을 빌린 것도 그러한 정치적 전략 내지 계산과 관계가 있다.

1644년 데카르트는 그의 또 다른 주저인 principia philosophiae”(철학의 원리)를 출판. 여기서 그는 성찰』의 내용을 발전시켜 형이상학과 자연학(천문학, 광학, 기상학, 인간 감각 등에 관한 내용)의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었다. 1640년대는 그의 철학에 대한 교회(캘빈파 신학자 G. Voetius )와 그의 지지자들 사이의 논쟁이 활발해진 시기였다(『보에티우스에게 보낸 서한집』, 1643). 주로 심신 이원론과 신의 존재 증명 등이 이슈였는데, 『인간론』Traité de l'homme(1648년 완성했으나 1664년에야 출판), 『정념론』Les Passions de l'âme(1649) 등의 집필을 제외하고 스웨덴(Queen Christina)에서 사망 시(1650)까지 줄곧 그러한 논쟁에서 자신의 철학을 옹호해야만 했다. 그는 완전한 도덕을 구축하려는 의도를 자주 언급하였으나 자신의 철학을 공격으로부터 변호하는 문제에 몰두하다가 그 기회를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사생아를 가졌던 사생활도 걸림돌?). 한편 그는 정념론』에서 영혼과 신체의 결합에 의존하는 정념들의 작동방식을 설명함으로써 그러한 도덕론을 위한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은 점차 널리 알려져 40년대 이후 네덜란드의 Leiden대학은 그의 철학 논쟁과 보급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의 『방법서설』과 성찰』은 오늘날에도 가장 널리 읽히는 텍스트로 간주된다. 그의 『철학원리들』에 포함된 자연학 내지 물리학에 관한 내용들은 뉴턴, 가상디, 라이프니츠, 칸트 등에 의해 연구되고 논의 되었다. 거의 동시대인이던 가상디나 홉스는 그의 합리론적 인식론(인간의 지성이 감각적 지각과 별도로 사물 자체의 본성을 드러내 준다고 보는)에는 동조하지 않았으나, 물질계에 관한 기계론적이고 원자론적인 설명 방식에는 호의적이었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도 비록 결론은 달랐지만 데카르트의 합리론적 형이상학 접근 방법에 동의하였다. 또 이들은 정신적 실체만을 인정함으로써 가상디, 홉스 등과 대립했다. 이 두 흐름은 칸트에 의해 그 각각의 정당성과 한계를 지적받게 된다.

 

20세기에 들어 그의 철학은 특히 세 부분에서 주목받았다: 회의적 방법(철학 일반의 논의에서 방법론, 인식론 등의 논의에서. 특히 후설[E. Husserl] 현상학 등), 코기토 argument(분석철학의 형이상학 비판에서), 심신구분론(심리철학에서).

 

 


II. 『성찰』 강독의 의의와 방법


그의 관점은 워낙 철학사의 이정표 역할을 한 것이라서 그의 주장 자체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그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의 성찰』은 특히 철학의 논의 전개 방식 공부에 도움(철학 텍스트와 논증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술 - 이것은 철학 공부의 가장 중요한 소득 중의 하나임 - 습득에 매우 유용).

성찰』과 같은 철학 텍스트를 읽는데 있어 중요한 것에는 저자의 의도와 결론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얼마나 철학적인 설득력을 보이는가를 평가하는 것도 속한다.(원서일 경우 외국어로 된 저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도 포함됨) 이때 무엇이 그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한 한 동양철학-서양철학의 구분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모든 학문적 주장의 설득력의 기준은 그 주장을 표현하고 있는 argument일 것. 그러면 이 argument의 기본 골격이 되는 것은 결국 전제들과 그 전제들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결론들일 것. 논증의 정당화 기준은 타당성validity뿐인가? (안두희가 사형을 당했다면 그는 사망하였다. 그는 사형당하지 않았다. 고로 그는 사망하지 않았다.; 모든 성공한 쿠테타는 사법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12,12 사태는 성공한 쿠테타이다. 고로 12,12는 사법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성찰』에서 데카르트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그의 철학적 논증 전체를 위한 출발점, 확고한(건전한) 전제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독자는 데카르트가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전제하는 것들이나 은폐되어 있는 논리 구조들을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그가 당시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달리 그러한 전제 내지 원리가 감각 경험에 기초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독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더욱 필요한 일이다.

 


 

III. 성찰』의 특징


1. Meditation의 전통: 이 작품은 그 제목이 보여주듯 서양 근대 철학의 여느 작품들처럼 “Essay”라든가 “Treatise”를 표방하지 않는다. 따라서 철학의 어떤 한 주제나 문제, 분야 등에 관한 연구라든가 서술과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제목뿐 아니라 실제 내용을 보면 데카르트가 자신의 작품을 기독교의 meditation 전통(묵상, 기도 등을 통해 영혼의 성숙과 신적인 진리와의 만남을 목적으로 하며 중대한 결단을 동반하는 것이 보통임. 아우구스티누스; 예수회의 창시자인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 Exercitia spiritualia, 1548 )을 염두에 두고 구상하고 집필했음을 알 수 있다. 데카르트 철학과 중세, 특히 아우구스티누스 등과의 관계는 철학사에서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부분임(Étienne Gilson 등의 연구. 그러나 정작 데카르트 자신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들에 무지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IgnatiusExercitia의 경우 4주 동안 완전한 고독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숙고하고, 회개하며, 크리스트의 사랑, 고통, 영광 등을 명상하는 과정을 그림.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독자들이 그들 자신들의 힘으로 사유하고 철학적 결론에 이르도록 안내하고 독려하는 스타일을 취함. 그러므로 성찰』에서의 가 반드시 1640년대의 철학자 데카르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든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철학적으로 그 근본부터 재고해 보는 과정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대표할 뿐이지, 특정의 누구를 염두에 두거나 지칭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Replies에서의 가 데카르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과거의 meditation 전통이 감각적 욕망, 혼란, 미혹 등의 상태로부터 참된 본성을 회복하고, 지성을 정화시켜 신성한 빛 내지 계시(“Deus illuminatio mea”)를 얻고자 하며, 자신의 의지를 신의 그것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영혼을 훈련하였듯이, 데카르트의 성찰』은 철저한 회의에 의하여 우리의 인식 능력들을 정화하고, “자연의 빛을 통하여 지적인 계시를 성취하려 하며, 또 의지를 훈련하여 지성에 의해 명석 판명한 것으로 파악된 형이상학적 명제들만을 인정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전제들로부터 타당한 추론에 의하여 결론들을 도출해 내는 논리적이거나 학문적인 작업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독자들이 지성의 능력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회의와 명상(6 주 동안!)을 통해 훈련시킨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데카르트 판 웰빙”-철학인 셈이다.

 

그러나 전통과의 차이점은, 전통적 med.이 종교적 체험이나 교회 등의 제도적 권위에 의존하는 반면, 데카르트는 그 같이 신성하거나 전문적인 전통의 권위를 표방하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단순히 그 자신이 진리 탐구를 위한 사유의 단순 명료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 즉 그것에 의해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견을 제거하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러한 사유 내지 탐구의 방법을 제시하는 데 있다. 데카르트의 med.에서는 특별한 훈련이나 종교적인 규율, 역사적인 지식 등이 불필요하며, 더 나아가 그런 것들이 오히려 편견이 될 수 있다. 기독교 전통으로부터 빌려온 또 다른 하나의 형식은 이의 제기와 그에 대한 해명을 통해 자기 견해를 변호하는 것인 disputatio가 있다.

 

통상적으로 진리 탐구는 어떠한 조건이나 맥락, 목적 내지 의도 등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그래서 그러한 관점이 어떤 식으로든 그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는데, 데카르트가  성찰』에서 수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는 문자 그대로 순수한 진리 탐구요, 다른 여타의 목적과는 무관하다. 그는 일단 실용적 합리성의 요구나 그것에 대한 배려를 보류하며 진리 그 자체나 절대적 합리성만을 고려한다.

 

2. 회의론의 전통: skeptomai = look about carefully, herumsehen => skepticism

그 대표자는 누구인가? Pyrrhon(BC 360-270)과 그의 제자 Timon. 인식의 상대성을 주장했지만 더 근본적인 취지는 당대의 여러 학파들(스토아, 에피쿠로스, 퀴니크 등)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삶이라는 실천적인 문제 해결에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이 전통이 부활되는데, 기독교적 전통의 교리와 신앙에 대한 불신과 반항의 경향을 반영하며, 만족시킬 수 없는 지식에 대한 욕구를 진정시키고 근절시키며 새로운 지식이나 발견물보다는 인간의 내면적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감. 몽테뉴(Essais, 1580) 같은 사람이 이 부류에 속한다(포스트모던 사상에까지 영향). 그러나 데카르트가 회의주의를 사용한 목적은 그러한 목적과는 정반대였다. , 확실한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데카르트 이후에는 파스칼, 벨르, 흄 등이 있음.

 

3. 성찰』의 내용, 구조: 소르본느에 보내는 서신, 독자를 위한 서문, 개관, 6개의 med., 이의 제기와 대답. 데카르트는 명상적 사유의 과정을 여섯 단계로 나누어 진행시키고 있는데,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그 정점에 이르는 형식을 취한다. 서두에서 그는 자기 자신도 명상의 결과를 모르는 것처럼 꾸미는데, 이런 태도는 줄곧 유지된다. 이 작품의 merit 중 하나는 와 함께 철학적 사유 여행를 출발하여 그 와 다른 곳에서 여행을 마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때 독자의 노선과 행보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져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적어도 데카르트 또는 가 제시하는 논거 이상으로 설득력을 지닌 논거와 주장을 제시할 수 있는 한에서만 독자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철학사를 보면, 데카르트의 성찰』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구축한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 철학자들 말고도, 현대의 후설(Cartesianische Meditationen)이나, 소위 주관내지 이성의 철학을 비판한 분석철학과 구조주의의 철학자들, 심리철학자들도 그러한 사람들이다.

 

소르본느에 보내는 편지: 소르본느 대학 신학부의 보호와 지지를 얻고 싶어함. 그는 자신의 책이 신의 존재, 연혼과 신체의 구분(영혼불멸) 등의 매우 중대한 종교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또 그것들을 자연적인 이성에 의해 증명하고자 하므로 신학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루는 데에 대한 말하자면 일종의 공식적 승인을 구한 것. 그는 이 작품이 비신앙인들을 교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 주장.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주장일 뿐 실제로는 데카르트 자신이 원했던 것은, 유물론적인 철학과 자연관을 교회의 간섭을 피하여 피력하는 것이었다고 보는 주석가들도 있다. 특히 하느님의 존재와 성경의 관계의 순환성을 지적한 부분에서 그러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는 것.

독자를 위한 서문: 성찰』의 내용이 신, 영혼의 문제뿐 아니라, 형이상학 전체의 기초를 다룬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또 그의 『방법서설』의 내용에 대한 이의 제기들에 대한 자신의 해명들을 간략히 언급하고 넘어감. 또 독자들에게 개별 문장에 구애받지 말고 논증의 구조와 전개 방식에 주목하라고 주문함.

Synopsis: 데카르트는 성찰』의 개요에서 각 단계의 성찰의 내용을 요약함. 1단계: 의심가능한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을 통해 감각적 경험의 속박을 벗어나기. 2단계: 비존재의 상정을 통한 cogito 및 지성의 발견과 신체의 구분. 3단계: 우주론적인 신의 존재 증명. 4단계: 지성, 의지, 판단의 본성(진리 규칙=“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이 진리의 증명 내지 지식과 오류의 문제). 5단계: 본유 관념과 존재론적인 신의 증명, 물질의 본성. 6단계: 물질세계의 존재, 심신 문제.

④이의 제기와 대답: 성찰』의 출판 전후에 수집된 반론들. 신학자 Johannes Caterus, Marin Mersenne, 철학자 Thomas Hobbes, 신학 및 논리학자 Antoine Arnauld, Pierre Gassendi, 신학자 Pierre Bourdin.

 

 


V. 성찰』의 독서법


성찰』의 전체적인 의도는 수백년 동안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다. 철학 텍스트의 해석에 관한 불일치, 불확실성은 그 텍스트의 위대함을 증명한다고 할 수도 있으나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 “이의 제기대답을 참고하여 D의 의도를 유추해 내는 수밖에 없다. 이때 이른바 “the principle of charity”에 따라 최대한 그의 의도를 일관적인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바람직. 즉 현대의 독자가 수긍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하되,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피할 것. 철학 텍스트 상의 부정합은 자주 그것이 담고 있는 사상 체계의 내적인 긴장관계의 깊이를 반영함. 과거의 학문적, 종교적 상황 등을 참작하여 관대한 관점에서 국소적인 결함을 용서(?)하고 포괄적으로 그 의도와 내용을 이해하고자 한다.(플라톤철학을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하이데거 식 존재론적 관점의 결여를 내세우는 경우)

 

성찰』 해석의 방향들: 인식론적 방향 - 지식의 가능성과 한계 규정. 확실한 지식이 도달 가능한가? Cogito가 그것이다. 즉 자기 자신의 정신 상태. 그러면 그것을 넘어서 도달 가능한 것은 있는가? 그가 회의의 방법과 확실성을 강조한 것은 이 방향에 부합. 형이상학적 방향 - 단순히 지식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에 그친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의 제일 원리를 확립하고자 한 것이 중요. Cogito뿐 아니라 신의 존재 증명, 물질과 마음의 본질, 심신 관계, 감각적 지각의 본성 위의 두 방향의 혼합 방향 - 감각, 상상력, 기억, 의지, 순수 지성 등 인식능력들을 구분한 것은 인식론적 성격에 속함. 둘째-여섯째 Med.이 순수 지성의 발견과 적절한 사용을 강조하고 있고, 거기서 도달한 명석 판명한 인식들을 기초로 셋째부터 여섯째 Med.이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다룬다.

 

기타 문제들: Cogito Argument의 문제(얼마나 설득력을 갖는가? 실제로 성취한 것은? ) 데카르트의 순환 논증(Cartesian Circle) - 신의 존재와 완전성에 호소하여 명석 판명한 인식의 사용을 정당화하고, 다시 이 기준으로 신의 존재와 완전함을 증명?



참고문헌: G. Hatfield, Descartes and the Meditations,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