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counseling

왜 자살을 택하는가?

Kant 2008. 10. 13. 18:18


세로토닌은 항우울제의 주성분이다. 뇌신경 전달 물질이면서 내장의 움직임을 관장하기도 한다. 우리 뇌에 있는 신경세포는 지구 위의 사람 수보다 수백 배나 많고, 그 각각의 세포들은 100-1000 개의 다른 세포들과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만일 세포가 사람 크기만 하다면 뇌는 사방 10킬로미터나 되는 큰 블록이 되어서 맨해튼을 덮고 하늘까지 치솟게 된다니 그 복잡성의 규모가 상상을 불허하지 싶다. 세로토닌은 뇌세포들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좋은 기분, 기쁨, 행복감 같은 느낌을 전달하는데 관여하기 때문에 이게 부족하거나 이상 상태로 되면 만성적인 슬픔의 상태, 즉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세로토닌 이외에도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돌핀, 코르티솔, 에스트로젠, 테스토스테론 등 같은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이 우울증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은 앓아보기 전에는 그 심정을 이해하기 곤란한데, 철학자 J. S. 밀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만약 당신의 모든 목표가 성취되어 당신이 영향을 미치고 싶어했던 기관이나 견해들에게 바로 당신이 고대하던 대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당신은 대단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겠는가?’ 그러자 억제할 수 없는 나 자신 의식이 즉각적으로 ‘아니다’라고 대답해 왔다. 바로 이 순간 내 심장이 가라앉았다. 내 인생을 구성해 온 전체 기반이 주저앉았다. 지속적으로 추구한 그 목표 끝에는 모든 행복이 있어야 했다. 나의 마지막 목표에 더 이상 매력을 느낄 수 없다. 이 상태에서 어떤 관심이 다시 생길 수 있을까? 이제 살아갈 가치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처음에는 먹구름이 저절로 지나가 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인생의 좀 작은 걱정거리에 대해 특효약이었던 잠은 이제 아무 효과가 없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비참한 현실에서 태어나 새로운 절망적 의식 상태에 있었다. 그런 나의 새로워진 의식을 나와 동료들에게 납득시켜야 했다. 잠시 몇 분이라도 그 사실을 망각하게 할 수 있는 어떤 힘도 없었다. 몇 개월 사이 먹구름은 점점 더 짙어갔다. 콜러리지(영국 시인)의 「실의(失意)」의 시구가 정확히 내 경우를 묘사하고 있었다.


격통 없는 슬픔, 공허하고, 어둡고, 따분한,

나른하고, 숨 막힐 듯한, 냉정한 슬픔,

어떤 자연스런 배출구도, 위안도 없네.

말로도, 한숨으로도, 눈물로도.


즐겨 읽던 책에서 위안을 받으려던 나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L. Wolpert, <우울증에 관한 희망의 보고서>
Malignant Sadness 중에서)



우울증은 한번 걸려들면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 고리 같아서(보통 그 유일한 탈출구를 자살에서 찾게 됨!)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40대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갱년기 증상하고 겹치면 증상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재발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도 필요하고 또 재발될수록 그 강도가 더 세어진다.


뇌의 신경 전달 통로도 자주 사용하는 대로 굳어지기 때문에 - 보리밭이나 잔디밭에 자주 다니는 곳으로 길이 만들어지듯 - 늘 즐거운 생각과 느낌을 떠올리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어린 아이들은 자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칭찬해주어야 하고. 운동도 많은 도움이 되는데, 문제는 운동할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의 강제적 충동질이 필요하다. 조깅이나 마라톤 하는 많은 사람들이 건강보다는 가벼운 우울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떤 이는 꼬마들과 함께 밝은 색으로 수채화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강도 높은 운동은 오히려 중독 증상을 유발할 수도 있다. 운동을 쉬면 운동 중에 상대적으로 과다하게 분비되던 신경전달 물질이 적게 나오기 때문이다. 로또 당첨 등과 같이 과도한 행복을 경험한 사람도 유사한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우울증은 일종의 방어기재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론도 있다. 영국의 정신의학자 폴 키드웰 박사(Paul Keedwell)는 자신의 저서 ‘슬픔의 생존법(How Sadness Survived)’에서 우울증을 진화론적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것을 주장하는데, 그에 의하면 우울증은 어떤 결함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인류의 삶에 필요하기 때문에 수천 년 이상을 인류의 진화 과정과 함께 한 것이라 한다. “인간적인 것을 의미하는 한 부분으로서”(a part of what it means to be human) 인간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부여해 삶의 어려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그래서 생존과 번식을 향상시키는 진화 메커니즘의 일부라는 것.
이런 점에서 나는 인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말고도 ‘근원적 우울함’(radical sadness)으로 부를만한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우울증이 극복되기만 하면 인생에 대한 큰 통찰력과 업그레이드 된 가치관, 심지어 창의력까지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존 스튜어트 밀, 에드가 엘런 포우, 링컨, 윈스턴 처칠, 피카소 등 우울증에 시달렸던 위대한 예술가, 정치가, 사상가들의 사례가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연예인, 기업인, 공직자 등 근래 공적(公的) 인물들이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어느 정도 진전된 우울증은 물론 반드시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작용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사람에겐 자기 진화를 위한 한 통과 의례라 할 수 있다.


Be happy, don't worry!



PS: 우울 증세에서 묘한 부분은 우울한 기분 속에서도 살벌한 유머감각은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희극배우 중에도 우울증 환자가 적지 않은가 한다.

 

PS2: Robert Whitaker, Anatomy of Epidemic을 읽어보니 이 글은 수정되어야만 하겠다. 세로토닌을 비롯한 신경전달물질이 이른바 "정신질환"의 원인이라는 가설은 이미 허구로 판명되었다고 하니까

"The serotonin theory of depresssion is comparable to the masturbatory theory of insanity." - David Healy (p. 75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