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counseling

전문가의 시대에 넘쳐나는 전문성의 횡포 또는 무개념

Kant 2011. 9. 18. 12:13

최근 저녁 티비 앞에서 여기저기 채널을 검색하다가 ebs의 묘한 프로 두 가지를 보게 되었다. 나는 교육방송을 자주 보는 편이니 굳이 ebs 애시청자(?)라면 애시청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들은 좀 아니다 싶은 게, 보는 내내 맘이 편칠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끝까지 보고 말았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시리즈물일 터, 앞으로도 후속편을 더 보게 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달라졌어요”라는 두 프로였는데, 한 프로에는 “…”에 “남편”, 다른 하나는 “선생님”이 들어가는 프로였다. 이들 프로를 처음 봤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건 한 상업방송사에서 내보내고 있는 비슷한 제목의 프로였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우아달)인가 하는.

 

평소 정상이라 보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는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이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행동 수정에 성공한다는, 보기에 따라서는 참신하고, 교육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는 나름 ‘괜찮은’ 프로가 우아달이다.

 

“이젠 한 주에 한 번씩, 아이들이 변한다!! … 각 분야 최고의 육아 전문가와 함께 한 주 동안 집중적으로 아이들의 행동 수정과 가정의 변화를 위한 개선방안들을 제시해주는 신육아비법!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 육아혁명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합니다.”

 




"비법"과 "혁명"이라... 하긴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 전문가, 교육 상담 전문가, 미술 치료사, 놀이 치료사 등등 아직 조금 생소한 분야의 전문가들까지 동원해 불과 한 주 만에 문제아동을 완전히 다른 아이로 만들어 놓는 게 얼핏 보아도 신기 그 자체였다. 와, 역시 전문가들은 다르구나! 물론 의구심이 가는 부분도 없진 않았다. 아무리 유아라 해도 일 주일만에 저렇게 달라질 수 있나? 주변의 느닷없는 관심과 배려가 사라져도 정말?

실제 사실 관계 여부를 떠나 상업방송국 측에서 보면 시청률도 잡고, 저질 방송 논란을 확실하게 비켜갈 수 있는 교육프로라면 이보다 더 이상적일 수 없으리라.

 

거의 동일한 콘셉트의 프로가 위의 교육방송 프로들이라고 본다. 대상만 남편과 교사로 바뀌었을 뿐. 이 프로들에서도 역시 다수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문제의 출연자들의 평소 생활이나 수업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해서 그 당사자들의 눈물을 보고야 만다. 헐…,

사오십대 남편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 10여년 이상 경력의 선생님들이 티비 화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참회성 표현들이 여과없이 쏟아진다. 이와 동시에 의기양양한 전문가들의 뻔스러운(?) 낯엔 회심의 미소가 번진다. “Veni, Vidi, Vici”

언제부터 ebs도 시청률 경쟁에 뛰어든 건지 또 그 사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근히 부아가 난다.

 

왜 착한 남편이 변해야 하고, 왜 멀쩡한 교사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까? 물론 전문가의 눈에 그렇게 비쳤으니 그래야 한다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을 듯하다. 같은 과(性)에 속해 그런가 내가 보기엔 아내 쪽도 만만치 않더마는, 쩝…. 또 당신이 담임으로 맡고 있는 반 아이들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듯한 선생님이야 그렇다 쳐도, 학생들과 별 무리 없이 또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선생님까지도 눈물을 짜내게 만드는 제작진의 의도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 장면을 보고, "정신과의사는 예약 시간보다 일찍 오는 환자는 불안증, 예약 시간보다 늦게 오는 환자는 적개감 증후군, 예약시간에 맞춰오는 환자는 강박증으로 진단한다"는 유머를 떠올렸다면 나 역시 무슨 무슨 "증후군" 질환자로 분류될까? 예컨대 "전문가 혐오 또는 기피 증후군" 같은.

 

학문과 지식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는 건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폐해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학제적 연구” 나 “통섭” 운동도 - 난 실제의 통섭이론에 별로 큰 가치를 두진 않지만 - 그런 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위 프로들을 보며 찜찜해 하는 건, 인간을 전문 과학의 지배하에 두려하고, 그 전문가의 관점에서 개인들의 생활에 개입해서 그것을 '정상'으로 교정하려는 전문가 집단의 오만함이다. 게다가 거기에 시청률 경쟁에 목숨 건 방송사의 이해관계까지 가세해, 어차피 자기가 업으로 삼고 있는 영역 이외에서는 어느 분야에서든 비전문가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후견인 역할을 떠맡으려 하는 ‘반계몽주의’가 이 시대의 대세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날 더 불안하게 만든다.

 

나를 대신해 내 건강을 책임지고, 내 아이를 키워주고, 내 배우자를 만들어주는 전문가들의 사회. 나는 그들의 도움을 지불할 수 있는 돈만 있음 되는 세상.

철학상담은 심리학이 되었든, 의학이 되었든, 기타 어떤 분과 학문 영역이 되었든 그 영역들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개방된 중립지대에 꿋꿋하게 터를 잡고 있어야, 이미 그 전문 영역들에서 도움을 구했다가 좌절을 경험한 내담자를 도울 수 있다는 S. C. Schuster의 말이 새삼 실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