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정의(正義)가 전부인 사회

Kant 2010. 9. 24. 06:45

지난 여름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가 최장기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더니 MB정부가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가치로 ‘공정 사회’를 제시했다 한다.

샌델의 책은 아직 읽어 볼 기회는 없었지만 목차만 보아서도 베스트셀러가 될만큼 쉬운 책 같지는 않은데 참 희한한 일이다. 워낙 커다란 기업형 출판사가 출판한 책이라 특별한 매출 전략이라도 동원됐었나? 암튼 요즘 같은 세태에 철학 관련 책이 그것도 왕초보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닌 책이 많이 팔렸다는 사실은 (책이 팔려 나가는 거하고, 그 책들이 읽히는가 또 읽힌 책이 이해되는가하고는 별개의 문제지만) 좋은 일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공정사회"란 "사정이 아닌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하는 사회이며, "반칙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라고 한다.

"공평한 기회를 주고, 반칙과 특권을 허용하지 않으며 실패한 사람에게도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한 사회의 핵심입니다." -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

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들도 모처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가 정의라는 데에  한 목소리를 내는 듯하다. 공정성은 "보편적 설득력을 지니는 이념"이며, 현대 정치철학의 "최대과제"가 "정의론(正義論)"이요, "국가의 존재 이유는 정의실현에 있다"는 주장도 보인다. 


로마의 법학자 울피아누스(Domitius Ulpianus, 170?~228)의 말이 떠오른다.
"Honeste vivere, alterum non laedere, suum cuique tribuere" (영예롭게 살고,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말며, 각자에게 자기 몫을 주어라) - Digesta 1.1.10

모든 구성원에게 기회가 고루 주어질 뿐 아니라 그 구성원 각자가 수고한 만큼의 대가(merit)가 주어지고, 반칙과 특권이 통하지 않으며, 엄정한 법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마다할 사람은 없겠다. 사람이 모여 살기 위해 그 사회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곧 그와 같이 정의의 덕 내지 가치가 지배하는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공정성의 가치에 새삼 주목하는 것도 그만큼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직도 불공정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혹자는 "기적의 성장을 이루었지만, 다수 시민이 불공정한 사회라고 느끼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공정한 룰이 지배하는 선진국이 곧 이상 사회는 아닐 것이다.

철학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특정한 시기의 고대 아테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 것이다. 그 아테네 사회에서 평생을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아테네의 "정의로운 법"(소크라테스는 간혹 오해되듯 아테네 법을 악법이라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의 판결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정의의 덕이 인간 삶에, 특히 사회적 삶에 불가결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최고의 가치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