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제1부(Teil) 미적 판단력의 비판 / 제2편(Abschnitt) 미적 판단력의 분석 / 제2장(Buch) 숭고의 분석론>

Kant 2020. 12. 10. 10:22

 

 

§ 27 숭고의 판정에서 만족의 성질

 

1. 칸트는 숭고의 감정은 경외의 감정인데, 우리에 대해 법칙인 이념에 도달하는 데 우리의 능력이 부적합하다는 감정이라고 표현한다.

1.1 법칙(규칙)의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그것은 보편적인 조건에 대한 표상인데, 그 조건에 따라서 어떤 잡다한 것(Mannigfaltige)이 동일한 방식으로(auf einerlei Art) 정립될 수 있는(kann) 것이 규칙이고, 그 다양한 것이 그렇게 정립되어야만(muß) 할 때 법칙이다.(KrV, A 113)

1.11 법칙은 크게 두 가지인데, 자연의 법칙과 자유의 법칙이 그것이다. 전자는 자연의 잡다한 현상이 실제로 그것에 따라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규칙이며, 후자는 우리의 의지가 그것에 따라서 보편적이고 필연적으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규칙이다.

1.2 여기서(B 96=V 257) 이념을 법칙과 같은 것처럼 언급한 것은, 그다지 적합한 표현은 아닌 듯 보인다.

1.21 무한한 절대적 크기에 대한 이성 이념이 도덕법칙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관의 여타 능력들을 강제한다는 의미에서, 특히 절대적 크기의 이념이 상상력으로 하여금 모든 부분 크기 표상들을 하나의 직관 속에서 총괄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본 것 같다.

1.22 위의 요구는 실제로 불가능한 요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법칙이란 원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1.23 판단력은 그러한 이성의 요구에 대해 상상력의 시도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오히려 그러한 판정이 초감성적 세계에 타당한 이성의 법칙에 어울린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2. 숭고의 판정 시 마음의 상태는 평온한 관조 상태”(ruhige Kontemplation; calm contemplation가 아니라 동요[진동]”(Erschütterung, vibration), 즉 동일한 대상에 대해 일어나는 반발과 견인의 급속한 교체”(ein schnellwechselndes Abschtoßen und Anziehen; a rapidly alternating repulsion and attraction)와 같은 상태다.

2.1 상상력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한계를 절감케 하는 대상 앞에서 두려움으로 물러서는데 반해, 이성은 자신의 이념에 의해 반발 정도와 똑같은 정도로 그 대상에 이끌리게 된다.

미의 판정: 상상력과 지성의 유희나 합치(Einhelligkeit, unison) // 숭고의 판정: 상상력과 이성의 충돌(Widerstreit, conflict).

2.2 숭고의 감정의 성질”: 일차적으로는 상상력의 능력이 주어진 크기 표상을 하나의 직관 안에 총괄할 수 없음으로 인해, 즉 자신의 능력(감성적 현시)이 합목적적이지 못함을 지각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쾌의 감정인데, 이 불쾌감이 오히려 이성 이념을 환기시켜줌으로써 지적 총괄의 원천인 이 이성의 환기에 의해서는 다시 합목적적인 것으로 표상되는, 따라서 쾌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 28 위력으로서의 자연

 

1. 위력(Macht, power)은 큰 장애를 압도하고 극복하는 능력이다.

 

2. 역학적 숭고는 위력이 위력 자체로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를 압도하는 강제력으로 판단되지 않을 때 성립한다.

2.1 판단자가 어떤 위력(자연의 대상)을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대상은 그 자체로는 공포의 대상임.

2.2 “공포”(Furcht, fear)는 우리 능력이 어떤 힘 앞에서 저항하려 해도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될 때 그 대상이 공포의 대상임. [Angst(anxiety)와 다름]

2.21 숭고의 대상은 공포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대상이다. (Z. B. 피뢰침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 안에서 낙뢰를 바라보고 경험할 때, 뇌우 자체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나에 대한 위협으로서 내가 실제로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아니다.)

 

3.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숭고함을 판단할 수 없다. 마치 감각 욕망이나 자극에 대한 욕망으로서의 기호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미에 대해 공정한 취미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3.1 공포감은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고, 실제로 공포감을 주는 대상에서 벗어날 때 느끼는 쾌적함은 기쁨이지 숭고의 감정은 아니다. 전자는 다시는 가급적 그러한 위험의 상태에 노출되지 않겠다는 결의를 동반한 기쁨이다.

3.2 반면 숭고의 대상은 비록 그 자체로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우리의 마음을 이끄는 대상이다. (B 104f.=V 261)

 

[그렇다면 혹시 공포 영화도 숭고의 대상일 수 있을까?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이 모두 숭고하다고 할 수는 없다(B 102=V 260). 게다가 공포 영화의 소재는 주로 추악함이나 잔인함이다.]

 

4. 자연의 위력도 그 크기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능력의 불충분함, 제한성, 유한성을 자각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자연 존재자로서의 그러한 무기력이 이성 존재자로서의 힘을 상기시켜 준다. 즉 초감성적 존재자로서 우리 안에 있는 힘이 자연의 모든 힘을 능가한다는(극복한다는) 의식의 환기에서 역학적 숭고가 성립한다.

4.1 칸트는 역학적 숭고에서도 상상력을 동원하지만, 자연의 절대적 힘의 크기나 강도의 포착, 총괄과 관련해서라기보다는, 상상력이 그러한 자연의 힘에 의해 고무()되어 우리 인간 심성으로 하여금 자신의 규정성(스스로 부여하는 사명”?) 안에서 발견하는 고상함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해줄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현시해 준다는 맥락에서 이끌어 들인다.

4.2 상상력은 역학적 숭고에서는 좌절하는 당사자로서보다는 마음의 능력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자연의 도전이나 방해, 저항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감지할 수 있게 돕는 역할로서 고려된다. 이성에 봉사하는 역할을 맡는다.

 

5. 역학적 숭고와 인간 심성의 관계를 군인, 장군, 정치가, 종교적 경건함과 비교함

5.1 군인과 장군이 자신의 의무(평화의 실현)를 불요불굴의 태도로 수행하는 정신의 화신임에 비해 정치가는 이기심, 사리사욕과 줄곧 타협하므로 전자가 숭고에 어울린다.

5.2 종교의 경건함은 신성함에 대한 비굴한 굴종이나 권위에 대한 공포의 감정이 아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관조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의 정직성이나 고상함이 신성함이나 신의 의지에 일치한다는 사실을 직시함으로써 가능한 마음의 상태다.

5.21 어떤 강력한 존재자의 위력이 무서워 굴종하고 아첨하고 은총을 갈구하는 태도는 미신에나 어울리는 마음의 상태다.

5.3 숭고의 감정도 그 대상을 신과 동일시하고 그것에 비굴한 굴종의 태도를 보이는 것과 무관하다.

 

6. 숭고 판단의 관계의 계기에 관한 결론?

6.1 숭고의 판정에서도 미에 대한 취미판단의 관계의 계기에서와 같이 객체로서의 대상이나 그 대상의 객관적 목적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며, 판단자 자신의 내면(주관)에 놓여 있는 (또는 놓여 있어야 하는), 일체의 저항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의 존재에 대한 의식 또는 이념과의 관계를 고려한다.

 

※ 칸트에게서 미와 숭고의 문제는 한갓 허구적 세계 또는 그런 영역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인간성, 즉 인간의 인간다움과 관련한 또 그것의 실현에 관련한 매우 진지한 영역에 귀속되는 문제였다. 자연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초자연적인 질서에도 편입되어 있는 인간이 그와 같은 자신의 이중적인 질서 내지 정체성을 단순히 대립된 것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동일한 주관 안에서 또 이 세계의 현상계 내에서 만날 수 있는 것으로서 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이중적 질서의 대립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해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