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철학실천적 관점에서 본 칸트 철학

Kant 2018. 9. 19. 22:09

칸트철학의 철학실천적 소외?

 

철학상담여기서는 이것과 철학실천’(Philosophische Praxis)의 의미를 구분 없이 사용한다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조우하기 마련인 삶의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겪는 정서적 고통이나 정신적 괴로움을 해결하는 데 철학을 활용하여 도움을 제공하려는 활동이다. 철학이 무전제에서 출발하는 학문인만큼, 철학상담 또한 기존의 수많은 상담 접근법들이 지닌 태생적 한계에서 자유롭게 내담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며 그래서 이미 그 치유 효과와 영향력을 국내외에서 증명, 확대해 가고 있다.

하지만 철학상담이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인가 하는 물음은 철학실천에 전문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철학자들에게도 여전히 좀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난문으로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철학상담의 철학적방법론에 대해서조차 통일된 관점이 없다. 물론 이 같은 사정이 기존의 특정 상담이론에 의거해 상담을 수행하는 상담 전문가에게는 철학상담의 근본적 결함으로 보일지라도, 철학이라는 학문의 본성에 충실한 상담사에게는 지엽적 문제이거나 심지어 철학상담의 숙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철학상담이 잠재적 고객에게 좀 더 확실히 다가갈 수 있고 또 일부 여타 상담전문가들의 의구를 불식시키려면 철학상담 내부에서 먼저 그 일반적 절차와 정체성에 대한 최소 개념을 정립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다수의 철학상담 관련 문헌들은 상담으로서 철학의 존재 이유와 관련, 어째서 철학이 출발부터 상담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면서 정체성의 물음을 다룬다. 이때 주로 언급되는 철학은 고대 소크라테스와 몇몇 그 이전 철학자들의 주장들, 스토아 철학, 그리고 현대의 현상학과 그 직접적 영향 하에 등장했던 실존주의, 해석학 등이다. 그러나 고대나 현대 철학에 견주어볼 때 근대철학이 철학상담 문헌에서 합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예컨대 칸트철학 같은 경우 몇몇 예외 사례가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칸트가 차지하고 있는 철학사적 위치 때문에 형식적인 수준에서거론되는 실정이다.

칸트철학을 철학실천에 적용하거나 철학상담 방법론과 관련해 접근하고 해석하려는 국내의 시도도 아직까지는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기존 철학상담 문헌들이 철학상담을 이른바 “Doing philosophy”로 규정하고, 철학의 본래 과제가 상담과 다르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칸트철학을 철학상담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보다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논문 역시 그 같은 시도의 일환으로서, 칸트철학이 철학실천에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하는 몫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외람되지만 칸트철학 전체를 놓고 볼 때 철학실천의 관점에서 접근 가능한 여러 통로 가운데 가장 비옥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경로를 발견하는 것이 이 연구의 일차 목표다. 이를 위해 먼저 칸트철학에 대한 철학실천적 접근 가능성에 대한 개관이 불가피할 것이나, 이미 위의 각주에서 소개한 것처럼 선행 연구가 전혀 없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칸트의 소위 세계 개념에 따른 철학 의 철학실천적 의미를 정리할 것이다(2). 다음으로는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의 정신병리학 내지 심리치료와 밀접한 주제에 관한 칸트의 논의를 통해 그가 정서적 또는 정신적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철학적으로 접근했는가를주로 우울증(Grillenkrankheit, Hypochondria, Melancholia)에 관한 논의에 한정하여검토할 것이다(3). 마지막으로 칸트의 철학하기를 이른바 이중 트랙으로 규정하고, 그가 그러한 길을 걷게 된 철학실천적 동기를 헤아려 보고, 그 동기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인생론, 행복론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할 것이다(4). 이 과정의 진전과 더불어 한갓 철학교수가 아니라 철학실천가이자 철학상담사 아니 철학자 칸트의 진면목이 파편적으로나마 드러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철학논집 54(서강대 철학연구소), 141-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