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철학"으로 일컬어지는 헤겔 철학에서 예술과 종교의 관계를 "낭만적인 예술"과 "기독교적인 종교"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는 지문이다. 헤겔 철학은 난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그 체계의 논리적 구조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세부 논의를 따라가기가 의외로 어렵지 않은 철학이라 여겨진다. [물론 헤겔 철학 전공자는 이 말을 비전공자의 황당무계한 헛소리쯤으로 치부할 수 있다!]
먼저 헤겔 철학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철학 전공자에게도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용어가 바로 "정신"(Geist)이라는 개념이다. "정신"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이 아마 "물질"일 것이다. 일상 언어에서 이 두 개념은 보통 서로 대립적인 의미의 켤레 개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상어 사용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정신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가망성은 제로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먹고 사는 덴 아무 지장 없다.]
대체 헤겔이 말하는 정신은 무엇을 뜻하나?
“정신”은 타 언어로는 적절히 번역되기 어려운, 독일 철학 고유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단 물질 세계와 비물질 세계 모두를 포함한 세계 가능성의 원리라고 정의할 수 있다. 헤겔에 따르면, 물질과 정신을 대립의 관계로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초보적인 단계의 정신, 즉 감각으로서의 의식 단계에서나 성립하는 것이고, 이성의 단계에서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은 또 무엇을 뜻하나? 헤겔이 말하는 정신은 어떤 발전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이성과 동일시될 수 있지만, 우리가 이성을 좁은 의미로, 즉 합리적 사고의 능력으로서 그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시켜 주는 종차로 해석할 경우, 그것은 정신과 동일시될 수 없다.
헤겔의 정신은 어떤 의미에서는 스피노자의 "자연"이나 베르그손의 “생명력” 등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르그손에게서 이성은 세계의 연속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극복되어야 할 무엇(관점)이었으나, 헤겔의 경우는 자신을 최고로 발달시킨 이성만이 세계와 정신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헤겔의 정신은 세계 가능성의 원리로서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 같이 그 세계를 지속적으로 산출하기는 하되 거기에 몰입되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본성상 자기 자신을 의식하면서 세계를 대상화하고 객관화시켜 파악하며, 다시 어느 단계에 이르면 대상화된 세계와 자기 자신을 일치된 것으로서 파악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완성된 인식에 도달한다. 정신은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면서 스스로를 전개[발전]시키는, 또는 그에 따라서 자신의 완성도를 높여 가는 절대적인 존재 그 자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이 새로운 은하계 이미지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는 최근 보도는, 자연 철학적 인식이 계속 심화될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인 물질계 역시 정신의 자기 외화와 다른 것이 아니므로, 정신이 계속 자신을 전개해 나간다는 논리와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러한 정신의 자기 전개 그리고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은, 사적 차원의 사고, 감정, 관심사, 의도 등에 사로잡혀 있는 개인 마음 수준의 유한한 인간의 정신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된 인간 정신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안에서만 가능하게 된다. 그러니까 정신의 본래적인 모습은 인간의 정신, 그것도 개별적 의식이나 마음으로서의 자기 자신, 즉 개체성의 한계를 극복한 인간의 이성을 매개로 해서만 드러난다.
헤겔은 그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정신현상학(Die Phänomenologie des Geistes,1807)에서 이러한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을 근거로 해서 자신의 정신 철학 전체의 개요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그의 철학백과전서(1817)에 의하면 본래의 철학 체계는 논리학, 자연 철학, 정신 철학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논리학은 최고의 단계에 이른 정신, 즉 절대 정신(이성)이 자신의 전개 방식, 즉 자신의 활동을 자기 자신에 있어서 (즉자적인 방식으로) 인식하는 학이다. 이러한 논리학은 단순히 사유의 형식에 관한 학이 아니다. 즉, 순수 이성의 개념들이나 판단, 추리 등을 분석하고 그것들의 관계를 밝히는 데에서 그치는 학이 아니다. 그러한 개념들, 범주들, 판단, 추리 등은 헤겔에 따르면 사유의 규정, 즉 정신이 스스로에 대하여 행사하는 규정이면서 동시에 실재 존재 세계의 구조와 운동(변화) 방식과 일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의 논리학은 정신의 자기 규정 방식이 객관적 세계에 대하여 자기 산출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밝히는 과제를 수행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처음에는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신이 물질-비물질의 대립을 넘어선 모든 현실, 존재 그 자체를 포괄하는 세계 가능성의 원리라는 점을 기억하면, 그의 관점에 동의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여부를 떠나 그리 생뚱맞은 주장은 아니라 여겨진다. 어쨌든 헤겔은, 이성의 구조는 곧 현실의 구조와 같으며, 이성적인 개념들, 그리고 그 개념들 사이의 관계는 사실들이나 사건들, 또는 실재 세계로부터 추상되어 얻어진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한다. 즉, 현실이 이성의 자기 규정을 통한 전개 방식에 따라 산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헤겔의 생각은 동양의 주역 논리와도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64 개의 궤로 설명되는 주역적 논리의 전개 양상이 곧 현실 세계의 변화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에게서 자연 철학은 정신이 자신을 외적 존재의 형태로 파악하는 학문이다. 자연철학은 정신이 자기 자신의 본성을 말하자면 자기로부터 외화된 외부 현실 세계의 모습을 통해, 즉 자연을 통해 인식하는 과정을 뜻한다. 자연 세계도 그 가능성의 원리는 정신이기 때문에 결국 자연 철학은 정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 즉 자연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자들의 작업은 정신(절대적 정신 또는 이성)이 인간의 정신(인간 이성)을 통해서 자연에서 현시되는 자신의 본성을 스스로 인식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정신 철학은 정신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단계인데, 여기서 정신은, 인간 개개인의 정신, 집단의 정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술, 종교, 철학에서 나타나는 자기 자신의 본성의 완전한 실현을 통해 스스로를 파악한다고 한다.
이러한 철학 체계의 구분은, 정신이 자신을 각각 주관적 정신, 객관적 정신 그리고 절대적 정신으로 파악하는 작업에 상응한다. 그러나 논리학, 자연 철학, 정신 철학의 3 단계는 얼핏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정신이 자신의 역사성을, 즉 운동과 변화를 드러내는 과정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것은 정신 그 자체의 모습을, 즉 이데아로서의 정신의 모습을, 즉자태, 대자태, 즉자-대자태로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논리학에서의 정신도 정신 철학에서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구조를 가진 이성이다. 반면에 정신현상학에서 등장하는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에 관한 기술은, 감각적 지각으로부터 오성[지성]적 분별지―주관과 객관의 분리를 당연시하는―를 거쳐 이성적 절대지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정신의 자기 인식 과정을 역사성, 시간성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다.
위의 지문이 언급한 "낭만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것"은 당연히 각각 정신 철학 단계의 '예술'과 '종교'를 통한 절대 정신의 자기 이해 방식을 설명하는 개념들이다. 헤겔에 따르면, 절대 정신은 자연미나 예술미의 감성적 형태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며, 또 종교에서는 표상[비유적 사고]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사변 철학은 오로지 개념[적 사고]만으로 절대 정신을 파악[사고]한다. 그러므로 형식만 다를뿐 예술, 종교, 철학은 동일한 주제, 즉 절대적 존재, 절대 정신을 다루는 것들인데, 헤겔은 각 영역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미학적, 종교적, 철학적 의식 내지 정신의 각 특성이 어떠한가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개별 영역에서 정신이 밟아가는 역사적 전개 과정 역시 설명한다. 다시 말해 미적 의식의 전개 과정은 물론 그것으로부터 종교적 의식에로의 이행, 또 종교적 의식의 발달 과정과 그것에서 사변철학적 관점에로의 이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또 요구되는가를 기술한다. 그러므로 예술사, 종교사, 철학사적인 전개 과정 그리고 그 세 영역들 사이의 개념적 관계가 정신 철학의 주요 주제가 된다.
예술을 통한 정신의 전개 과정에서는 에컨대 그리스 예술이 기독교 예술을 선행하며, 종교의 경우에는 그리스 종교가 기독교 종교를 선행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의 모든 형식[단계]들이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종교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며, 또 절대적인 종교인 기독교 등장하기 이전에는 아무런 철학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예술작품으로서의 그리스 신전들은 당연히 그리스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 그리스 철학자들도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는 것을 헤겔이 몰랐을 리 없으니 말이다. 예술 개념으로부터 종교 개념으로, 그리고 다시 철학 개념의 이른바 변증법적인 이행은 시간적인 사건이 아니다. 즉, 그것은 개념적인 것이지 시간적이거나 역사적인 진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개념적 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즉 논리적인 차원에서는 세 영역들 사이의 우선성을 문제삼을 수 있지만, 이것은 시간적인 선후 관계와는 무관하다. 어쨌거나 감각보다는 상징적 사고, 또 상징적 사고보다는 개념적 사고에 우선성이 두어진다고 본 것이다.
헤겔은 예술사, 종교사, 철학사 이 각각의 세 영역에서도 변증법적인 패턴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으나, 일부 헤겔 철학 비판자들이 주장하듯, 예술이 멈추는 곳에서 종교가, 그리고 종교가 멈추는 곳에서 철학이 등장한다는 식의 무리한 논증을 제시하려 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정신의 활동은 역사적인 발전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 안에서는 하나의 예술 형식이 다른 형식에 이어서 출현하고, 또 종교에서도 하나의 종교적 의식 단계가 다른 종교적 의식 단계로 이어진다. 철학 체계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 정신의 활동이 끝없이 계속되는 한, 그 활동은 예술, 종교, 철학의 형식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절대 정신이 자기 자신을 그 인간 정신의 활동을 통해 파악하는, 자기 인식 활동에 종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세 활동 모두가 동일한 수준[차원]에 이른 정신의 자기 현시 방식인지 아니면 헤겔이 철학만을 최고의 정신 활동으로 간주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헤겔 사망 후 그의 철학에 대한 해석을 놓고 구(舊)헤겔주의, 중도파, 청년 헤겔파 등이 벌인 논쟁 참고. 인간이 몸을 가진 존재인 한, 순수한 사고[이성] 활동 자체와 동일한 것이 될 수는 없으므로, 예술이나 종교가 철학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실제로도 우리는 예술적 창작 활동이나 신앙 생활에서는 지복을 누리지만, 순수 인문학적-철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목격한다. 예술적 천재나 독실한 신앙인이 볼 때 철학도는 그들이 도달해야 할 롤 모델이라기보단 보잘 것 없는 이성적 사고에 매달려 불가능한 꿈을 쫓고 있는 불쌍한 중생에 불과할 것이다.]
절대 정신이 감각적인 대상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예술에서, 그것, 즉 절대 정신은 "미"(美), 즉 "이념에 대한 감성적 가상"(das sinnliche Scheinen der Idee)으로서 자신을 현시한다. 즉, 예술에서 절대자는 "이상"(das Ideal)이라는 감각의 베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미로서의 이념은 "진리"로서의 이념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절대자[절대 정신]인데, 전자는 예술, 후자는 철학을 통해 파악되는 것뿐이다. 그러나 파악의 형식 내지 양식은 서로 구별되므로 예술의 미적 직관[절대자에 대한 직접적 파악]과 철학의 개념적 사유는 같은 것이 아니다. 미로서의 이념은 이런 의미에서 "이상"을 통해 직접적으로 파악[직관]되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헤겔은 자연미보다는 예술미를 우월한 것으로 평가한다. 물론 전자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후자만을 정신의 직접적인 창조물―물론 자기 의식적인 인간 정신을 통한―로 간주한다. 정신이 자신을 자기 자신에게 직접 현시해 주는 것이 예술의 미이다. 이에 비해 자연미는 체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본래 자연 철학[특히 유용성(Nützlichkeit)의 관점]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여긴 것 같다. 자연의 대상들이 보여주는 규칙성(Regelmäßigkeit), 대칭성(Symmetrie), 조화(Harmonie), 합법칙성(Gesetzmäßigkeit), 또 동식물이나 인간 등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고, 나아가 생명체가 생명이 없는 자연의 사물보다 더 아름답다고 주장하면서도, 보여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면의 아름다움일 뿐 내면성과 그 내면에서 작동하는 정신은 아니라고(das äußerliche Bestimmtheit und Einheit … aber nicht immanente Innerlichkeit und beseelende Gestalt) 덧붙인다.(Ästhetik I, 15, 138 이하 = Jubiläumsausgabe, Bd.12, 20, 188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