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counseling

Ancient Spiritual Exercies and “Christian Philosophy”(고대의 영성훈련과 “기독교 철학”), in P. Hadot, Philosophy as a Way of Life, pp.126-128

Kant 2022. 4. 15. 17:06

1. 이냐시오 로욜라가 <영신수련>에서 출발시킨 명상 방법이 어떤 의미에서 고대철학의 영성훈련에서 기원하는지를 보여준 공로는 독일의 고대문헌학자인 파울 라보브 (1867-1956, Seelenführung=영혼 안내)의 업적이다. 그는 고대의 수사학자들이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기술들을 소개한다. 예컨대 그는 사건을 확충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며, 정서에 호소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방법을 언급한다. 그는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실천에 관한 훈련을 분석하며, 그것이 로욜라와 동일한 영성훈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라보브의 저서는 연구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작 라보브는 자신이 발견한 것이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다.

 

2. 라보브는 영성훈련이라는 현상, BC 3세기 그리스 정신세계에서 발생해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발전된 이른바 내면의 오리엔테이션”(Innenwendung)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시킨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영성훈련이라는 현상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졌었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 것처럼, 소크라테스/플라톤의 대화에서도 발견되며 고대의 막바지까지 계속되었다. 그만큼 그것은 고대철학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으며, 고대인들이 영성훈련이라 생각했던 것은 철학 그 자체였다.

2.1 라보브가 영성훈련의 범위를 헬레니즘/로마 시대로 제한한 이유는, 아마도 그가 그들의 윤리학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고려한 윤리학은 주로 윤리적 문제에 관한 지침을 다루었던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철학의 윤리학이었다. <127> 실제로 그는 영성훈련을 도덕훈련으로 규정할 정도였다.

 

우리는 도덕훈련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가지고서 또 특정한 도덕적 효과를 얻으려는 명확한 목표 하에 수행하는 절차 또는 특정 행위를 의미한다. 그것은 반복하면 할수록 언제나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며, 적어도 다른 행동들과 결합하여 체계적 앙상블을 형성하고자 한다.

 

2.2 라보브에 따르면, 기독교의 출현과 더불어 도덕훈련은 영성훈련으로 변했다.

 

쌍둥이처럼 본질과 구조 면에서 도덕훈련을 닮은 영성훈련은, 로욜라의 영신수련에서 고전적 엄격성과 완성도를 제고시켰다. 고로 영성훈련은 종교적 영역에 적합하게 되었으니, “영성 안에서의, 정신적 삶”(vita spiritualis)을 강화, 유지, 갱신하는 것이 그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2.3 기독교적 영성훈련은 기독교적 영성의 특정한 성격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죽음과 신성한 위격의 삼위일체적 삶(the Trinitarian Life of the divine Persons)에 의해 영감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도덕훈련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고대의 철학적 훈련을 고려할 때, 그 중요성과 의미를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 철학적 훈련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비전의 변화 그리고 우리 존재의 변신을 그 목표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도덕적 가치뿐 아니라 실존적 가치를 지닌다. 엄밀[강력]한 의미에서 도덕적 행위를 위한 지침뿐만 아니라 존재의 방식도 문제삼은 것이다. 결국 [고대의 철학적 훈련을 지시하는 용어로는] “영성훈련이라는 용어가 최선의 것이다. 영성의 총체성에 관한 훈련을 다룬다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3. 라보브의 글을 읽으면 마치 로욜라가 16세기 수사학 연구의 르네상스 덕분에 영성훈련을 재발견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고대인의 수사학은 훈련의 가장 철학적인 여러 구성요소들 중 단지 하나일뿐이다. 더욱이 교회가 세워진 이후 수세기 동안 기독교의 영성은 고대철학과 그 영적 실천의 계승자였다. 그러므로 로욜라가 자신의 저서의 방법론을 기독교 전통 자체에서 발견하는 데에는 장애물이 없었다. 이하에서 우리는 고대 기독교 사상의 전체 흐름 안에서 고대 [철학]의 영성훈련이 어떻게 보존되고 전달되었는지를 몇몇 인용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그 흐름은 기독교 자체를 철학으로 규정했었다.

<128>

4. 영성훈련이라는 용어에서 훈련은 그리스어 askesis 또는 melete에 상응한다. 우리는 칼 호이시 같은 사람(Der Ursprung des Mönchtums, 1936)이 했던 것과 같은 근현대적 의미의 “asceticism”(금욕주의: 식음료, , , 재산 등의 완전한 포기와 제한, 특히 성생활의 억제)을 논하지는 않을 것이며, 기독교적인 근현대적 금욕주의와 고대철학의 askesis라는 두 현상을 신중하게 구분할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에게 askesis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 영적 훈련만을 지칭했고, 사상과 의지의 내면 활동에 관한 것이었다. 견유학파나 신플라톤주의 같은 고대의 몇몇 철학에서도 기독교 전통과 유사한 성생활 또는 영양활동에 관한 실천 [지침]이 존재했었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러한 실천은 철학적 사고 훈련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다수의 저자들이 기독교와 고대의 금욕주의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에 관한 문제를 철저하게 다루었지만, 우리는 여기서 철학적 의미의 askesis가 기독교로 수용된 방식만을 검토하려 한다.

 

5. 기독교를 하나의 철학으로서 묘사한, 널리 퍼져있던 기독교 전통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동일시(assimilation)는 변증가(Aplogogists)로 알려진 AD 2세기의 저자들, 특히 유스티누스(Justinus, AD 100~165)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그리스 철학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기독교를 우리의 철학또는 이방인의(Barbarian) 철학이라 불렀고, 기독교를 그저 하나의 철학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바로 그 철학으로 여겼다. 그들은 그리스에 산재하던 철학들이 기독교 철학에 의해 종합되고 체계화되었다고 보았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로고스의 일부만을 소유했던 데 비해 기독교인들은 예수에 의해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된 로고스 자체를 소유했다고 주장했다. 철학이 이성의 법칙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라면, 기독교인들은 철학자였다고 할 수 있으니, 그들은 신성한 로고스의 법칙에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5.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이 주제를 오래 숙고했던 사람이다. 그는 철학과 paideia를 연결시켰는데, 후자는 인간 교육을 의미했다. 이미 그리스 철학 안에서 로고스, 또는 신성한 교육자가 인간 교육을 수행하고 있었으나, 기독교는 자신이 로고스의 완전한 계시로서 진정한 철학임을 자처했다. 철학은 우리의 행실을 가르쳐서 신을 닮게 만들고, 신성한 계획[oikonomia, 가부장 교육]을 모든 교육을 인도하는 원리로 받아들이게 했다”. <129>

5.2 기독교를 진정한 철학과 동일시하는 관점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의 가르침과 관련해 많은 측면에서 영감을 주었고, 그 오리게네스 전통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카파도키아 교부들인 카이사레이아의 주교 바실레이오스, 나지안조스의 주교 그레고리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등과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던 요한 크리소스톰이 그 대표자들이다. 이들은 우리의 철학”, “완전한 철학”, “예수에 따른 철학에 대해 말했다.

5.3 우리는 그러한 동일시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또 그것이 기독교에 대한 저 악명 높은 헬리니즘화에 크게 기여하는 건 아닌지를 물을 수도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많은 글들이 존재하며 나는 여기서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겠다. 다만 기독교를 철학으로 묘사함으로써 이 전통은 유대 전통에 이미 존재하던 경향,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사상의 계승자였다는 사실만 지적하겠다. 그는 유대이즘을 patrios philosophia(선조[교부들]의 철학)으로, 즉 유대민족의 전통철학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유대 출신의 로마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도 마찬가지다.

5.4 수 세기 이후 수도주의(monasticism)가 기독교적 완전성의 정점으로 여겨졌을 때, 이것 역시 철학으로 묘사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교부들은 계속 그 같은 표현을 사용했는데, 특히 폰토스의 에바그리오스 역시 그랬다. 시르의 주교였던 데오도렛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관점은 5 세기에도 등장한다.

5.41 치료자를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은 필로였는데, 그에 따르면 철학자란 법칙에 대해 명상하고 사색에 몰두하는 고독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베네딕트회 수도사이자 신학자였던 Jean Leclercq(1911-1993)에 의하면, 수도원 생활은 그리스 전통의 영향으로 인해 중세 내내 계속해서 철학이라는 용어로 지칭되었다. 예컨대 시토 수도회의 문헌에 따르면, 그 수도회의 창립자였던 12세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제자들에게 천체에 관한 철학을 가르쳤다. 마침내 영국 인문학자이자 주교였던 솔즈베리의 요한(AD 1115~1180)수도승이란 가장 올바르고 진정한 방식으로 철학하는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5.5 우리는 기독교와 철학을 이렇게 동일시하는 것이 지니는 중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점은 분명히 하고자 한다: 기독교가 지니는 비교 불가능한 독창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 나중에 다시 언급할 것인데, 특히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성경적/복음적 전통과 결합시는 데 들인 공(care)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가진 이 철학의 성격도 역시 강조할 것이다. 더욱이 동일시에 대한 경향성은 엄격히 역사적으로 한정된 범위 안에 제한되며, 늘 주로 변증가들이나 오리게네스 전통과 밀접하다. 어쨌든 그러한 경향성은 존재했고 그 중요성도 상당했으며, 그 결과로 철학적인 영성훈련이 기독교에 소개되었던 것이다.

 

6. 기독교는 영적 훈련을 흡수하면서 삶에 관한 특정한 양식, 영적 태도, 그리고 원시 기독교에는 없었던 색채의 조합(tonality)을 얻었다. <130> 기독교가 철학과 동화되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인데, 그 까닭은 철학 자체가 이미 무엇보다도 존재의 방식, 삶의 한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Leclercq가 지적하듯, “수도원적인 중세시대에는 고대와 마찬가지로 철학이 이론이나 지식의 수단을 지칭하지 않았다. 그것은 삶에 관한, 경험된 지혜였고 이성에 따르는 삶의 방식이었다.”

6.1 앞에서 우리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근본적인 태도가 prosoche(προσοχή, attention, mindfulness, 모든 순간에 주의함, 깨어 있음)라고 언급했다. 그들에 따르면, 깨어 있는 자는 언제나 그가 무엇을 행하는가뿐만 아니라, 그가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의식한다. 다시 말해 그런 자는 우주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신과의 관계를 의식한다. 그의 자의식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도덕적인 의식이다.

6.2 그런 의식을 지닌 자는 매 순간 자신의 의도들을 정화하고 바로 잡고자 애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에서, 선한 일을 행하려는 의지와 다르게 행동하려는 모든 동기에 대한 표식을 향해 [깨어] 있다. 하지만 그런 자의식은 한갓 도덕적 양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의식이기도 하다. “주의하는인간은 계속해서 신의 현존 속에서 살아가며, 신을 기억한다. 즐겁게 우주적 이성에 동의하고 만물을 신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6.3 이러한 일은 탁월한 철학적 태도이자 기독교 철학자의 태도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쓴 한 구절에서 발견하는데, 그것은 나중에 철학적으로 고취된 수도주의을 지배한 영성[정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것이다. “신성한 법이 두려움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철학자가 신중한 지혜’(eulabeia)와 자신에 대한 깨어 있음’(prosoche)을 통해 '마음의 평정'(amerimnia)을 얻고 유지할 수 있으며, 모든 일에서 죄와 타락을 피할 수 있다.” 클레멘트에게 신성한 법은, 철학자들의 우주적 이성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의 신성한 말이었다. 그것은 격정이라는 의미의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이는 스토아가 비난한 것이다, 사고와 행위에서의 어떤 용의주도함이다. 자신을 향한 그와 같은 주의함은 마음의 평정을 낳는데, 이는 수도주의가 가장 간절히 추구해 마지않던 목표들 중 하나였다.

6.4 자신에게 주의함은 카이사레이아의 바실레이오스가 남긴 매우 중요한 설교의 주제. 그는 자신의 설교를 신명기의 한 구절의 그리스어 버전에 기반하여 적었는데, “네 가슴에 하나의 숨겨진 단어도 없도록 너 자신에게 주의하라”[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였다. 그는 스토아와 플라톤 전통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이 구절에 기초하여 깨어 있음에 관한 자신의 전체 이론을 발전시켰다. 여기서는 바실리오스가 신명기의 이 특정 구절에 대해 주석을 단 까닭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이 전문 용어가 그를 각성시켰기 때문이라는 점만을 언급하겠다. 그는 자신에게 주의함이란, 신이 사상과 행위와 관련하여 우리의 영혼에 심어놓은 이성적 원리들을 일깨워주는 것에서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만, 다시 말해 우리의 영성과 영혼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우리의 것(우리의 신체) 또는 우리 주변의 것(우리의 소유물)에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131> 고로 깨어 있음은 우리의 양심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쉼없이 새롭게 검토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서 성립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내리는 판단을 교정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 부자이고 고상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우리보다 먼저 살다가 간 유명 인물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반대로 우리가 가난하고 면목이 없는 상태에 있다고 여긴다면, 우주가 우리에게 제공한 풍요로움과 장엄함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의 신체, 지구, 하늘, 별 등. 그러면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신성한 소명을 상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에게서 그 철학적 성격을 헤아리기란 어렵지 않다.

6.5 깨어 있음 내지 자신에 대해 주의하기라는 철학자의 근본 태도는 수도승의 근본 태도가 되었다. 357년 아타나시우스가 쓴 성인 안토니우스의 생애에서도 우리는 그와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는 성인이 수도자의 삶을 선택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다라고 간단히 적었다. 우리는 나중에 안토니우스 자신이 임종 때 제자들에게, “마치 매일 죽어가는 사람처럼 살거라. 너희들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거라. 그리고 나의 설교에서 들은 것을 기억하거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는 사실을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