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중년 여성이 한밤중에 사람들의 문을 두드리며 “비상, 비상”(Emergency, emergency) 하며 외치고 있다. 곧 그녀는 거의 아파트 건물 전체를 잠에서 깨운다. 그러고 나서도 여전히 그녀는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여전히 소리를 지르면서.
이 사례를 고려하면서 우리는 이전 장(章)들로, 우리가 계속해서 다시 방문하게 되는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유형의 상황은 패러다임적이며 거의 리트머스 테스트에 가깝기 때문이다. 요점은, 우리 사회가 위와 같은 상황에 인도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상황에 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에는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괜찮은 시작은 그것이 위험으로 가득 찬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는 일이다. ― 연약한 한 인간이 손을 뻗어 아무도 알지 못하거나 마음에 두지 않는 진실을 급히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뿐이다. 분명히, 여성을 집안으로 초대하고, 차 한 잔 또는 위안이 되는 어떤 다른 것을 제공하고,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언어가 표현하고 있는 것 자체를 넘어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말고 가능한 한 그럴듯한 방식으로 그녀의 전체적인 긴박감을 인정하라(심오한 수준에서 보면 그녀의 말이 100% 옳다는 점을 기억하라). 이것은 더 나아가 커뮤니티 또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또 그녀의 현재 상황에 대한 정직한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지적인 인간으로서, 존중심과 연민을 가지고 위기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녀의 광기가 진정되었을 때, 당신은 그녀의 어떤 걱정이 어떻게 그녀를 이곳에 오게 했는지, 그리고 그런 순간에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그녀는 반드시 자신의 경험(그리고 아마도 다른 모든 사람의 경험)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중 누구도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유토피아에서는 이러한 성격을 지닌 혼란스러움이 오늘날과 같은 "불편함"(inconvenience)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고 인간 가족의 일부이기 때문에, 한밤중에 아이들이 겁에 질렸을 때 우리를 깨우는 것을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이 우리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또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제에 좀 더 환영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다른 세입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된다는 사실이다.
참고 사항: 문을 두드린 여성이 행동을 시작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거주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아파트 건물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일)는, 아무도 그녀의 행동에 상응하여 도움이 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도움을 청했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사람이 그녀를 받아들이고 환영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것은 그 자체로 그 상황의 역학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아파트 건물 전체를 깨우는 대신 몇 가구만 깨웠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 여자와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 있는 사치나 여유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어떠한 유형의 시스템적 변화가 필요한가를 알려줄 뿐이다.
각 아파트 건물은 그 자체로 소규모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한 명 이상의 사람, 즉 개인적인 긴급 상황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대기자 시스템은 교대식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상응하여 친구 역할을 맡을 사람은 필요한 훈련을 받고 도움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또한 공동체 전체를 위해 영적인 학습 또는 기타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학습의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례에, 그리고 우리가 탐구한 모든 사례에는, 일반 시민에 대한 해답들이 놓여 있다. 그 해답들은 현재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심각한 정신병"을 잃고 있다는 이유로, 또 비용 일부를 분담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어쩔 수 없이 관여하고 있는 것들을 포함한다. 즉, 우리의 인생에서는 때때로 더 깊은 곤경 상황을 제시하는 예외적인 상황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Bonnie Burstow, Psychiatry and the Business of Madness. An Ethical and Epistemological Accounting 중에서
[너무 쿨한, 비현실적인 발상인가? 세계 최초로 anti-psychiatry scholarship을 출범시킨 당사자신데 조금 일찍 가셨네(1945-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