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B. Raabe, Philosophy's Role in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252ff. 요약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철학 상담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표가 존재한다.
1. 상담사는 내담자가 원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성취 가능하며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그것을 성취하도록 도와야 한다.
2. 내담자는 대부분 정서적 곤경 상황이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진다.
3. 내담자가 항상 그 고통의 원인을 분명하게 진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담사는 먼저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문제를 분명하고 조리 있게 표현하는(articulate) 일은 하나의 뒤얽힌 실타래를 풀어 나아가는 작업이라기보다는 서로 연결된 문제들의 복잡한 그물망을 푸는 작업에 비유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완결되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담을 내담자의 인생을 하나의 텍스트로 간주하여 읽어내는 일에 비유하기도 적절치 않다.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그 텍스트의 저자가 함께 하지는 않지만, 인생의 저자는 즉 내담자는 상담사와 마주하고 있으며, 자신의 삶이 반성되고 탐구되는 동안에도 그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담자의 삶은 그것이 검토되는 과정 속에서도 변한다. 완성된 텍스트와 달리 내담자의 현재 순간은 과거의 여러 다른 순간들과 연결되어 있고 또 예상되는 미래의 순간들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단선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기 곤란하다.
그것은 또 오래전에 파묻힌 과거를 파내려 들어가는 작업인 고고학적인 발굴 작업에 비유하기도 어렵다. 내담자의 문제를 조명하는 작업은 은폐되어 있는 원초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파헤치는 일종의 분석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다양한 이슈들을 드러나게 해주고 밝은 곳으로 가져오는 것이지 고고학자들처럼 땅을 파헤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발달 충동’(Entwicklungsdrang), 즉 성장을 향한 충동을 돕는 일이다. 그것은 빛을 밝혀주고 양육시켜주며, 성장을 고무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그것은 안내를 받아 발견하는 것(a guided discovery)으로서 숨겨진 미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싹을 틔워 실현시키고 자신의 삶에 대한 발전적인 이해(sprouting realizations and developing comprehension)를 돕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 상담의 과정은 성장하는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내담자는 상담사에게 이렇게 묻는다. “매사에 근심 걱정이 많은 제게 도움을 주실 수 있으세요?” (도표 참조)
“상담 나무”가 어떤 나무로 성장할지는 상담사와 내담자에게 즉시 드러나지 않는다. 그 나무는 복잡한 “씨앗”, 즉 내담자가 처음에 표현한 복잡하고 콤팩트한 문제들로부터 자라나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담의 전 회기에 걸쳐 다양한 “가지들”로 벋어나가며 성장을 계속한다. 어떤 가지들로부터 어떤 새로운 가지들이 자라날지 그리고 어떤 가지들이 만족스런 목표점에 도달할지를 예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각 내담자들마다 나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 내담자의 최초의 “씨앗”이 이전 내담자의 그것과 같아 보일지라도 – 예컨대 다양한 내담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다고 말할 때처럼 – 그 가지들은 통상 매우 상이한 방향으로 자라난다. 물론 실제로 하나의 씨앗이 무슨 씨앗인지를 분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주제들이 - 예컨대 “이것은 관계의 문제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 파악될 수는 있다. 하지만 성장 과정 중에 있는 나무의 다 성숙한 모습을 예견할 수는 없다.
상담 관계의 지속 기간은 얼마나 많은 가지들의 싹이 자라나는가, 그 사람의 삶의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가지들을 탐구하기를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각각의 가지에서 수행된 작업은 그 나무 전체의 통합적인 이해에 하나의 개별적인 해명을 보태게 된다.
(…) 철학 상담은 통찰을 가져올 수도 있고 질문을 계속 제기할 수도 있다. 또 곤경 상황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새로운 곤경 상황을 보탤 수도 있다. 예컨대 내담자는 자신이 어떤 상황 속에서 행한 어떤 행동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을 수 있지만, 상담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실제로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거나 타인들이 그의 행동을 간섭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철학 상담은 각각의 가지를 두 가지 방식으로 분석함을 뜻한다. 첫째는 현상학적인 검토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이것은 신념, 가치, 가정 등에 관한 문제인가? 이것은 희망, 두려움, 기대 등에 관한 것인가? 이것의 기원은 무엇인가? 이것은 삶에 어떠한 경험 가능한 결과를 가져오는가? 둘째는 해석학적 검토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이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도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등. 따라서 철학 상담은 탐구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더 생성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상담사와 내담자는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문제 요소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 유용한 통찰들, 신선한 대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철학 상담과 치료는 나무의 뿌리를 땅 속으로 탐구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각 나뭇가지들이 위로 뻗어 나아가는대로 따라가며 이뤄지는 탐색의 과정이며, 나뭇잎의 만개에서 그 마지막 지점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 씨앗이 나무로 성장하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라는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나는 학생들이 상담 과정 중에 자신들에게 제기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질문들을 제안한다.
1. 내담자가 말하는 것은 어떤 문제인가? (자식들에 대한 과도한 근심 걱정)
2. 내담자가 제시한 문제 안에 어떤 다른 요소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전에 자식들과 어떤 일이 있었기에 걱정에 대해 고민하는지. 부모가 다 존재하는지 혹은 자신이 유일한 부모인지. 자녀가 몇 명인지 등)
3. 정의되어야 하거나 분명하게 표현되어야 할 단어들이나 용어들이 있는지? (‘좋은 부모’ - 사회적 관점 또는 자식들 관점, 부모의 관점에서. ‘좋은 아버지’와 ‘좋은 어머니’ 사이의 차이. ‘근심 걱정’의 의미. ‘돌봄’이 곧 ‘콘트롤’과 같은 것을 뜻하는지 등)
4. 내담자가 참인 것, 좋은 것, 옳은 것 또는 거짓인 것, 나쁜 것, 그릇된 것으로 상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걱정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부모가 과도한 걱정을 할 수 있다. 콘트롤하는 부모는 나쁜 부모이다. 부모가 또는 자식들이 바뀌어야만 한다. 자식들은 또는 부모는 서로에게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등)
5. 도덕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행동이 존재하는가? (자식에 대한 과도한 근심에 어떠한 해악이 포함되는지. 자식들이 엄마에게 불평하면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지 등)
6. 문제들이 철학 연구의 어떤 부분과 관련되는가? (종교, 정치, 도덕 윤리, 형이상학, 인식론, 논리학, 실존주의, 여성주의, 감정이나 직관 등)
- 도 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