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한 최초의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은 프랑스 계몽기 철학자 Pierre Bayle이다. 그는 자신의 <역사적 비판적 사전>(1695-97)에서 스피노자를 소개하며 무신론이 어떻게 최고의 도덕적 탁월함과 양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 평가한다.[기독 신앙과 도덕적 됨됨이 사이의 무연관성을 주장]. 그러나 그의 철학에 대해서는 “가장 부조리하고 기괴한 가설”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일원론적 자연관이 전쟁—서로 대립하는 자들 사이의 극단적 다툼—과 같은 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백과전서파였던 D. 디드로는 스피노자의 실체를 물질적 실체로만 간주하여 디드로 자신의 유물론적이고 일원론적인 세계관, 우주관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겼다.
새로운 과학적 이론, 특히 뉴튼 물리학의 기계론적 이론이 함축한 신학적 의미에 민감하게 반응할줄 알았던 독일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스피노자의 철학이 가진 종교적 파급력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스피노자 사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일자(一者),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규칙성, 영혼과 자연의 동일성”(Frederick Albert Lange(1880), History of Materialism and Criticism of its Present Importance, Vol. II. Boston: Houghton, Osgood, & Co. p.147) 등의 요소에 매력을 발견했다.
G. 레싱과 F. H. 야코비, M. 멘델스존 등까지 끌어들인 이른바 “범신론 논쟁”에서, 레싱은 신성성에 대한 정통 신학의 가르침이 변화된 세계에서 더 이상 제 역할을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한다면서 스피노자의 범신론 철학을 긍정적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야코비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무신론과 동일시하면서 유대인인 멘델스존[레싱의 절친]을 주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대응해 멘델스존은 범신론이 오히려 유신론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포함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멘델스존은 세계와 그 세계를 만들어낸 신 사이의 구분[유신론]은 단순히 추상적 차원의 구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무언가가 그것에 대한 신적인 사유를 통해 서술될 수 없으면서도—즉, 신[영원]의 관점에서 사유될 수 없으면서도—그 신의 외부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사유(서술)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그 신의 전지성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는 것! [결국 신이 신 바깥에 자신에게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어떤 것—일종의 대립항으로서—을 상정하는 것 자체가 신의 무한성에 모순된다는 의미 같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유신론을 최소한 범신론보다 더 합리적이지는 못한 이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교가 원시종교에서 계시종교를 거쳐 이성종교 또는 보편적 자연종교로 진화해 간다고 여기는 계몽주의 철학의 종교관에서 봐도 범신론은 절대로 유신론에 뒤처지는 입장이 아닌 셈이 된다.
J. G. 헤르더, 괴테도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자신들의 종교관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영국 이신론자들에게도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오히려 그 기계론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정통 기독교 교리의 비합리적 요소를 배제하고 신앙을 합리성의 기반 위에 세우는 데 더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겼다. 이들은 자연과학과 기독교를 조화시켜 기독 신앙에서 신비적이고 초자연적 요소를 제거하여, 유물론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들의 중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 ①신이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맞지만 창조한 뒤에는 신조차 그 질서에 개입할 수 없다.[기적 같은 비합리적 요소들의 제거] ②삶에 필요한 도덕적 종교적 지식을 파악하는 데는 인간 이성만으로 충분하며 계시는 불필요하다.[성직자 계급의 독자적 성서 해독권, 예언 등 제거] 이 중 특히 ②를 더 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