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counseling

아헨바흐가 말하는 "경청"

Kant 2024. 8. 2. 11:13

단순한 듣기는 자연의 선물인 반면에 경청할 수 있음은 소수만이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능력으로서 습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는 대화에서 분별 있고 호감 가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에게 말해질 것에 대해서보다는 (자신이) 말하려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나는 이제 기껏해야 이러한 경청하기가 이미 누군가가 말했듯이 길고도 깊은 침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그러니까 때때로 철학상담에서 한 손님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이야기하며 보고한 후에 나에게 "그런데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군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 [이때] 내 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암시된다. "네, 당신이 맞습니다. 저는 숙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적어도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것을 듣는 것 이상으로 그를 이해하는 것을 요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오히려 그가 나에게 전달한 것이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

 

사람을 해독(解讀)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이론들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그것이 맞기는 하지만, 이론들이 우리에게 기껏 인간을 해독하는 것에 주의해야 하며, 하물며 결코 우리와 말하고 있는 그 한 사람을  해독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오로지 그때마다 그 한 사람과[의] 대화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인간을 이해했고 그 이해가 이론에 담겨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거나 배웠기 때문에 대화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상대방이 스스로를 나에게 이해시키도록 하는지, 그러니까 대체로 이해시키도록 원하는지에만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통해서 상대방을 이해한다. ...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잡동사니가 무조건 더 중요하다. ...

 

말하는 자가 [과연] 조언하는 자가 그에게 "빌려준" 저 다른 귀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르게 듣느냐[가 관건이다.] ... 그것[빌려준 귀]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그의 말을 경청하는 섬세하고 예민한 귀라면, 그는 지금까지 그의 불행이나 불운에 대한 자신의 "버전"에서 벗어난 중간 톤, 낮은 톤 및 높은 톤을 듣게 될 것이다. ...

 

조언하는 자는, 조언을 알지는 못하지만 조언을 구하는 자 자신처럼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만이 작가라는 소명을 받듯이, 조언을 잘 하는 자는 좋은 조언이 "값비쌀" 뿐만 아니라 드물고 아마도 예외적으로 한번 적중한다는 것을 안다. "일반적인" 조언은,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파악되었을 경우에만 이해되는 불행을 해결하지 못한다. ...

 

슈페만(Robert Spaemann)은 "철학의 사태가 해결책을 더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철학적 대화 숙달(Gesprächskönnerschaft)의 기본 원칙인데,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문제의 실제 깊이를 탐구하는 것, 아마도 어떤 수심 측정 추도 밑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심연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문제들은 다른 문제들과 얽혀 있는 것으로서 또는 이전의 어려움들의 결과물로서 파악되기 때문에, 그 얽히고 설킴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며; 또는 단순히 우리에게 그것들의 가장 깊은 내면을 누설하지 않고 "그 자체 안에 가지고 있는" 질문으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

 

모든 종류의 철학은 쉬운 질문을 어렵게 찾거나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Hans Blumenberg). 

 
 
Gerd B. Achenbach(노성숙 역), 철학상담의 철학. 기원과 발전(Philosophie der Philosophischen Praxis: Einführung), 학지사, 2024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