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counseling

곤경 없음의 곤경(Not der Notlosigkeit)

Kant 2024. 8. 12. 11:51

"Not der Notlosigkeit" 같은 류의 말장난으로 하이데거만큼 재미를 본 철학자가 또 있을까?

그이의 과거 행적이야 탓할 수 있고 또 탓해 마땅하겠으나 - 국내에서 "Heil Degger!"를 외치는 사람들 생각은 다를 수 있긴 하겠다 - , 그가 보여준, 시대 분위기에 대한 인문학적 감수성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철학상담 수업에서 난감하게 여겨지곤 하는 부분은, 나이나 인생 경험에 비해 너무 버거운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도 학생들이지만 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학생들에게는 대체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는가이다. 아니, 문제가 없다는 게 어째서 문제란 말인가? 모든 일들이 다 잘 풀리고 주변 상황이 어려움 없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얘기 아닌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전공 과목을 잘못 선택한 케이스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이어지는 일상적인 삶, 남들이 부러워하는 경험, 더 나아가 성공적인 경력, 달리 말해 현재적 삶에서 지극히 정상적일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들을 다르게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철학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에 그렇다. 게다가 특히 철학상담을 찾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오늘'이라는 이름의 명령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무 고민거리도 느끼며 살고 있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의 아픔에 다가갈 수 있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헨바흐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 모호한 '오늘'에 필적할 만한 방식으로 요구를 정당화하는 권위는 현재에 없다. ... 타당성 역시 ... '현재' 유통되고 있다는 것에서 추정된 자명성이라는 가상(假像)과 연관된다." 그러므로 그에 의하면, 상담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은 “‘오늘'의 절대주의로 괴로워하는" 인간들이다. 소크라테스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그는 이를테면, "동료 인간들이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산만함 속에서 살아가며 가졌던 주제와 걱정"에 직접 관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대체로 몽유병자들처럼 살았고 소모할 가치가 없는 것들에 대해 많은 성가신 일들"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철학은 불편했고", "성가신 것", 또 "소중한 삶의 루틴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일부 인문학자들이 오해하듯, 소크라테스 시대라 해서 철학자들이 대우받고(?) 살았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인문학 홀대한다고 어리광까지 피우는 건 좀 자제하자.] 철학은 "사람들의 뜻에 따르고 그들에게 봉사하는 대신에 그들을 존중하면서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과거 동양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서양에서는 철학이나 인문학이 즐거움[만]을 주는 학문이 아니었다. 첨부터.

 

따라서 소크라테스적 정신을 잇고자 하는 철학 상담사라면, 내담자가 스스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하고, 현재의 갈등을 "더 고귀한 갈등"에 비추어 바라볼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비단 내담자나 상담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말로, 정말로 원하는 것" - 각자의 "다이몬적인 것"이라 해도 좋겠다 - 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중요성이 "우리 자신에게 명료해지고 이 물음에 비추어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이 철학, 철학 상담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장 명백하고 어디에나 있으며 가장 중요한 사실들은 종종 인식하고 토론하기가 가장 어렵다". 이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으나, 이제 막 생물학적 나이로 성인기에 접어든 대학생들에게도 해당하는 주장이리라. 

 

"두 마리의 어린 물고기가 길에서 헤엄치다 우연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늙은 물고기를 만난다. 그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안녕, 젊은이들, 물은 어때?' 두 마리의 어린 물고기는 한동안 계속 헤엄치다가 마침내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바라보며 말한다. '도대체 물이 뭐야?'"(There are these two young fish swimming along and they happen to meet an older fish swimming the other way, who nods at them and says “Morning, boys. How’s the water?” And the two young fish swim on for a bit, and then eventually one of them looks over at the other and goes “What the hell is water?")

 

이 인용문은 https://fs.blog/david-foster-wallace-this-is-water 및 아헨바흐, 철학상담의 철학. 기원과 발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