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조사 후유증은 상당히 늦게서야 나타난다고들 하는데, 벌써 통증 사흘째. 대낮부터 누워있자니 기분이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비몽사몽 진입 중에 별안간 휴대폰이 울린다.
”요새 출근 안 해? 이사 전에 보자더니 왜 감감 무소식이야?“
한줌도 안 되는 친구 중 한 녀석이 안부 전화다.
최후까지 내곁에 남는 건 누굴까?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이다.
어쩌면 마누라나 자식이 아니라 친구일지도.
이도 저도 아니면 반려동물이라도 키워야 할라나? 아니지. 말년에 갸들 개모차나 밀고 다니는 집사 노릇은 할 짓이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저번에 애니매이션에서 봤던 것 같은 약간 어수룩한 AI 장착 로봇이 낫지.
"대체 어떻게 산 거냐? 암에나 걸리고."
헉, 이건 얼마 전 인터넷에서 어떤 암 환우가 암환자에게 가장 상처 되는 말이라 했던 건데 … 참 이래 이~~쁘게 말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같다.
"야, 그런 말은 암 걸린 사람한텐 가장 상처 되는 말이야. 가려서 하라우. 에효, 그런 말 폼새로 아직도 ㅇㅇ 엄마한테 버림 안 받고 사는 게 용타."
하긴 내 경우만 봐도 "어쩌다 암환자"라는 표현만큼 당사자에게 와 닿는 표현도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술담배를 해댓으면 또는 무절제하게 살았으면 암에 다 걸리겠냐? - 이런 게 건강한 보통 사람들 생각이지 않을까?
나야 술은 소주 한두 잔 아니면 맥주 한두 컵 그것도 학회 뒷풀이 때나 군대 동기들 만날 때에나 했던 게 전부고, 담배야 시작도 안 했건만. [7-80년대 대학가에선 회식 때면 제일 먼저 한 짓거리가 참석자 전원한테서 회비부터 징수해 그 돈으로 담배 공구해 좌중에 풀어놓는 거였다. 담배 피우지 않는 난 그런 관행이 부당하다고 여겼지만 그땐 그런 시절이었으니 이의 제기를 할 수도 없었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간접 흡연 같은 개념도 당근 아예 없었고. 이리 막무가내 방식이 몸에 밴 게 라떼 세대이니 MZ 세대가 기필코 계몽시키려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치리라.]
음주나 간접 흡연이 아니라면, 주택에 사는 대략 20년 동안 마당에서 자주(?) 숯불로 그릴 해 처먹었던 게 문제였나? 그게 내가 무지해서 실천했던 가장 잘못된 삶의 방식? 쩝…
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있을 수 있겠지.
어쨌거나 암에 붙들리는 데 기여했을 수도 있을 이유를 몇 개라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스런 일이다. 그래야 덜 억울한 느낌이 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이유를 못찾는다 해도 내 나이 정도면 딱히 억울해 할 일은 없다고 본다. 물론 소아암은 아니다.
자신이 자의적으로 행한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후회하고 책임을 지되 그렇지 않은 일, 책임 없는 일에 대한 자책이나 비난은 가슴에 담지 말라는 게 칸트의 조언 아니었던가! 반면 굳이 전생업보론까지 동원해 심리적 위안으로 삼으려는 사고 방식은 뭐랄까... 왠지 조금 쪼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