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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bs 6 (2025.2.27)

Kant 2025. 3. 7. 23:15

방사선 조사 후유증은 상당히 늦게서야 나타난다고들 하는데, 벌써 통증 사흘째. 대낮부터 누워있자니 기분이 여간 착잡한 게 아니다. 비몽사몽 진입 중에 별안간 휴대폰이 울린다.

 

”요새 출근 안 해? 이사 전에 보자더니 왜 감감 무소식이야?“

 

한줌도 안 되는 친구 중 한 녀석이 안부 전화다.

 

최후까지 내곁에 남는 건 누굴까?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이다.

어쩌면 마누라나 자식이 아니라 친구일지도.
이도 저도 아니면 반려동물이라도 키워야 할라나? 아니지. 말년에 갸들 개모차나 밀고 다니는 집사 노릇은 할 짓이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저번에 애니매이션에서 봤던 것 같은 약간 어수룩한 AI 장착 로봇이 낫지.

 

"대체 어떻게 산 거냐? 암에나 걸리고."

 

헉, 이건 얼마 전 인터넷에서 어떤 암 환우가 암환자에게 가장 상처 되는 말이라 했던 건데 … 참 이래 이~~쁘게 말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같다.

 

"야, 그런 말은 암 걸린 사람한텐 가장 상처 되는 말이야. 가려서 하라우. 에효, 그런 말 폼새로 아직도 ㅇㅇ 엄마한테 버림 안 받고 사는 게 용타."  

 

하긴 내 경우만 봐도 "어쩌다 암환자"라는 표현만큼 당사자에게 와 닿는 표현도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술담배를 해댓으면 또는 무절제하게 살았으면 암에 다 걸리겠냐? - 이런 게 건강한 보통 사람들 생각이지 않을까?

 

나야 술은 소주 한두 잔 아니면 맥주 한두 컵 그것도 학회 뒷풀이 때나 군대 동기들 만날 때에나 했던 게 전부고, 담배야 시작도 안 했건만. [7-80년대 대학가에선 회식 때면 제일 먼저 한 짓거리가 참석자 전원한테서 회비부터 징수해 그 돈으로 담배 공구해 좌중에 풀어놓는 거였다. 담배 피우지 않는 난 그런 관행이 부당하다고 여겼지만 그땐 그런 시절이었으니 이의 제기를 할 수도 없었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간접 흡연 같은 개념도 당근 아예 없었고. 이리 막무가내 방식이 몸에 밴 게 라떼 세대이니 MZ 세대가 기필코 계몽시키려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치리라.]

음주나 간접 흡연이 아니라면, 주택에 사는 대략 20년 동안 마당에서 자주(?) 숯불로 그릴 해 처먹었던 게 문제였나? 그게 내가 무지해서 실천했던 가장 잘못된 삶의 방식? 쩝…

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있을 수 있겠지.

 

어쨌거나 암에 붙들리는 데 기여했을 수도 있을 이유를 몇 개라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스런 일이다. 그래야 덜 억울한 느낌이 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이유를 못찾는다 해도 내 나이 정도면 딱히 억울해 할 일은 없다고 본다. 물론 소아암은 아니다.

자신이 자의적으로 행한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후회하고 책임을 지되 그렇지 않은 일, 책임 없는 일에 대한 자책이나 비난은 가슴에 담지 말라는 게 칸트의 조언 아니었던가! 반면 굳이 전생업보론까지 동원해 심리적 위안으로 삼으려는 사고 방식은 뭐랄까... 왠지 조금 쪼잔해 보인다. 

 

하기사 애당초 누군가의 의도적인 행동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보장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했었다면 종교가 등장할 수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새삼 종교만큼 인간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제공하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지난 세기에 프로이트가 그 역할을 정신분석이 대신할 수 있다는 과격하고도 도전적인 신념을 전파하기 전까지 종교가 대다수 인간에게 제안했던 가장 중요한 약속이 바로 그거 아니겠는가. ‘믿어라! 그러면 정의로운 보상이 있을지니.‘

물론 반항끼 돌연변이 유전자를 타고난 철학도들에게는 종교만큼 끔찍스런 짐도 없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