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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철학 연구를...

Kant 2007. 7. 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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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철학 연구에 나타난 칸트 철학에 대한 이해와 오해*





I. 들어가는 말


칸트 서거 200주년이던 지난 2004년은 국내의 칸트 연구가 대략 100년의 역사를 기록한 해라고 한다.1) 칸트 수용의 역사가 한 세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관점에 따라서는 한국에서의 칸트 연구가 이제 단순한 “소개”나 “해설”의 수준을 넘어 독자적인 “재생산”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1) 그러나 연구의 양적 축적과 팽창만으로 연구 수준의 심화와 향상을 자부하기 이전에 혹 그러한 자가 진단에 허점은 없는가 하는 겸허한 자기반성이 앞서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 전개될 내용은 그동안 국내외의 칸트 철학 연구 업적물들에 드러나 있는 칸트 철학 이해의 수준에 대한 평가라는, 보기에 따라서는 무모한 시도이다. 기준의 자의성에 대한 시비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절차가 적용될 것이다. 먼저, 명백한 문헌학적 오류의 사례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되, 관련 문헌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평가 - 대부분 암묵적인 - 와 결부된 문제점들을 지적할 것이다. 여기에는 칸트 전집에 관한 편견, 칸트 유고에 대한 평가 문제, 칸트 작품 번역서, 연구 보조 자료 등의 활용 문제 등이 포함된다. 다음으로는 기존의 칸트 연구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칸트 철학 연구의 업적물들의 학문적 위상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몇 가지 상징적인 사례들을 통해 가시화시킨다. 칸트 연구의 질적 진보의 문제, 번역의 문제, 연구 대상의 집중 문제 등이 그 대상들이다. 그 다음에는 칸트 철학 수용의 역사에서 비판철학의 성격이 어떻게 상이하게 규정되어 왔는가 하는 문제를 실마리로 삼아, 칸트 철학 해석의 다양성이 갖는 한계나 그 허용 범위에 관한 물음을 제기하고자 한다. 국내의 칸트 연구와 해외의 그것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고 하여 반드시 이 논문이 국내 연구 수준의 국제화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두고자 한다.

본 연구는 체계적이고 엄밀한 칸트 철학 연구를 돕기 위한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서, 그 최종적인 의도는 바람직한 철학 연구의 방법과 학문적 기반 작업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있지, 소모적인 쟁의를 야기하는 데 있지 않다. 또한 이 연구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인문학, 특히 서양 철학 분야의 연구가 현재 꾸준히 쌓아가고 있는 외형적 성세의 포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적지 않은 부분에 존재하는 학문적 실질의 빈곤함 - 물론 필자 역시 이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지만 - 을 노출시키고자 한다. 그 결과 칸트 철학을 비롯하여 철학 연구 일반의 질적 도약을 이루기 위한 몇 가지 기본적인 조건들이 가시화될 수 있을 것이며, 일차적으로 칸트 철학에 국한한 것이기는 하지만, 연구 업적물들의 학문적 한계와 그 구체적인 원인을 지적해 보임으로써 인문학적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II. 칸트 철학 관련 문헌들의 평가 문제


1. 칸트 전집 및 유고, 강의 필기 등에 관한 오해

보른이 칸트의 생존시기에 출판되었던 작품들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펴낸 번역집 이래 현재까지 발간된 칸트 전집은 대략 9종에 이른다.2) 이들 전집들 각각의 특징들을 여기서 상론할 여유는 없으되, 칸트 연구에서 자주 발견되는 원전 평가와 관련된 몇 가지 원칙적인 문제점들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3)

먼저 가장 자주 발견되는 문제는, 한편으로는 칸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게 퍼져있는 학술원판 칸트 전집에 대한 맹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대한 무지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칸트 작품의 번역에 사용되거나 칸트 철학에 관한 학술 논문에서 인용되고 있는 원전은 대부분의 경우 이 학술원판이다. 물론 그나마 이것은 사용 원전의 종류를 밝히고 있는 경우에 국한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아예 출처조차 밝히지 않고 원전의 쪽수만을(“A” 또는 “B” 등으로) 적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학술원판이 표기하지 않고 있는 원본(Originalausgabe)의 쪽수를 표기하면서 번역 대본으로 학술원판을 사용한 것처럼 밝히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관행은 칸트 철학의 역사, 특히 칸트 전집 편찬의 역사가 그 각 시기들에서 지니는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학술원판의 심각한 결함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는데 그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4)

우선 제 1부(1. Abteilung)의 경우 대부분 칸트의 원고가 포함하고 있던 철자법이나 구두법 상의 특징들이 단순히 “식자공 관행”(Setzerschlendrian)을 구실로 암암리에 수정되어 칸트 본래의 의도가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다. 따라서 학술원판을 칸트가 생전에 스스로 출판했거나 또는 그의 위탁에 의해 출판된 저작물들(소위 “Druckschriften”)의 번역 대본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한 요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각권 말미에 포함된 편집자들의 ‘사항설명’(sachliche Erläuterungen)과 ‘상이본 및 교정’(Lesarten), ‘작품소개’(Einleitung) 등은 번역 및 원전 이해에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칸트의 인용물들에 대한 출처를 소개하고 있는 제 1부의 사항설명의 경우, 매우 빈약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의 칸트 연구가 진행되면서 잘못으로 드러난 내용들을 포함한다.5) 뿐만 아니라 1910년부터 시작된 신판(Neuauflage) 작업과 1968년 이후의 재인쇄(Nachdruck) 작업 등을 거치면서 보충, 교정된 내용들이 오히려 더 많은 오식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재인쇄 작업은 일부 자료를 누락시키기까지 했다.6) 따라서 번역이나 인용 시 원본의 문장부호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학술원판이나 카시러판 등의 교정 내용(emendatio, conjectio)까지도 소개하고 있는 바이셰델판을 기본 대본으로 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특히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에서 발행하는 바이셰델판은 최근판까지도 계속해서 바로잡아야 할 원본 처리 과정의 오식들을 수정해오고 있다.

제 2부, 즉 서간집의 경우는 칸트 작품집 중 ‘최고 걸작’(Meisterwerk) 중 하나로 꼽히기는 하지만 역시 1955년 23권에 보충된 서신들 이후에 다시 발견된 서신들이나 칸트가 공직 생활 동안 주고받은 편지들을 포함하지 못하고 있거나 누락시켰다. 그런데 이 후자는 특히 칸트의 전기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7)

칸트의 유고를 모아놓은 제 3부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그 작성 연대의 분류에 관한 것이다. 문헌학자로서 30년 이상 칸트 유고의 편찬에 공들였던 아디케스(Erich Adickes)는 칸트의 <단편>(Reflexion)들의 작성 연대를 33 개 이상의 시기로 추정하고 상세히 구분하였는데, 그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려 했던 계획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아무튼 아디케스의 사후, 개별 유고들의 작성 연대에 관한 논쟁이 지속되어 오고 있는데, 그만큼 이 문제가 칸트 철학 성립 역사의 연구뿐 아니라 그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조망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헌들의 활용은 신중한 태도를 요구한다.8) 이 외에도 제 20권에 포함된 <판단력 비판의 초판 서론>이나 <미와 숭고의 감정에 관한 고찰들에 대한 언급들> 역시 중요한 오식이나 제목과 거의 무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9) 따라서 예컨대 후자에게서 칸트 미학 이론의 원초적인 형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칸트 학자가 있다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학술원판의 마지막 부분이자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제 4부는 칸트 강의의 기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일차적인 문제는 여러 종류의 강의 필기들이 가지는 철학적인 의미나 중요도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의 문제를 유보하더라도 기존의 학술원판 전집이 강의 필기 원본 자료의 본래 모습을 활자화하는데 문헌학적으로 충실하지 못했던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따라서 이 자료들이 칸트 연구에 기여할 수 있을 잠재력의 상당 부분을 훼손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식은 물론 내용 누락, 강의 필기의 연대 추정 상의 오류, 상이본들에 대한 고려의 미흡, 유고와의 연관성을 무시한 편집 등 일차 문헌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격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10) 물론 이러한 한계를 염두에 두면서 직접 관련되는 <단편>들과 함께 활용할 경우, 강의 필기들이 칸트의 1차 작품들(Druckschriften)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판단할 때 학술원판에 무비판적으로 의지함으로써 번역이나 논문의 권위를 포장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번역 대본의 선택의 문제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뿐만 아니라 유고나 강의 필기물 등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학술원판에 수록된 유고나 강의 필기물 등에 기초하여 칸트의 1차 작품들의 내용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11)

학술원판의 편찬 역사나 한계에 대한 무지가 단적으로 들어나는 사례로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칸트 전문가들의 전문 연구서나 논문들에서 학술원판의 최초 출판 년도를 1902년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최초로 출판된 학술원판의 작품은 제 1권이 아니라 1900년에 출판된 서간집인 제 10권이다. 특히 영미권 칸트 연구의 경우 학술원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 단적인 예로서, 칸트 인간학을 주제로 한 펜실베니아 대학의 한 박사 학위 논문은 학술원판에 포함되어 있는 바움가르텐의 <형이상학>의 위치조차 잘못 파악하고 있을 정도이다.12) 국내의 어떤 번역서의 경우는 칸트의 <단편>(Reflexion)을 “회고”로 둔갑시켜(?) 번역하기도 한 실정이다.


2. 칸트 작품 번역서, 주석서, 연구 보조 자료 등에 대한 이해와 활용 문제

번역서 가운데에는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칸트의 생존시기에 그의 주요 작품들을 망라하여 라틴어로 옮긴, 보른의 번역집을 가장 권위 있는 참고 자료들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번역집은 “18세기 독일어와 현대 독일어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오해를 제거하는 데 도움을”13) 줄 뿐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 개념들이 어떻게 칸트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고 독일 철학 고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예를 들면 보른이 <도덕형이상학 원론>의 “원론”(Grundlegung)을 “fundatio” 대신 “constitutio”로 옮긴 것, 또 <덕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와 <법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의 “기초”(Anfangsgründe)를 “initia”로 옮긴 반면,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의 “기초”는 “elementa”로 번역한 것 등은 해당 작품들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14)

칸트 저서들의 주석서들 가운데에도 고전적인 것들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겠으나, 여기서 그 방대한 자료들의 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구분 기준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다음에서는 연구 보조 자료, 특히 칸트 철학 용어 사전과 색인집 등에 대해 알아보자.

이미 칸트의 생존 시기부터 있어왔던, 비판철학 용어들의 가치 (또는 무가치)에 대한 논란은 동시대 칸트주의자들을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이니케, 하이덴라이히, 슈미트, 멜린 등은 초기 칸트 철학 용어 사전의 대표적인 저자들이다. 이 중에서 슈미트의 사전을 많이 표절한 것으로 보이는 하이니케의 사전과 도덕철학 용어만을 다룬 하이덴라이히의 사전보다는 슈미트와 멜린의 것이 여전히 탁월한 가치를 지닌다.15)

슈미트의 사전은 단순히 비판철학의 개념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개념들의 체계적인 연관관계를 고려함으로써 칸트 철학의 이해에 크게 기여하였다. 심지어 “apriorisch”, “aposteriorisch” 등과 같은 비판철학의 새로운 용어들을 조어함으로써 오히려 칸트와 더불어 비판철학의 성립 자체와 수용에 사소하지 않은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사전이 개념의 선정이나 풀이 방식에 있어서 한 세기 이상이나 뒤에 나온 아이슬러의 사전16)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안목과 수준을 갖추었다는 사실은 양자를 모두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두 개의 사례만을 들어보자. “Streiten”(논쟁하다, 논의하다) 개념을 슈미트의 사전에서 찾아보면, “Disputiren”(토론하다) 개념을 찾아볼 것을 지시하고 있는 바, 거기서 두 개념들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칸트 원전(<판단력비판>)에 근거하여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면, 아이슬러 사전에는 이 두 개념들이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Selbstdenken”, “Geschicklichkeit” 등의 개념도 누락되었을 뿐 아니라, “Klugheit” 개념의 경우 당연히 참조 표시가 되어 있어야 할 “Imperativ”나 “Pragmatisch” 대신 “Praktisch”가 등장하고 있다. 사전 편찬자의 칸트 철학 이해가 얼마나 빈약한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판단된다. 칸트의 일부 유고와 편지들을 고려한 점을 제외한다면 아이슬러의 사전의 장점을 헤아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슈미트의 사전이 콤팩트한 규모의 칸트 사전이라고 한다면, 멜린의 사전은 분량 면에서나 깊이 면에서 이제껏 만들어진 칸트 사전으로서는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미 두 권의 비판철학 해설서 (Marginalien und Register zu Kants Critik der Erkenntnißvermögen) (1794/95)를 통해 칸트 자신으로부터 비판철학에 “각별히 명석한 설명”과 “통속성”을 부여해준 능력을 인정받았던 멜린은17) 1797-1803 기간 동안 칸트 철학 전체에 대한 상세한 용어 풀이 사전을 출판하게 된다. 그의 작업은 때로는 “노예적”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칸트 자신의 의도에 충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8) 칸트 철학의 특정한 개념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이 사전은 그 개념에 대한 가장 충실하고 전체적이며 체계적인 조망을 제공할 것이다. 그의 개념 설명은 주관적인 해석을 최대한 자제하고 가능한 칸트 자신의 언급에 기초하되 체계와 깊이 또한 놓치지 않기 때문에, 칸트 철학의 전문가들이 보조자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19)

사전편찬술(Lexikographie)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증가와 컴퓨터 기술의 발달은 칸트 연구자들로 하여금 1960년대 이후 칸트 철학 용어들의 색인집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것이 마틴의 색인집이다.20) 학술원판 칸트 전집의 모든 어휘들을 색인화하여 이른바 “축어적 색인집”(Wort-für-Wort-Index)과 동시에 그 전집의 편찬 방침에 적합한 용어 색인집(Sachindex)을 지향한 마틴의 계획은, 그 방대함으로 인해 10여년 이상의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작 단계에서 중단되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세 권의 색인집은 여전히 칸트 연구의 중요한 보조자료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그의 작업은 사전편찬술 일반에 관한 활발한 학제적 토론을 촉발하였으며, 특히 이후 컴퓨터언어학의 도움을 통한 색인집 작업에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21)

중단된 마틴의 계획을 새롭게 확대된 컴퓨터 응용 기술을 사용하여 발전 계승하고자 하는 시도가 트리어 대학 칸트 연구소의 칸트 색인집이다.22) 이 색인집은 칸트의 논리학 강의 필기로부터 시작하여 칸트 논리학 강의의 교재였던 마이어의 <논리학 적요>, 또 볼프의 <독어 논리학>, 람베르트의 <신기관> 등 논리학 관련 텍스트들과, <도덕형이상학 원론>, <실천이성비판>, <도덕형이상학> 등 윤리학 관련 저서들과 윤리학 강의 필기 및 교재 등, 도덕철학 관련 텍스트들의 위치색인(Stellenindex)과 문맥색인(Konkordanz)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색인집은 또한 마틴 등이 봉착했던, 데이터 처리술을 사용한 선행 색인 작업의 문제점들을 숙지한 결과 표준 표제어의 처리(Lemmatisierung)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극복하였고, 기본 텍스트인 학술원판 등의 오류를 교정함은 물론 사항설명과 상이본들의 결함들을 보충하는 등, 칸트 사전편찬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칸트의 서신교환들을 포함하여 칸트 출판저서들에 등장하는 어휘들의 포괄적인 문맥색인을 자처하는 <10권의 칸트 문맥색인집>과, 1권부터 13권까지의 학술원판 전집을 전산화하여 수록한 CD롬판 칸트전집류들이 제작되었으나, 대부분 경제적인 이익만을 추구하여 급조된 것들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매우 의심스러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23) 특히 전자의 경우, 표준 표제어의 처리 과정 등을 일체 생략하고, 1960년대에 사용되던 OCR 카드의 한계 때문에 코드화가 불가능했던 텍스트 부분들을 그대로 남겨두는 등, 최소한의 학문적 기준조차 만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24)

사전류나 색인집 등과 같은 보조자료들은 칸트 연구의 수행에 필요한 엄청난 시간과 수고를 절약해주는 것들이면서도 실제로는 참고문헌 목록에서 생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연구업적물의 질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학문적인 주목을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국내의 제반 여건상 독자적인 보조자료의 창출이 어렵다면, 기존의 자료들을 무분별하게 활용하기 이전에 그것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평가의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III. 기존의 칸트 연구 수준에 대한 이해의 문제


1. 어느 연구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철학과 같은 인문학 분야에서는 기존 연구의 업적물들이 이루어 놓은 학문적 진전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연구력의 낭비가 커다란 문제라고 여겨진다. 물론 철학에서는 수학이나 자연과학에서와 달리 학문적 진보를 말하는 일 자체가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는 관점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치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 철학을, 또 헤겔이 칸트 철학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성립 가능했다고 보고, 그래서 철학에서의 이른바 ‘창조적 오해’에 대한 옹호론을 펼치는 일도 가능하거니와, 과거의 철학에 대해 가능한 한 객관적인 해석을 추구하는 이른바 “역사적 철학”을 벗어나 “체계적 철학”을 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도 가능하다.25) 그러나 철학의 역사에서 학문적인 진보를 말하는 것이 전적으로 넌센스가 아니라고 한다면, 또 철학 연구에서도 질적 비교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허황된 꿈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면, 과거와 현재의 연구 결과물에 대한 진지한 검토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미국 학위 논문의 사례는 실제로 영어권의 칸트 이해가 학술원판의 연구 수준을 소홀히 함으로써 나타나는 구체적인 오류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부주의에 의한 실수로 간주하기에는 칸트 철학의 이해와 해석에 있어서 너무나 치명적인 결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칸트가 바움가르텐 등 볼프 학파 철학의 형이상학을 넘어서기 위해 그것에게 지불했어야 했던 고민을 이해하는 수고를 생략한 채 그저 “체계적인 관점”이라는 미명 하에 그의 철학함에 동참하거나 그것을 비판하려는 무모한 시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볼프 전집의 편찬을 통해 볼프 철학의 르네상스를 실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에콜(Jean Ḗcole) 같은 학자조차도 볼프 철학과 칸트 철학의 관계를 논하면서 볼프가 “경험과 이성의 결합”(connubium rationis et experientiae)이라는 용어를 통해 경험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의 상호 보완 관계를 강조한 것을 칸트가 몰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에콜은 그러한 잘못된 인식에 근거하여 칸트 철학의 형성에 볼프 철학이 행사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는 그가 만일 기존의 칸트 논리학 강의의 색인집을 참고하기만 했더라면 손쉽게 피할 수 있었을 종류의 것이라는 점에서 큰 아쉬움을 남긴다.26)


2. 국내의 서양철학 고전 번역의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빈약한 번역 문화와 변역가로서의 “확고한 직업의식” 내지 전문의식의 부족27), 그리고 가독성(可讀性)을 철저히 무시한 “원전중심주의”28) 등 나름대로 원인 분석과 해결 과제 등이 꾸준히 지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칸트 철학의 번역에 관해서도 “양적인 성과”는 돋보이는 반면 “질적인 탁월함”이 실종된 현실을 직시하고 자성하고자 한 시도가 없지 않았다.29) 김상봉은 앞의 각주에서 언급한 글에서 <순수이성비판>의 국내 번역 6종을 검토하고서 각 번역서들의 형식적 특징들뿐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상의 오역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다시 후자의 원인들을 “불철저한[= 철저하지 못한?] 원전이해”, “문법적 이해부족”, “정확한 우리말”30) 표현능력의 부족 등에서 찾는다.

철학 비전공자가 원전을 직접 번역하지 않고 번역자 자신에게 친숙한 언어로 이미 번역된 텍스트를 중역한 경우, 그러한 오역이 거의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해당 언어에 관한 문법적 지식과, 해당 원전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갖춘 전공자라 할지라도 18세기 독일 철학계의 논의나 당시의 언어 사용법에 관한 충분한 지식이 없다면, 역시 오역의 위험을 피해가기 어렵다. 예를 들어 18세기 독일어에서는 “Kultur”와 “Zivilisation”의 의미가 현재의 그것과 서로 바뀌어 사용되었다든가, “Historie”라는 단어가 여전히 “경험적 지식”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 전치사 “vor”가 현대어의 “für”의 의미로 쓰였으며, “Erinnerung”은 오늘날의 “Ermahnung” 정도의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 또 “Empfindung” 개념은 18세기 중반까지는 “Gefühl”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 등,31) 그 사례는 무척 많다. 한국칸트학회의 한 발표 논문에서조차 “physische Geographie”가 아직도 “물리적 지리학”으로 번역되고 있는 사실 역시 그러한 기본 지식의 한계에 기인하는 오역이라고 보는데, 이러한 잘못을 피하기 위해 추천할만한 방법은, 의심스러운 개념들을 아델룽이나 그림 등의 사전에서 미리 조회해 보는 일이 될 것이다.32) 또 근세철학의 라틴어 원전을 번역하는 경우라면, 근세의 라틴어가 고전 라틴어와 일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고려하여, 근세 라틴어 사전을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33)


3. 국내의 칸트 철학 연구가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여전히 충분히 다양화되지 못하고 특정 주제들에 집중해 있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한번쯤 집고 넘어가야할 사실로 여겨진다. “칸트 철학” 하면 “비판철학”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칸트는 그의 이른바 “공식 철학” 이외에도 역사철학이나, 인간학, 자연철학, 교육학, 종교철학 등 다채롭고 상이한 주제들에 대해서도 작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따라서 3대 비판서에 대한 연구의 편중 현상은 칸트 철학의 풍요로움을 이해하기 위해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다. 칸트 원저의 국내 번역 현황만 보더라도 <순수이성비판>, <형이상학 서론>, <도덕형이상학 원론>, <실천이성비판> 등을 제외한 다른 저서의 경우는 복수 이상의 번역서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34) 도덕철학 분야 안에서도 칸트의 완숙기의 저작인 <도덕형이상학>의 번역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번역서에 크게 의존하는 국내의 도덕철학 관련 학위 연구논문들의 상당수는 그 제목들이 아무리 거창해도 - 아니 거창한 만큼 오히려 더더욱 - 제한된 원저들에만 의존하거나 엇비슷한 수준의 다른 논문들과 그 내용을 서로 복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 뻔하다. 그나마 한국칸트학회의 정기 간행물인 <칸트연구>가 3대 비판서를 주제로 시작한 이래, 칸트 철학의 철학사적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그것과 주요 철학자들과의 사상적 연관성을 다루고 다시 정치, 문화 분야 등에서 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내 칸트 연구 주제의 다양화를 도모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35)


4. 칸트 연구의 수준에 관한 논의에서 비켜갈 수 없는 문제들에는 칸트 비판철학 해석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의 범위나 한계에 관한 것도 속한다. 칸트 이후의 유럽 철학이 칸트 철학의 긍정적 수용이든 비판적 대결이든 그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칸트 이후 유럽 철학을 광범위한 의미의 “칸트주의”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36)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칸트주의의 사례들을 비판철학의 수용과 이해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비판철학은 때로는 단순히 독일 관념론의 선구로서(마르크스주의와 실존주의), 때로는 학문이론의 효시(신칸트주의)로서 간주되었고, 심지어는 실증주의 논쟁의 대립 당사자들인 비판이론과 비판적 합리주의 역시 각각 그들의 입장을 칸트 사상의 진정한 계승자로 간주했던 것이다.37) 물론 누구도 칸트주의의 칸트 철학에 대한 창조적인 오해의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또 순수한 칸트 연구나 사상을 그렇지 않은 것과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엄격한 의미에서의 칸트 연구에 대한 질적 수준을 논하는 일이 아예 부조리하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만일 칸트 철학을 하나의 완결된 이론의 체계로서 이해하고 그 이론적 잠재력에 의거해 연구자 자신의 특정한 해석학적 문제의식이나 관점을 정당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자 한다면 그러한 시도를 본래의 의미에서 칸트 연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때때로 칸트 철학 자신의 본래 모습을 그것이 성립되어 나온 역사적, 사실적 족쇄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그것의 고유한 내적 구조를 무시한 “재구성”과 “파괴”를 불가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38)

이에 반해 본래적인 의미의 칸트 연구는 역사적인 칸트 해석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신뢰할 수 있는 칸트 철학의 원전 텍스트를 확보하고 번역 등을 통해 재생시키는 작업을 비롯해서, 비판철학의 형성 과정, 개념사, 전거사 등 문헌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방식에 따른다면, 칸트 연구자들이 발견하고자 했던 칸트 철학의 체계는 완성되어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성 속에서만 주어질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오로지 발생적인 관점에서만 기술될 수 있는 문제 개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39) 비판철학을 칸트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특정한 성격을 지닌 완결된 철학체계로 간주하여 임의의 틀에 짜 맞추어 해석하는 대신, 여기서는 해석의 자유를 자제하되 칸트 철학 자신의 고유 논리와 그 형성 과정에 초점이 두어진다. 이러한 연구에서는 비판철학의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 예컨대 <순수이성비판>이 인식론이냐 존재론이냐 논리학이냐 하는 등의 성격 규정 문제, 그리고 그때 발생할 수 있는 내적 모순의 문제 등이 발생적이고 역사적인 조망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자의, 즉 칸트주의의 칸트 해석이 칸트 문헌에 대한 과감한 접근을 통해 “철학적 논의의 장을 다채롭게 해주고, 사유의 지평을 확대시켜 준 공로”를 마땅히 인정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본래의 칸트 연구에 의존적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40) 자유분방한 칸트주의가 굳이 ‘칸트 연구’라는 제한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정이 다르겠으나, 만일 칸트 연구로서 인정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역사적이고 문헌학적인 칸트 이해의 선행 연구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IV. 맺는 말


소위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언제나 인문학 자신의 단골 주제였다는 사실은 굳이 인문학의 역사를 들추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철학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출발부터 항상 현실로부터 소외되어 왔고, 시대착오적인 학문으로 대접받았다고 할 수 있다.41) 그러나 철학은 묘하게도 이성이 스스로의 업적에 자만하고 그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오히려 가장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기 일수였고, 위기의 시기에는 그 위기를 자양분으로 삼으며 성장해 온 학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이 등장할 때마다 철학은 화려한 말과 글의 성찬이 아니라 자신의 도구인 개념적 사유와 논리를 정비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해 온 것이다. 마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소피스트들의 허식과 수사에 대해 엄밀한 사유와 객관적인 논증에 의한 지식으로 맞섰듯이, 오늘의 인문학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도 연구에 있어서 엄밀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라 생각된다. 위에서 지적한 제반 상황들을 고려할 때, 특히 칸트 연구의 경우, 질적인 성장을 위해 앞으로 더 강조하고 충족시켜야 할 몇 가지 조건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모든 인문학 연구에 공통으로 해당되는 사항이겠지만, 칸트 철학의 원전에 대한 충실한 문헌학적 이해를 강조하여야 한다. 칸트 전집들의 특징들과 한계들뿐 아니라, 출간 작품들, 서간문들, 유고들, 강의 필기들 등 그 각 구성 부분들의 학문적 의미나 중요도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번역서나 주석서, 사전이나 색인집 등 각종 보조자료들에 관한 올바른 평가와 활용법 역시 칸트 연구자들이 숙지하여야 할 내용들이다. 이들 자료들은 연구의 시간과 수고를 절약시켜줌은 물론 연구의 질과도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 들어서 컴퓨터 사용이 일상화되고 관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칸트 관련 자료들에 대한 디지털화 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므로, 이 분야의 데이터 활용에 대한 칸트 전공자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칸트의 전 작품에 대한 신뢰할만한 번역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년 전 근세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의 전 작품들을 3년 안에 번역하려 한다는 국내 관련 학회의 계획에 관한 한 일간지 기사를 읽고 아연실색한 일이 있는데, 번역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학문적 풍토가 얼마나 팽배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칸트의 학술원판 전집의 출판은, 물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는 변수가 개입되었다고는 하나, 다수의 전문가들이 대를 이어가며 한 세기 동안이나 지속해서 노동한 결과의 산물이다. 언어와 문화적인 배경이 사뭇 다른 세계의 철학 작품을 번역하는 일이 어느 정도의 노력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감히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모든 연구는 해당 연구 주제의 현재 수준(status quo)에서 출발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연구 결과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연구의 기여 부분과 그 한계를 명확하게 제시하여야 한다. 이것 역시 큰 틀에서 보면, 기존 문헌에 대한 일목요연하고 정확한 개관을 전제하여야 가능한 일이다. 루핑에 따르면, 2000년과 2001년에 칸트 철학과 관련하여 출판된 논문 내지 저서들의 수는 각각 무려 706건, 963건에 이를 만큼 이 분야에서는 엄청난 양적 팽창이 이뤄지고 있다.42) 그만큼 기존의 연구 자료의 학문적 우수성과 권위를 선별하고 인정하는 기준과 능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특히 국내의 칸트 연구에서는 연구 분야의 다양화를 좀더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몇몇 번역된 원전에 치우친 연구 풍토는 자칫 유사한 내용의 복제와 양산을 초래하고 연구의 참신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따라서 참고 자료의 선별과 평가에 있어서는 엄정한 기준을 적용하되, 연구자가 가능한 한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연구 주제를 선정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할 것이다.




























* 이 논문은 2004년도 충남대학교 자체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1) 한국칸트학회와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가 주최한(2004. 5. 29) 칸트 서거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대회보, <칸트 철학과 한국 사회 문화>에 실린 백종현의 「한국철학계의 칸트 연구 100년(1905-2004)」, 1쪽 및 같은 이의 「한국에서 칸트 철학 수용과 활용」, <칸트 사후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대회보, 동아시아의 칸트 철학: 수용과 전망>(범한철학회, 한국칸트학회편: 2004. 6. 11), 8쪽 참조.


1) 위의 두 글 각각 10쪽과 13-14쪽 참조. 백종현은 1985년 이후 15년을 국내 칸트 연구의 심화시기로 간주하며 그 근거로 “다수의 단행본 연구서의 출간”, “칸트 철학 전문 박사들이[=의] 대거 배출”, “「한국칸트학회」[의] ... 활발한 연구 발표 활동”, “‘각론’ 위주의 연구서들”의 등장 등을 제시하고 있다.


2) Immanuelis Kantii opera ad philosophiam criticam, latine vertit Fredericus Gottlob Born, 4 Bde., Leipzig 1796-1798 [Neudr. Frankfurt a. M 1965]. 보른의 것을 제외한 기존의 칸트 전집들의 종류와 목차에 대해서는 Norbert Hinske와 Wilhelm Weischedel의 “Inhaltsverzeichnisse der verglichenen Ausgaben”, in: dies., Kant-Seitenkonkordanz, Darmstadt 1970, 271-299쪽 참조.


3) 여러 종류의 칸트 전집들에 대한 소개에 대해서는 이엽의 「칸트 철학 연구를 위한 문헌학적 물음」, <인문과학논문집>(청주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편), 제 18집(1998), 71-86쪽과, 칸트 전집들의 상이한 편찬 방침과 칸트 철학 체계 해석의 문제에 대해서는 졸고, 「칸트 철학 연구에서 체계성과 역사성」, <철학연구>(대한철학회), 제 86집(2003. 5), 5-9쪽 참조.


4) 학술원판의 결함들에 관한 상세한 논의는 Norbert Hinske, “Probleme der Kantedition. Erwiderung auf Gerhard Lehmann und Burkhard Tuschling”, in: Zeitschrift für philosophische Forschung, Bd. 22(1968), 408-423쪽; ders., “Die Kantausgabe der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und ihre Probleme”, in: Il cannocchiale 3(1990), 229-254쪽 참조. 더 나아가 1998년 6월 1일부터 4일까지 독일 연구협회(DFG)의 주최로 마르부르크에서 개최된 학술회의 “Zustand und Zukunft der Akademie-Ausgabe von Immanuel Kants Gesammelten Schriften”에 대한 Thomas Sturm의 보고서 “Immanuel Kants Gesammelten Schriften. Thomas Sturm über Zustand und Zukunft der Akademie-Ausgabe”, in: Information Philosophie, März 1999, 48-53쪽 참조.


5) 이에 대해서는 Hinske, “Die Kantausgabe der Preuß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und ihre Probleme”, a.a.O., 238쪽 이하 참조. 학술원판 제 1부의 문제점에 대한 의식은 이미 1950년대에 멘쩌나 하임조에트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Paul Menzer, “Die Kant-Ausgabe der Berliner Akademie der Wissenschaften”, in: Kant-Studien 49(1957-58), 337-350쪽과 Heinz Heimsoeth, “Zur Akademieausgabe von Kants gesammelten Schriften. Abschluss und Aufgaben”, in: Kant-Studien 49(1957-58), 351-363쪽 참조. 이외에도 Gerhard Lehmann, “Zur Geschichte der Kantausgabe 1896-1955”, in: Deutsche Akademie der Wissenschaften zu Berlin 1946-1956, Berlin (Ost) 1956, 422-434쪽 참조. 힌스케는 레만이 위의 글에서 학술원판 제 1부와 관련하여 내렸던 부정적 판단을 1969년 (Beiträge zur Geschichte und Interpretation der Philosophie Kants, Berlin 1969, 3-26쪽)에 일부 수정한 사실을 지적한다. 힌스케의 위의 글, 238쪽 참조.


6) 힌스케, 위의 글, (15-16참조.)


7) 서간집의 기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Werner Stark, Nachforschungen zu Briefen und Handschriften Immanuel Kants, Berlin 1993, 15-16쪽 참조.


8) Lothar Kreimendahl은 그의 저서 Kant - Durchbruch von 1769 (Köln 1990)에서 1770년까지 이르는 비판철학의 형성 과정을 발전사적으로 탐구하면서 칸트 유고의 성립 연대 추정과 관련한 논쟁들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의 연구에 대한 평가는 Norbert Hinske, “Prolegomena zu einer Entwicklungsgeschichte des Kantischen Denkens. Erwiderung auf Lothar Kreimendahl”, in: De Christian Wolff à Louis Lavelle Métaphysique et histoire de la philosophie, Hildesheim u. a. 1995, 102-121쪽 참조.


9) Hinske, “Die Kantausgabe der ...”, a.a.O., 245-247쪽 및 Marie Rischmüller, “Einleitung”, in: dies.[Hg.], Bemerkungen in den Beobachtungen über das Gefühl des Schönen und Erhabenen, Hamburg 1991, XI-XXIV쪽 참조.


10) Hinske, “Die Kantausgabe der ...”, a.a.O., 247-252쪽, 또 앞의 주에서 언급한 Information Philosophie에 실린 Sturm의 보고서, 52쪽 참조.


11) 칸트가 남긴 자료들이 칸트 연구, 특히 발전사적 연구에서 부여받아야 할 권위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Hinske, “Prolegomena zu einer ...”, a. a. O., 110쪽 참조.


12) Holly L. Wilson, Kant's Pragmatic Anthropology and It's Relationship to Critical Philosophy (Diss. Microfilm)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1989, 102쪽 각주 96. 그녀는 학술원판 15권과 17권이 포함하고 있는 바움가르텐의 <형이상학>을 학술원판 15권과 18권이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13) 이엽, 같은 글, 73-74쪽의 각주 1 참조.


14) Born, 같은 책, Bd. 2, 139, 253쪽; Bd. 4, 539, 695쪽 참조.


15) Samuel Heinicke, Wörterbuch zur Kritik der reinen Vernunft und zu den philosophischen Schriften von Herrn Kant, Preßburg 1788 [Neudr. Brüssel 1968]; Karl Heinrich Heydenreich, Propaedevtick der Moralphilosophie nach Grundsätzen der reinen Vernunft, 3 Theile, Leipzig 1794, Teil III: Enthaltend ein kurzgefaßtes Wörterbuch der moralischen Sprache; Carl Christian Erhard Schmid, Wörterbuch zum leichtern Gebrauch der Kantischen Schriften nebst einer Abhandlung von Carl Christian Erhard Schmid, Jena 41798(11786) [Neudr. Darmstadt 1976]; Georg Samuel Albert Mellin, Encyclopädisches Wörterbuch der kritischen Philosophie, oder Versuch einer fasslichen und vollständigen Erklärung der in Kants kritischen und dogmatischen Schriften enthaltenen Begriffe und Sätze, 6 Bde., Leipzig u. a. 1797-1804 [Neudr. Brüssel 1970]; ders., Maginalien und Register zu Kants Critik der Erkenntnißvermögen. Zur Erleichterung und Beförderung einer Vernunfterkenntniß der critischen Philosophie aus ihrer Urkunde. Neu hrsg., von Ludwig Goldschmidt, 2 Tle., Zullichau 1794f. [Neudr. Aalen 1969]. 슈미트 사전에 대한 힌스케의 Einleitung(VII-XXXII쪽)과 멜린의 사전(Encyclopädisches Wörterbuch ...)에 대한 골드슈미트의 “Zur Würdigung der Kritik der reinen Vernunft”, in: Mellin, Maginalien und Register zu..., a.a.O., Theil 1, 1-167쪽 참조. 골드슈미트는 멜린의 사전 평가와 관련하여 그것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표현조차도 “산 자들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멜린의 사전의 가치를 평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같은 책, 1쪽)


16) Rudolf Eisler, Kant-Lexikon Nachschlagewerk zu Kants sämtlichen Schriften / Briefen und handschriftlichem Nachlass, Berlin 71930 [Neudruck Hildesheim und New York 1977].


17) 칸트가 멜린에 보낸 1795년 3월의 편지 참조. Brief Nr. 654c (학술원판 XXIII 498).


18) 그러나 Birken-Bertsch는 멜린의 사전이 칸트 원전에 대한 어느 정도 자유로운 해석을 보여준다고 한다. Haano Birken-Bertsch, “Mellin, Georg Samuel Albert”, in: http://www.uni-magdeburg.de/mbl/Biografien/1055.htm.


19) 예를 들어 칸트의 “나”(ich) 개념에 대한 멜린의 풀이를 보자. 그는 칸트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서로 구분되는 “나” 개념을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아무런 구분 없이 그저 5쪽에 걸쳐 칸트의 관련 텍스트만을 열거하고 있는 아이슬러의 사전과 비교할 때, 전자의 사전이 지니는 현재적 가치를 짐작하게 해준다: 1.선험적 자기의식 혹은 사유함의 논리적 주체 2.경험 혹은 경험 심리학 내지 경험적 자기의식의 대상 3.순수 심리학의 대상 혹은 1번의 “나”를 오해한 것 4.가상체(noumenon)로서의 나 혹은 사유함의 선험적 기체(Substrat) 혹은 예지적 나 (Bd. 3, 334-368쪽 참조).


20) Gottfried Martin(Hg.), Allgemeiner Kantindex zu Kants gesammelten Schriften, Bd. 16 u. 17 ( Wortindex zu Kants gesammelten Schriften, bearbeitet von Dieter Krallmann und Hans Adolf Martin, Berlin 1967); Bd. 20 (Personenindex zu Kants gesammelten Schriften, bearbeitet von Katharina Holger, Eduard Gerresheim, Antje Lange und Jürgen Goetze, Berlin 1969).


21) 칸트 철학 사전류 및 색인집의 역사와 각 작품들에 관한 소개와 평가는 Heinrich P. Delfosse, “Einleitung. Kantlexikographie und Sprachdatenverarbeitung” in: ders., Stellenindex und Konkordanz zur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Stuttgart-Bad Cannstatt 2000, XII-LXIV쪽 (여기서는 XXVIII쪽) 참조.


22) Norbert Hinske, Lothar Kreimendahl und Clemens Schwaiger, Forschungen und Materialien zur deutschen Aufklärung, Abteilung III: Indicies zur Philosophie der deutschen Aufklärung, Stuttgart-Bad Cannstatt 1983ff.


23) Kant-Konkordanz in zehn Bänden, hrsg. von Andreas Roser und Thomas Mohrs unter Mitarbeit von Frank R. Börncke. Mit einem Vorwort von Wilhelm Lütterfelds, 10 Bde., Hildesheim 1992-1995; Kant im Kontext. Werke auf CD-Rom, Berin 1996 (Karsten Worm, InfoSoftWare). 이 자료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들과 그 근거들에 대해서는 Delfosse, 같은 글, XXIX-XXXV쪽 참조.


24) 예컨대 “anima”와 “animus” 등과 같은 개념들을 서로 구분하지 않는다거나, 희랍어 표기를 아무런 언어학적 고려 없이 그저 독일어로 옮긴 것, 또 문맥의 흐름을 전혀 무시한 문맥확인용 텍스트(Konkordanztext)의 표기 등에서 이 색인집의 수준을 엿볼 수 있다.


25) 푼텔(Lorenz B. Puntel)은 현대 독일철학계의 문제점을 다수 학자들이 과거 철학자들의 철학에 대한 연구, 다시 말해 “역사적 철학”에 종사하는 풍토에서 찾고, 역사적 철학보다는 체계적으로 철학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대한 소개는 졸고, 「칸트 철학 연구에서 체계성과 역사성」, 같은 곳, 3-4쪽 참조.


26) 이에 대해서는 졸저, Die Entstehung der Kantischen Anthropologie und ihre Beziehung zur empirischen Psychologie der Wolffschen Schule, Frankfurt am Main, Berlin, Bern, New York, Paris, Wien 1994, 18-19쪽의 각주 25 참조.


27) 김효중, <번역학>, 민음사 1998, 351쪽 이하.


28) 김영민,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민음사 1996, 208쪽 이하.


29) 김상봉, 「철학고전번역의 근본이념과 과제 - <순수이성비판>의 경우 -」, <철학연구>(철학연구회), 37집(1995), 344쪽 참조.


30) 같은 글, 347-351쪽.


31) 졸고 「모세스 멘델스존과 미 현상의 자율성」, <철학논총>(새한철학회), 22집(2000), 278쪽 이하 참조.


32) Johann Christoph Adelung, Grammatisch-kritisches Wörterbuch der hochdeutschen Mundart, mit beständiger Vergleichung der übrigen Mundarten, besonders aber der Oberdeutschen, 4 Bde., Leipzig 1793-1801 [Neudr. Hildesheim und New York 1970, CD-Rom 버전 Berlin(Dirctmedia Publ.) 2001]; Jacob und Wilhelm Grimm, Deutsches Wörterbuch, 33 Bde., Leipzig 1854-1984 [Neudr. München 1984, CD-Rom 버전 Frankfurt am Main(Zweitausendeins) 2004].


33) 예컨대 Adam Friedrich Kirsch, Abundantissimum cornu copiae linguae latinae et germanicae selectum, Augusta Vindelicorum[= Augusburg] 1796 [Neudr. Graz 1970].


34) 백종현, 「한국철학계의 칸트 연구 100년(1905-2004)」, 같은 곳, 43-45쪽 참조.


35) 이제까지 출판된 <칸트연구>의 주제들에 대해서는 한국칸트학회 홈페이지의 관련 내용 (http://kant.chonnam.ac.kr/intro.htm) 참조.


36) 졸고, 「칸트 철학 연구에서 체계성과 역사성」, 같은 곳, 9쪽 참조.


37) 힌스케는 “<순수이성비판>만큼 대립적인 방식으로 수용되고 이해되어 온 저서도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Norbert Hinske, Die Kritik der reinen Vernunft und der Freiraum des Glaubens. Zur Kantinterpretation des Jenaer Frühkantianismus, Erlangen und Jena 1995, 2쪽(강조 필자).


38) 이러한 맥락에서 레만은 하이데거의 칸트 해석을 “근본적으로 체계적인 해석”이라고 규정하고, 해석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한다. Lehmann, Beiträge zur Geschichte ..., a.a.O., 116쪽 참조.


39) 레만, 같은 책, 188쪽 이하 참조.


40) 힌스케는 문헌학적인 칸트 연구가 “칸트주의에 의해 고무되거나 칸트주의를 결과로 가져와야 할” 필연성이 없으므로 독립된 하나의 철학 연구 분야로서 성립할 수 있는데 반해, 칸트주의는 칸트 철학을 습득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칸트 철학의 문헌학적 전문 연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Norbert Hinske, “Kantianismus, Kantforschung, Kantphilologie. Überlegungen zur Rezeptionsgeschichte des Kantischen Denkens”, in: Neukantianismus. Perspektiven und Probleme, hrsg. v. E. W. Orth u. H. Holzhey(Studien und Materialien zum Neukantianismus, Bd. 1), Würzburg 1994, 33쪽 및 김수배, 「칸트 철학 연구에서 체계성과 역사성」, 같은 곳, 16쪽 참조.


41) 철학의 오명이 이미 철학의 출발점부터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하고 있는 문헌은 아마도 플라톤의 <국가> 제 6권일 것이다.


42) Margit Ruffing, “Kant-Bibliographie 2000”, in: Kant-Studien 93(2002), 491-563쪽; dies., “Kant-Bibliographie 2001”, in: Kant-Studien 94(2003), 474-528쪽 참조. 물론 이 숫자는 주로 서양 언어권의 자료에만 국한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