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해 그칠 줄 모르는 해리 포터 열풍을 보면, 요즘 애들 책 읽는 양상도 우리 어렸을 적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읽고 싶어도 집에 아이들이 읽을만한 책이 없어 어머니 졸라 외사촌 책들을 빌어 읽던 기억이 난다. 요즘이야 책보는 게 아이들한테는 가장 재미없는 일들 중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 컴퓨터 게임이나 플레이 스테이션 같이 아주아주 홀딱 빠지게 만드는 놀이가 있는데 누가 지루하게 책을 읽을꼬? - 우리 어릴 때야 집에서 혼자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흔치 않았지. 더군다나 장남이나 막내라면 모를까 나 같이 그 중간에 끼인 자식들에게는 생일에도 아예 어른 들 중 누구 하나 장난감 챙겨주는 분이 안 계셨다. 만약 그런 분 계셨다면 지금 찾아가 큰 절 올려라! 전화로라도 꼭 감사하단 말씀 드려라! 그때 그 울분 때문에 - 세 발 자전거 못 타보고 자란 나는 지금도 억울해서 - 우리 애 걷기 시작하자마자 무조건 세 발 자전거부터 사 줬었다. 벌이라곤 거의 없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왠지 그건 꼭 사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어서였다.
해리 포터가 과연 어떤 내용이기에 그리들 야단인가 하고 읽어보려다가 중도에서 포기하고, 이 사람 저 사람 평을 들어보고, 서평들을 읽어보니, 애들이 봐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다. 줄거리야 현실성이 전혀 없는 소년 마법사 얘기지만, 가뜩이나 컴퓨터, 비디오, DVD 같은 영상매체 때문에 빈약해질 대로 빈약해진 아이들 상상력에 - 평균 1-2초마다 바뀌는 화면은 상상이고 뭐고 도대체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 자극이 된다는 이유만으로도 권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뭣 모르고 읽었던 안데르센 동화에 비해도 훨씬 애들 수준에 더 잘 맞는 것 같다. “성냥팔이 소녀”나 “인어 공주” 같은 동화는 교육학자들도 고개를 저을 정도로 애들이 읽었을 경우 정서적 충격을 소화하기 어렵다던데 ... 사실 그때 그 기억이 하도 끔찍해 그 동화들은 지금도 돌이켜 보고 싶지 않다. 요즘 애들은 “인어 공주” 하면 장 아무개 주연의 TV 드라마나, 인어 공주가 말썽꾸러기로 둔갑한 디즈니 만화만 떠올릴테니 오히려 감사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미운 오리새끼”도 문제성이 많은 이야기이고.
꽈배기 같은 내 성격 일부도 따지고 보면 안데르센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국은 어딜 가나 애들 관련 상품엔 온통 해리 포터 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한다. 60년대 비틀즈, 그리고 최근까지 그럭저럭 맥을 잇고 있는 007 시리즈 말고는 이렇다 할 문화상품으로 별로 내세울 게 없던 판국에 느닷없이 등장한 한 이혼녀 아줌마의 기적 같은 성공은 모두를 축제 분위기에 젖게 만들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