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책은 출판계의 기대와 달리 국제적 성공을 거둔 나의 저서 Plato Not Prozac의 후속편이다.
2. 이 책의 판권을 체결한 블룸스베리 출판사는 계약 체결 당시, 나 자신이 “정치적으로 정당한”[영국식의 절제된 표현] 저자가 아니며, 이 책이 정치적 그리고 성별 내용에 대한 나의 비판적 견해를 담을 것이라는 나의 상기를 무시했었는데, 결국엔 내가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2.1 논문을 넘기고 난 후 출판사 관계자들과의 첫 미팅은 뜻밖에도 엉망진창으로 끝나고 말았다.
2.11 새로 바뀐 편집장은 제목의 “sane”이라는 단어가 “insane”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공격할, offend] 수 있다는 이유로 제목을 바꿀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2.12 난 정상인에게 일상의 삶에 관한 철학적 안내를 제공하는 일이 어떻게 정신병원 입원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그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2.13 이 같은 상황은 바로 “정치적 정당성”(political correctness)의 원칙, 즉 어느 누구에게라도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하지 말라는 원칙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2.131 이 원칙에 따르면, 만일 누군가가 당신이 한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모든 타인의 마음 상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14 하지만 offenses가 harms와 같은 것은 아니다. 전자는 후자처럼 그 의지에 반하여 타인에게 가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15 타인에 대한 공격을 두려워하는 것은 위의 둘을 혼동한 데서 비롯한 것인데, 사회 전체에 대한 검열로 막을 내리게 되며, 사람들로 하여금 중요한 물음을 제기하는 일을 못하게 만든다. 예컨대, “만일 내가 공격 당한다면 나는 해를 입은 것인가?”와 같은 물음을 말이다.
2.2 궁극적으로 “정치적 정당성”은 철학자들의 입을 틀어막는다. 왜냐하면 우리 철학자들은 묻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비록 몇몇 사람들은 질문 경청하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다.
2.3 경청하지 않는 것은 당신의 특권이지만, 질문하기를 검열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3. 편집장은 심지어 이 책의 “If You’re Offended, Are You Harmed?”와 “Can Anybody Win the War of the Sexes?”라는 두 개의 장을 삭제하길 원했다.
3.1 그 결과 원고는 제목만 바꾼 채("The Big Questions") 2002년 출판됐다.
3.2 2002년에도 “정치적 정당성”은 이미 너무 멀리 나갔었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암처럼 번져서 2020년에는 서양 문명의 모든 제도을 감염시키며 정치계 전반으로 전이되었다.
3.21 그 암은 이제 수술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뿌리를 둔 서양 문명 자체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3.3 돌이켜보면, Therapy for the Sane은 탄광의 카나리아 새 같은 저서였다.
3.31 이 저서 역시 이전 저서처럼 아직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어리석은 폭정에 굴복하지 않은, 멀리 떨어진 나라들에서까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4. 블룸스베리 출판사의 ‘정치지도국장’의 검열 시도는 대학 캠퍼스에서 매일 이뤄지는 반대 견해들에 대한 (정치적으로 부당한) 검열을 닮았고, 주요 미디어들에 의한 검열과도 닮았다.
4.1 [영국 출신 극우 논객] Milo Yiannopoulos의 저서에 대한 검열, 정치적으로 부당한 진실을 말한 교수들에 대한 해고, 전국의 급진화 되어버린 캠퍼스들에서 보수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연설자들에 대한 임용 철회, 이슬람의 테러리즘을 “이슬라믹 테러리즘”으로 부르기를 거부하는 정치적으로 정당한 정치인들 등 웃음거리들은 차고 넘친다.
4.2 이 같은 현상은 “진보적” 파시스트들에 의해 강요되고 부과되는 노골적인 전체주의 상태를 예상하게 만든다.
5. 원래 제목으로 새 출판사에서 출판된 후 여러 독자들이 내게 감사의 메일을 보내왔으나, 정신병동 입원자들로부터는 그들이 “상처를 입었다”는 단 하나의 불만도 접수되지 않았다.
5.1 아마도 좀 과도하게 열성적이었던 그 편집자들은 이 사실을 정치적으로 정당한 자신들의 파이프에 집어넣고 그 연기를 들이마셔야 할 것 같다.
※ 우리말 번역본("철학상담소", 2006)은 이 서문뿐만 아니라 본문에서도 조금 어려운 내용, 예컨대 mind-body에 관한 논의 등은 아예 번역을 생략했다. 번역 대본으로 2003년의 "The Big Questions"을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겠으나, 이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저자 자신이 대항해 투쟁해야만 했던 "political correctness" 원칙에 충실하려는 출판사("북로드")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 여겨진다. 아마도 일부 독자들이 자신의 무지함과 이해력의 한계를 한탄하는 대신 저서가 불필요하게 난해하다는 비판을 제기할 것을 배려한 선택 같다. "진중한 호기심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그 진지함을 견디지 못하는 우리 독서문화의 가벼움을 배려하고 선도하는(!)" 출판문화의 관행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