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칸트와 사형제도

Kant 2007. 8. 1. 13:29



칸트 법철학에서 ‘등가성의 원리’와 형벌의 균형 사이의 긴장관계
- 사형제도를 중심으로
1)



 

김수배


【논문개요】


칸트의 형벌 이론은 응보설로서, 개별 사례들 가운데 존립하는 범죄 외적인 경험적 조건과 결과들을 실용적 관점에서 고려하여 처벌의 양과 질을 확정해야 한다는 교화(갱생)설 내지 예방설에 대립한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 상태로부터 벗어나 시민 사회의 상태로, 즉 법적 규정과 외적인 권력에 의해 통제받는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경험”에 대한 실용적 고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 자신의 의도에 의해서이다. 이때 외적 강제의 수단인 형법이 공적 정의의 원리를 표준 척도로 삼을 경우 유일하게 가능한 형벌의 원리가 있는데 칸트는 이를 “등가성의 원리”라고 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타인에게 무고한 해악을 가했을 때 그 가해자는 바로 그와 동일한 해악을 스스로에게 행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본 논문은 칸트의 응보설이 의미하는 바는, 형벌이 위법 행위가 일어났을 때에만 그리고 그 범죄 행위로 인해서만 효력을 발생해야 하며 반드시 정의롭게, 다시 말해 범죄로 인해 발생한 해악에 정확히 상응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라는 것을 밝힌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응보설은 자주 오해되듯이 무차별적인 동태복수법을 의미하지 않으며, 형식적인 원리일 뿐 범죄의 대가인 형벌의 내용까지 적극적으로 규정하는 실질적인 원리는 아니다. 범죄와 형벌의 균형을 재는 일은 단순히 외적 사실 세계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특수한 상황의 문제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그의 형벌 이론이 살인 범죄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형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사형, 형(처)벌, 칸트 법철학, 응보설, 등가성의 원리



1. 서론: 계몽주의의 법철학과 칸트의 형벌이론



칸트의 형벌에 관한 입장은 흔히 교화(갱생)설 내지 예방설에 대립하는 응보설로 이해되고 있다. 전자의 두 입장은 형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는 경험적 조건과 결과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개별 사례들 가운데 존립하는 범죄 외적인 근거들을 실용적 관점에서 양찰(諒察)함으로써 처벌의 양과 질을 확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18세기 계몽주의 시기의 사법제도 개혁에, 특히 형법체제를 인간화시키고 인간 기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에 기여하는 법철학적 풍토를 조성했다.2)

이와는 대조적으로 칸트의 형벌 이론은, 형법체제의 개선과 인격 존엄의 존중이라는 계몽주의 법철학의 일반적인 경향에 따르면서도 칸트 자신의 도덕철학에 의거한 응보설의 형태를 취한다. 칸트는 형법을 포함하여 “타인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능력”, 즉 법(권리) 일반의 출발점을 도덕 법칙에서 찾고 있는 바, 처벌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적이나 사회적인 “유용성”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가능한 한 법의 원리에 가장 충실한 국가 체제 상태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도 이성이 우리에게 정언 명령에 의해 의무로서 부과하는 것이지, 국민들의 “복지”나 “행복”의 실현을 그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후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자연 상태에서나 독재 정부 하에서도 훨씬 더 수월하게 성취될 수 있고 또 더 갈망될 수 있기 때문”3)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상태로부터 벗어나 공식적인 강제인 법이 지배하는 시민 사회의 상태로, 즉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자신들의 권리로서 간주하는 것을 법적 규정과 외적인 권력에 의해 인정받는 상태로 들어갈 것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경험”이 아니라 이성 자신이다. 그리고 인간들 상호간의 그러한 법적 상태를 가능하게 하는 형식적 원리가 “공적 정의”이다.4)

모든 범죄는 시민 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자연 상태에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외적 강제의 수단이 형법이다. 칸트는 공적 정의의 원리를 표준 척도로 삼을 때 유일하게 가능한 형벌의 원리를 “등가성의 원리”(das Prinzip der Gleichheit)로 간주한다. 즉, 타인에게 무고한 해악을 가했을 때 그 가해자는 바로 그와 동일한 해악을 스스로에게 행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적인 정의는 어떠한 종류와 어떠한 정도의 처벌을 원리와 규준으로 삼는가? 그것은 (분동을 사용하는 접시저울에서와 같은) 등가성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만일 네가 다른 국민의 한 사람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악한 행위를 했을 경우, 너는 너 자신에게도 같은 것을 행하는 셈이 된다. 만일 네가 그 사람을 모욕한다면, 너는 너 자신을 모욕하게 된다. 만일 네가 그에게 사기를 친다면, 너는 너 자신에게도 사기를 치게 된다. 네가 그 사람을 두들겨 팬다면, 너는 너 자신을 그렇게 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죽인다면, 너는 너 자신을 죽이게 된다. (너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이야 어찌되었건) 법정에서는 오직 응보의 권리(Wiedervergeltungsrecht)만이 처벌의 질과 양을 결정할 수 있다. 이 권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규준은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 동요하기 마련이며, 또 그 경우에 연루된 다른 사정들을 고려하기 때문에 순수하고 엄격한 정의의 판결에는 적합하지 않다.”5)


이제 이러한 등가성의 원리는 구체적인 형벌의 사례 가운데 사형제도와 관련하여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가 본 연구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칸트가 형벌의 원리로 등가성의 원리를 고집하는 이유를 칸트의 이론과 대립 관계에 있는 예방설 및 교화설에 대한 그의 입장을 검토해봄으로써 드러내고자 한다. 사형제도와 관련해서도 예방설이나 교화설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개별 사례들에 내재하는 범죄 사실 외적인 근거들을 동원하여 형벌을 정당화하려는 바, 본 논문은 그러한 사례 중심의 형벌 이론에 대한 칸트의 비판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때 사형제도에 관한 칸트의 입장을 대부분의 경우에서와 같이 경직된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고 유연한 해석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칸트가 중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별 범죄 사례들과 형벌 사이에 균형을 확립하는 일이지 사형제도 그 자체에 대한 맹목적 옹호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그러한 균형을 위한 유일의 형식적 기준인 등가성의 원리가 형벌의 내용인 사형을 기계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한다.6) 그 결과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를 둘러싼 현재 우리 사회의 갈등 문제를 접근하는 하나의 새로운 관점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


 


1) 필자는 이미 “칸트 윤리학에서 원칙과 사례의 갈등 - ‘결의론’을 중심으로”, <철학연구>(철학연구회), 73집(2006), 43-60쪽에서 칸트의 도덕철학이 보편 원리와 특수 사례 사이의 갈등 관계를 ‘결의론’을 통해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조명하였다. 그 결과 칸트의 윤리학에서 보편은 보편적 인간이성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특수 사례들에게 올바로 적용하기 위해서 그 이성의 일부를 이루는 판단력을 훈련시켜야 하지만, 역으로 그 사례들이 내포하는 가치 내용에 대한 경험에 의해 그 보편적 원칙 자체가 수정되거나 아예 새롭게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는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의무와 선의 추구는 합리적 존재자의 어떠한 목적보다도 우위에 있는 것이었고, 그는 그것을 위해 구체적 사례와 행위 조건 내지 상황들 자체가 지닐 수 있는 유덕한 삶과의 관련성을 대가로 지불했다고 여겨진다. 본 연구는 이제 그러한 해결 방식을 법철학의 형벌권 논의와 관련짓고자 한다. 이때 칸트가 법적 정의 실천의 기초이자 선천적 원리인 ‘등가성의 원리’가 요구하는 바와 개별 사례에 대한 공정한 처벌을 결정하는 문제 사이의 긴장관계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사형제도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2) Maria A. Cattaneo, “Menschenwürde und Strafrechtsphilosophie der Aufklärung”, in: Reinhard Brandt (Hg.), Rechtsphilosophie der Aufklärung. Symposium Wolfenbüttel 1981, Berlin, New York 1982, 328쪽 참조.


3) <법론의 형이상학적 기초>, B202 이하. 논문에서 언급되는 칸트의 저작물들은 바이셰델 판의 원전 표기에 따르되 유고 및 강의 기록물 등은 학술원판(“AA”로 표기)에 따랐다.

4) 같은 책, B154, B192 이하.


5) 같은 책, B227 이하.


6) Höffe는 “응보의 권리가 형법의 원리로서 그 형식에 의해 여전히 언제나 유일하게 규정하는 선천적인 이념”(<법론의 형이상학적 기초>, B170, 강조 필자)이며 “내용적인 물음”에 선행하는 것이라 지적함으로써 유연한 해석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Otfried Höffe, “Vom Straf- und Begnadigungsrecht”, in: ders. (Hg.), Immanuel Kant. 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Rechtslehre, Berlin 1999, 227이하.) 국내 문헌에서도 이충진은 사형제도와 관련된 칸트 자신의 이른바 “다른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며 “성급한 결론을” 경계한 바 있다. 김석수가 Mario A. Cattaneo를 인용하며 칸트에게 있어서 사형제도의 기초인 응보설이 “적극적”으로 주장되고 있다기보다는 “이념이 요청되듯이, ‘소극적’으로 주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 것도 그러한 해석 가능성과 멀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충진, <이성과 권리. 칸트 법철학 연  구>, 철학과 현실사 2000, 192쪽; 김석수, “칸트에 있어서 죄와 벌의 관계 - Hobbes, Bentham, Hegel과의 비교를 통하여 -”, <철학>55집(1998), 160쪽 각주 45.) 그러나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대부분의 글들은 ‘칸트 처벌이론=보복설=사형제 적극 주장’이라는 일률적인 도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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Ü b e r   d a s   S p a n n u n g s v e r h ä l t n i s   z w i s c h e n  d e m  ‘ P r i n z i p der Gleichheit’ und der proportionierlichen Strafe in der Rechtsphilosophie Kants - im Hinblick auf die Todesstrafe


 

[Zusammenfassung]


Kants Straftheorie wird als eine Vergeltungstheorie angesehen, die der Besserungstheorie oder der Präventionstheorie entgegengesetzt ist. Im Gegensatz zu diesen letzteren sind es bei Kant nicht die pragmatischen Überlegungen über Tatsachen oder Erfahrungen, sondern die Absicht der Vernunft, welche die Menschen vom Naturzustand heraus in einen öffentlichen gesetzlichen Zustand einzutreten zwingt. Nach Kant ist das einzig mögliche Prinzip für die Strafe das “Prinzip der Gleichheit”, wenn sich das Mittel des öffentlichen Zwangs, d. h. das Strafrecht, die öffentliche Gerechtigkeit zum Richtmaß macht. Dieses Prinzip lautet: “was für unverschuldetes Übel du einem anderen zufügst, das tust du dir selbst an”.

Diese Studie zeigt nun, dass das Prinzip der Gleichheit kein materiales Prinzip ist, das die Strafe für ein Verbrechen inhaltlich bestimmen soll. Es besagt nur, dass die Strafe immer post und propter das Verbrechen und zwar gerecht, d. h. dem dadurch entstandenen Übel proportionierlich, verhängt werden soll. In dieser Hinsicht ist das Strafrecht bei Kant kein “ius talionis” im strengen Sinne des Wortes. Das Prinzip der Gleichheit ist vielmehr ein formales Prinzip, das das Problem der Erhaltung bzw. des Messens des Gleichgewichtes zwischen Verbrechen und Strafe für eine Erfahrungsfrage in besonderen Fällen hält. Dieser Überlegung zufolge kann man sagen, dass Kants Straftheorie nicht unbedingt an der Todesstrafe für ein Mordverbrechen festhält.


Schlüsselwörter

 Todesstrafe, Strafe, Rechtsphilosophie Kants, Vergeltungstheorie,

 Prinzip der Gleichhe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