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노화와 노인을 규정하는 시간과 공간 개념

Kant 2023. 12. 15. 11:34

일반적으로 현대 문화의 전형적인 시·공간에 관한 관점은 객관적이며 인구통계학적으로나 사회 정책적인 부문에 무리 없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널리 퍼져 있고 또 자연스럽게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시간관이나 공간관을 조금만 숙고해보면 노화 과정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됨을 알 수 있다. 우선 현대의 시간 개념은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chronometric) 시간에 그치지 않고 각 연령대의 삶의 의미를 생산성”(productivity)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태도와도 밀접하다. 우리 사회가 측정 가능한 시간을 기초로 구성원들의 삶을 억지로 분할하는, “도구적이고 계산적인 접근법만을 고착시키려 할 때, 개인이 시간 안에서 경험으로 충만되고 인간관계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능력은 극적으로 도려내어 진다.”

바아스(J. Baars)는 고령자와의 인터뷰가 당신 때는 어땠었나요?” 같은, 통상 과거에 관한 질문에 집중하는 경향을 꼬집으며 이렇게 적는다.

 

나이 든 사람도 현재를 살고 있고, 현재의 날들 또한 그들의 날이며, 그들도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조망 범위를 벗어나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인생 경로에 대해 널리 퍼져 있는 확신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 젊은 사람들과 정상성인은 전망 지향적이며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반면, 노인들은 오직 회고적 지향성만을 가진다는 확신 말이다.”

 

우리가 노화 과정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노화 관련 문제를 특정 세대 편향에서 벗어나 보다 합리적으로 다루고자 한다면, 생산적 인구와 비생산적 인구의 구분은 물론이고, “성년의 자아만을 진정한 자아로 인정하는 생애 단계 편향”(life stage bias)의 토대 역할을 하는 계량적 시간관에 대한 대안이 요구된다. 특히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노년의 자아나 어린 시절의 자아가 아니라 성년의 자아에 국한하는 태도는, 노년이 다른 사람들에게만 일어나고 다른 사람만 늙는다고 착각하는, 이른바 노년노화의 수수께끼현상을 낳기 쉽다. 제커(N. S. Jecker)의 비유에 의하면,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중년의 스냅샷속에서만 찾으려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태도를 견지할 경우, 아동연령의 아이들은 진정한 자아가 되고자 노력해야 하는 반면, 중년의 성인은 하나의 진정한 자아를 잃을 을 두려워하게 된다. 나아가 이 관점을 노령 인구에 적용하면 거기 멈춰! (Hang-In-There!) 모델, 즉 노년의 과제란 [현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노인이 젊음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모델, 그리고 아동에게 적용하면 그들을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또 생산적인] 성인으로 만들기 위한 예비 학교 모델(The Prep School Model)이 만들어진다.” 요컨대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전 생애를 진정한 개인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년주로 19세에서 64세에 한정된기간에만 그럴 수 있는 셈이 된다.

 

시간뿐 아니라 공간 경험 또한 개인의 정체성 규정과 관련해서 단순한 물리적 관점이 고려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화의 진행과 더불어 개인의 공간은 , 직장, 거리, 공원, 정원, 인도 등 다양한 환경에서 점차 하나의 방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침대, 하나의 관으로 줄어든다. 노인들의 침실은 종종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세계의 전부이자 동시에 그 세계로부터의 피난처가 된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은 함께 축소되는경향을 보이므로 노인들의 심리적 생활공간도 쪼그라든다.

 

쉬에스(C. Schües)는 현상학 계보의 철학자들에 기대어, 물리적 관점에서는 동질적인 공간 개념을 생활세계 차원에서는 공간장소”(space and place)로 구분하여 고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녀에 의하면, 인간은 그저 어떤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이 아니라 장소에 거주하는 자이기에, 별 준비나 도움 없이 자신의 집에서 나와 낯선 곳으로 옮겨가게 되면, “공간 적응성 및 친숙한 환경(spatial orientation and a familiar atmosphere)과 얽혀있는 주거지와 신체 습관을 잃게 된다”. 심지어 거주 장소가 바뀐 노인의 경우는 아예 설 자리를 잃게되기 쉽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해진 노인을 자가에서 병원 시설로 옮겨 수용하는 일이 선의에 의한 일일지라도, 그 사건 자체가 이미 실존적으로 의미심장하고 지대한 영향을 낳기 마련이다. 노인들이 병원과 요양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보살핌의 이점이 분명함에도 그들은 보통 자신들이 그곳이 살거나 거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병원은 생활과 거주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들뿐만 아니라 친숙한 공간 속의 여러 사물들과도 함께 살고 있어서, 장소의 변경뿐만 아니라 오래 사용한 물건이나 이용한 시설에 관한 상실 경험은 제3자가 가늠하기 어려운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공간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접근하다 보면 의도와 상관없이 고령자는 자신의 생활 세계로서의 공간이 폭력적으로 침해당했다고 느낄 수 있고 결국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코어스(M. Coors)는 메를로-퐁티, 블루멘바흐, 발덴펠스 등에 의거, 노화를 우리가 우리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의 지속적인 변화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체화된 자아가 몸으로부터 소외를 겪는 과정(a process of alienation of the embodied Self from the body)”, 물체(Körper)가 되어가는 몸(Leib)에 관한 것으로 이해한다. 노화와 더불어 인간은 자신의 몸이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으로 경험한다. 우리는 사춘기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지만, 청소년은 성인이 되어 가면서 자아의 재통합과정을 통해 극복하게 된다. 사춘기 청소년이 몸이 세계 및 다른 인간과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을 탐색하여 성장해가는 것이라면, 노화는 세계와 몸 관계의 상실과 제한을 통합하는학습에 관한 것으로서, 어쨌든 성숙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때 몸이 일차적으로 관계하는 세계는 생활세계로서의 공간이다. 따라서 노인의 거주 장소를 변경하는 문제는, 그 사람이 노화의 과정을 성숙한 방식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신중히 고려해 주어야 할 요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노인과 노화 과정을 수반하는 문제를 가급적 세대 편향적 관점을 벗어나 접근할 때 바람직한 시·공간 개념은 어떤 것일까? ... 

 

노화와 함께 개인의 생활세계로서의 공간이 축소되는 변화 자체를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메이(W. F. May)노인 전용 시설 디자이너들의 무거운 책임을 강조한다. 그들이 인간다운 시설을 만들고자 한다면, “노인의 몸의 지각과 그 몸이 살고 있는 축소된 세계의 모양에 대한 민감한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몸이 지니는 세 가지 의미를 배려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몸은 세계를 통제하는 도구인데, 노화는 통제력 상실에 대한 위협으로 나타난다. 이때 노인 전용 시설로의 이동은 곧 타인 구역으로의 이동이고, 이동의 충격이 기억을 공격하고, 결과적으로 기능 능력까지 저하시킨다. 그는 시설 디자인만으로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통제력의 손실과 그로 인한 수치심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 몸은 눈부신 햇빛, 와인 한 모금, 거리의 소음, 바람에 실린 향기, 주름진 나무껍질의 질감 등 오감의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쏟아지는 세계를 누리는 수단이기도 한데, 노인이 시설로 이동하게 되면 기능적으로 단조롭고 소금기 없는 환경이 이 다양한 세계의 질감을 대체한다고 한다. 메이는 물의 공식이 H2O라는 사실에 불평하며 나는 물의 정의에 약간의 해조가 필요하다고 한 예이츠를 인용하면서, “질병과 노화와 관련된 불쾌한 냄새를 건물에서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감각적인 삶에 관한 진실한 약간의 것들(a few of bona fides of sensuous life)을 노인의 방/세계에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고려해야 할 몸의 셋째 의미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몸을 가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으로 존재한다.라는 실존주의자들의 견해를 따른다면, 노화는 자기 몸으로부터의 소외뿐 아니라 공동체로부터의 분리도 수반한다. 비만으로 괴로워하는 청소년처럼, 일반적으로 노인도 몸에서 아예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몸, 따라서 그 사람의 자아는 더 이상 사랑받을 수도, 만질 수도, 안아줄 수도 없으며, 소중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렇게 노인은 자신의 신체적 결점을 불완전함이라기보다 인간(person) 전체에 대한 낙인(stigma)으로여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의 거주 공간은 몸에 대한 존중, 수치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수치심에 대한 존중, 심지어 정신 이상자의 수치심에 대한 존중까지도 반영해야 한다. 매력적인 환경 조성이 필수적인데, 특히 누군가의 방은 그 사람 몸에 대한 일종의 확장 역할을 하는 것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살고 있는 방이 매력적으로 보여야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방은 성사적인 분위기(a sacramental aura)를 풍겨야 한다. 특정한 각도로 쏟아지는 햇빛, 양탄자의 질감, 의자의 편안함 등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들이 방문자에게 의자를 권할 때, 그들은 어떤 제한된 방식으로는 자기 자신을 권하고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노인의 공간적 이동이나 환경의 변화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문제라 여겨진다. 한 인간이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장소, 그리고 그 안의 물건들은 그저 물리적인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과 그 공간에 존재하는 사물들이 당사자에게 삶의 역사와 관련해 어떠한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배려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시간 역시 현대의 지배적인 시간관에서처럼, 임의로 누락시키거나 처분할 수 있는 낱낱의 파편적인 사건들로 채워져 있고,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어떤 추상물이 아니라, 전체로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게 해주는 바탕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자의 시간관은 노인들의 현존이나 기여가 무의미하다는 판단, 그리고 그들을 그저 비용효율적인 관리의 대상에 불과한 사회적 짐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고착화할 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노화와 쇠약은 상당한 오리엔테이션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과 규칙성”(routine and regularity)이 노인들에게 특별해지는 이유다. 따라서 시간 경험과 공간 경험 모두에 관한 친숙함(familiarity)”은 노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결국 시간과 공간은 개인이 노화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다. ...

 

 

"노화 및 노년 개념에 관한 철학적 접근―자아 정체성, 시간, 공간 개념을 중심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