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counseling

로빈슨 크루소의 대조표(펌)

Kant 2007. 7. 6. 17:37
등록일 2007/2/28 (17:14)


<나쁜 것>
나는 무인도에 아무런 희망 없이 표류하게 되었다.
나는 불행하게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었다.
나는 입을 옷도 없다.

<좋은 것>
그러나 나는 물에 빠져 죽은 동료들과 달리 살아남았다.
그러나 나는 배 안에 남아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있어서 죽음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더운 곳에 살게 되어서 옷이 있다 해도 입을 필요가 없다.


사고로 휠체어를 타는 대부분 사람들은 침체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 삶의 용기를 거의 완전히 회복한다고 합니다.

상황의 변화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는 그 변화가 우리의 만족감에 미치는 영향을 자주 과대평가하곤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삶에 있어서의 긍정적인 변화나 부정적인 변화에 대단히 빨리 적응시키기 때문에, 외부의 상황들은 우리의 행복감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게 영향을 줍니다.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칠리소스의 매운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그 매운맛의 고통을 견뎌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조그마한 행복을 얻는 일은 그것보다는 더 부드러운 방법들로도 가능합니다. 예컨대 만일 우리가 포도주 향기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차이를 발견할 줄 안다든가, 어떻게 한 인간이 자신을 희생시키는가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면, 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어떻게 나의 친구가 되어 가는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또는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의 머리를 신문에 처박기 전에 1~2분 정도는 밝아오는 새벽에 놀라워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말입니다.

감정들은 신체기관이 자극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뒤에서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난다면, 우리는 놀라게 되죠.
만일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즐거워할 겁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바꾸기 원한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부딪히는 자극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극을 지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즉, 그것에 반응하는 우리 두뇌의 지각 방식.

우리의 나쁜 기분이 밝아오는 새벽을 기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좋아진 것인가요, 아니면 반대로 우리의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에 하늘의 색깔을 점점 더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인가요? 둘 다입니다.


[Die Glücksformel.: Oder Wie die guten Gefühle entstehen  중에서]

["행복의 공식"이란 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