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따리장수하던 때의 일.
대부분의 보따리장수들처럼 나도 서너 군데, 많게는 너댓 군데 학교에 강의하러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시내로 때론 지방으로 강행군을 했는데 ...
늘 그렇듯이 그 날도 지하철은 만원이어서 난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떤 꼬마 아이와 그 애 엄마, 그리고 그 애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는 좌석 앞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 녀석은 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오르락내리락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양 있어 보이는 걔 엄마는 애한테 차분히 앉아 있으라고 주의 주기를 수 차례 ... 거기까진 좋았는데 ...
날 당황케한 것은 엄마의 최후 경고 내용: “바르게 앉아 있지 않으면 이 아저씨(날 가리키며)가 ‘이놈’하고 혼내킨다” - 난 졸지에 험상궂은 아저씨가 되어 버렸다.
거긴까진 그래도 괜찮았는데 - 어차피 동네 독서실 등에서 남의 집 귀한 자식들 혼내킨 적이 많았으니까.
엄마 말 우습게 알던 고 꼬마 녀석은 급기야 창문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고는 지하철 떠나가게 울음을 터뜨렸다. 사태를 수습하려는 엄마의 행동은 이번엔 나를 황당케 했다.
엉뚱하게도 예의 그 창문틀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하는 말: “쬐이쬐이, 이 놈의 못된 창문, 왜 우리 착한 OO이 아프게 했니?”
우리 주변엔 책임질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 책임 넘한테 덮어씌우는 사람은 더 많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