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옥스퍼드의 전쟁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자신감에 넘쳐 보이는 한 동양 젊은이가 눈에 띄기에 이바구해 보니 싱가폴 학생이었다.
싱가폴에 대해 아는 거라곤 당시 수상이 ‘고척동’인가 하는 자이고(삐쩍 마른 키다리?), 과거 수상이 이광요라는 것, 규모는 작아도 국민소득이 세계 5-8위나 되는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라는 것 정도였는데...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앞으로 2-3년 안에 ‘이광요’의 아들이 수상직에 오를 것이라 했다 (실제로 그가 현재 ‘리센룽’ 수상이다.) 그 당시에도 그 아들은 권력 서열 2-3위 정도 된다는 것. 부시 부자도 대를 이어 대통령하더니만 이씨네도 그러나 싶어 혹 반대 세력은 없느냐고 물어 보니, 한 마디로 “No!”란다. 아들도 능력 있다는 것. 순간 10여년 전 이광요가 서방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 읽었던 게 생각났다.
자신의 어머니가 일찍이 과부가 되어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해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개인주의에 빠져 있는 너희 양놈들이 그러한 아시아의 유교적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겠냐는 게 그 요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싱가폴 당국은 길거리에 스프레이로 낙서하다 붙들린 미국 소년을 태형으로 처벌했다. 선처를 바란다는 클린턴의 호소를 코방귀뀌어가며. 비슷한 시기에 말레이시아 수상(이름은 잊었는데 이 친군 아직도 수상하고 있나 모르겠다)도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했었던 것 같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아시아의 한풀이식(?) 발언이 있은 뒤 불과 수년만에 외국 투자자(투기꾼)들과 미국 신용회사들이 아시아 몇몇 국가들의 달러 위기를 주도했고, 엉뚱하게도 우리가 그 최대 희생양이 되었다. 아이엠에프 발표 나고서 우리 집 앞 주말 야시장의 떡값이 졸지에 천원에서 2천원으로 두 배 오르는데... 난 아침에 밥 대신 떡을 주로 먹었는데 거참 황당하면서 정신이 팍 들더만...
이런 얘길 왜 하냐고? 다른 건 잘 몰라도 이광요 역시 대부분의 동양사람들처럼 서양의 개인주의를 “이기주의”하고 혼동했던 거 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우리의 도올 김용옥도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개인주의는 우리말의 어감 상 이기주의와 쉽게 혼동되기 때문에 차라리 “개체주의”나 “자기책임주의”정도로 옮기는 게 나을성싶다. 한 마디로 개인의 권리나 자유가 타인의 그것을 침해하지 않는 한 최대한 보호되고 인정받아야 하며, - 더 중요한 것은 - 개인은 자신의 권리나 자유를 행사하되 행위의 주체로서 그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 이게 개인주의 핵심이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난 이런 가치관 자체에 잘못된 점은 없다고 본다. 오히려 “개인 - 나”를 그야말로 확실하게 무시해 온 우리의 전통이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이규태 칼럼이 살아 생전에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주장 가운데, 우리말에는 “나”를 지칭하는 표현이 수도 없이 많은데, 그것들 거의 모두가 나 개인을 직접 지시하는 게 아니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본 나를 지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예컨대 "저, 제, 짐, 소생, 불초, 본인, 본관, 소자, 소인, 소첩... 등" ("2인칭의 경우에도 영어에는 You 하나뿐이지만 우리말에는 너, 자네, 당신, 임자, 그대, 이녁, 귀하, 어르신네 등 그지없다"). 서양 사회가 계약으로 움직이는 콘트랙트 사회인데 반해 한국 사회는 연줄로 움직이는 킨트랙트 사회라고도 했다.
이광요의 모친이 이광요를 수상으로 만들었고, 이광요 자신이 그의 아들 이 아무개를 역시 수상으로 만든 것도 따지고 보면 이렇게 철저하게 무시된 개인주의(=관계주의, 의존주의)에서 가능한 일 일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죽이 되었든 밥이 되었든 정권 교체해 가는 거 보면 그래도 한국인은 동양인 치곤 제일 개인주의적 체질에 가까운 듯한데 - 다들 잘나고 똑똑해서 꼭 자기가 정권을 잡아야만 된다고 믿는 사람들로 넘쳐나니 - 아무래도 이기주의에 더 가까운 개인주의인 것 같아 찜찜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