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etc.

말빚과 열대우림

Kant 2010. 3. 19. 20:43

오랜만에 무거운 글을 읽었다. 한 “스타” 스님의 유언과 그 파장이 그저 약간 유난스럽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오늘 읽은 에세이(미셀러니)는 차원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기웅, “위대한 절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8/2010031802001.html)
글쓴이가 유언의 가르침을 통해 꾸짖는 “말의 관리자들” - 교사, 목회자, 작가, 학자, 재판장, 출판편집자 들 - 그 범주 안에 나도 미미하게나마 포함되기 때문일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열화당”의 좋은 책들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럽다.

매스컴은 스타스님의 출가 전 모습이나 한 수녀님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발굴(?)해 가며 연일 저널리즘의 식을 줄 모르는 열기를 전하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은 깨우침을 이루고 입적한 분의 소박한 유언이 당신의 의도와 달리 너무 “위대하게” 해석되어 생긴 그야말로 “야단법석”(野檀法席)은 아닐까?  


에세이의 저자는 “말”과 “말빚”이 무엇일까 하고 묻는다. 그리고 말이 문자로 기록됨으로써 비로소 시작된 “문명인간의 역사”가 도리어 “액운”과 “야만”과 “탐욕”의 “조잡한 탁류”로 변해버린 우리 시대의 괴로움에 대해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 “연단에서나 책의 형식으로나 시장바닥에서 말을 팔며 생계유지를 위해, 치부를 위해 급급하지나 않은지 깊이깊이 생각하도록, 그분의 유언이 매서운 죽비 되어 우리의 어깨를 후려치도록 내버려” 두자며 모든 “말의 관리자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 글 쓴 분이 출판사 대표 맞나?


인세 수입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말쟁이 글쟁이들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그린 만화로만 한 해 올린 (부?)수입이 10억이 된다는 사람 이야기를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다. 하지만 인문학도이다 보니 뜻만 보고 출판업 만만하게 시작했다가 “살림살이 좀 나아지기는”커녕 졸지에 더 쪼그라든 사람들은 더러 주변에서 직접 보았다. 추측건대 오늘 읽은 에세이는 아마도 “우량서적” - 솔직히 이 말도 그렇지만, 무슨무슨 “권장도서”, “추천도서” 같은 말들도 해당 책에 대한 신뢰감을 도리어 의심하게 만드는 허사가 된 지 오래라고 본다. - 을 꾸준히 만들어 온 몇 안 되는 국내출판인의 입장에서 문명 질서를 흐리는,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사이비 출판인들을 겨냥한 일갈 같다.


하기는 그게 어디 출판사들만의 문제이겠나?


“publish or perish"라는 문구가 우리 학계에 이렇게 정언적으로 군림하던 때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요즘 대학사회에서 논문, 저서의 수가 갖는 위력은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교수는 숫자에 약하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돌 정도일까. 어떤 분은 상상을 넘는 publishing으로 주변을 놀래키는 동료를 보다 못해 “열대우림 훼손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했단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일 년에 논문 한 편 “변비 걸린 놈 뭐 싸듯” 간신히 밀어내는 나 같은 사람에겐 교수 취임 논문 이후 10년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편의 논문은 물론이고 잡글조차 쓰지 못했던 칸트에게서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이 약발도 얼마나 더 갈지 모르지만...


종교인이 평생 걸려 도달한 깨달음의 경지에서 남긴 진솔하고 절제된 유언의 심오한 뜻을 속세에 찌든 범부들이 어떻게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마는 어쩌면 절판하라는 문제의 말씀은 악화가 양화를 밀어내듯 설익은 생각과 글이 넘쳐나는, 그래서 문명이 도리어 탐욕과 야만과 액운으로 변해가는 세태를 안타깝게 여긴 그 분이 마지막으로 남기고자 한 가르침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어쩌다 운이 닿아 접하게 된 남의 생각에 감동 받고 또 도움을 받아서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사심 없이 공유하고 싶어 절대 돈 안되는 출판을 결심하는 경우는 용서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번역서의 출판 소식을 들은 나로서는, "절판하라"는 유언을 “아름다운 영혼의 말씀을 골라 그 말에 의탁하여 얘기하고 글 쓰고 엮어 책 내고, 그래도 뭔가 흡족치 아니하여 울부짖다가, 종내에는, 당신의 어리석은 탓에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며 장엄하게 떠나”며 들려주신, “소리 없는 그 어른의 '큰 말씀'”, 큰 가르침으로 들어야 한다는 에세이가 무겁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