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 사회를 "다이나믹하다"고들 한다. 추측컨대 일부 외국인 방문객들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한 것을 우리 스스로 긍정적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 아닐까? 대체로 어느 나라 사람이건 피차 외국인에 대한 편견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특히 이해 못하는 외국 언어에 접할 때면 의례 시끄럽다고 여기게 된다. 더욱이 안정되어 있다 못해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는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이라면 일단 어딜 가나 차들로 붐비고 공사현장이 즐비한 나라에서 역동적이라는 이미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싶다.
사실 역동적인 사회라는 묘사에는 공감 가는 부분이 적지 않다. 교육을 곧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전수 정도로 이해하고, 모든 분야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을 지배 원리로 신봉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기사 그 덕에 현재 우리는 유사 이래 처음 가난과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속도전에 민감한 디지털 문화에 아직까지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있는 걸 보면 다이나믹한 멘탈리티가 축복 같아 보인다.
하지만 다이나믹이라는 표현은 "개판 오분전"이라는 부정적인 해석도 가능한 말이라 여겨진다. 모든 활동이 경쟁에 초점을 두고, 또 경제활동을 단순 치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여기다 보니, 경쟁 원리나 경제 논리가 적용될 수 없는, 아니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에서까지 적자생존이라는 생물학적 원리가 군림하고 있다. 지독한 경쟁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아 무얼 어쩌겠다는 건지, 부를 창출하고 축적해서 그걸로 무얼하겠다는 건지, 논문 편수 저서 편수 부풀려 과연 무슨 문제를 어떻게 그리고 왜 해결하겠다는 건지...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을 요구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반성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인다. 세속인의 눈에는 종교 단체들마저 구원의 메시지 전달보다는 몸집과 세 부풀리는 데 집중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들도 경쟁 원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어디서 무얼 더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 어차피 경쟁해 봤자 승산 없는 나 같은 놈은 뒷짐 지고 남들 싸우는 꼴이나 즐기자. 덜 먹고 덜 싸면 되지 않나. 애들한테 약간 미안하기는 하지만... 넘들 꼴프칠 때 조깅하면 되고, 그랜저 탈 때 아이 삼십(기름값 줄인다고 스틱 알아봤더니 국내용은 생산하지 않는단다. 덕분에 특별 주문 생산한 차 타게 됐다) 타면 되지 않겠나.
이렇게 맘만 먹으면 스트레스 안 받을 줄 알았더니 역시나 한국은 스트레스 강국이었다!
신년 초부터 조교 선생 전화해 왈, "교수님 1년 해외 파견 근무신데 4일 일찍 귀국하셨으니 사유서 제출"하란다. 아니 기한을 넘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달이나 보름 아니 일주일 일찍 귀국한 것도 아닌데 사유서를? 다시 확인해보라 했다. 잠시 뒤, 다시 전화한 조교 선생 왈, "최근에 규정이 까다로워져서 꼭 제출해야 하신답니다. 타 단과대학 어떤 교수는 그거 안 내서 경고먹었다는데요. 제출하라 말씀하시면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제출할까요?"
"경고?" 이 대목에서 갑자기 뒷목이 뻐근해졌다. "경고라.. 그럼 더더욱 낼 수 없지. 경고 먹겠네." 세상에 교수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자연스런 비행 일정에 따라 귀국한 사람한테... 안 되겠다 싶어 학장님한테 전화로 설명하니, 다음 학무회의 때 이의제기할테니 이번엔 웬만하면 제출하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경고 얘기까지 들은 마당에 그렇게 할 수는 없겠다 했다.
신묘년은 경고로 시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