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Kant 2007. 9. 14. 16:35
1.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설은 덕윤리Virtue Ethics에 속한다.

1.1 덕윤리이니만큼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라는 물음, 즉 “의무”, “책임”, “권리” 등에 관한 물음보다는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 즉 “내가 어떤 삶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하는 물음을 중시한다.

1.11 이런 의미에서 그의 윤리설은 도덕적 의무 등에 관한 한 이론적 근거가 취약하다고 간주되곤 한다.

2. 그의 윤리학은 또 행복주의의 윤리설로서 목적론적 윤리이기도 함. (그러나 근대의 공리주의와 같은 결과론적 윤리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단순히 어떤 선한 결과만을 강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1 모든 윤리적 행위의 목표는 행복이며, 우리가 덕에 따르는, 즉 유덕한 행위들을 통해 유덕해지고 그 결과 행복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2.2 그리고 그것은 단기간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가능한 일이라 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 행위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①도덕적 행위자는 어떤 목표(행복)를 원한다. ②B가 A라는 목표에 이르는 수단이고, C는 B에 이르는 수단이고 ... 등의 사실을 숙고를 통해 알게된다. ③행위자는 그 목표에 근접해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특정 수단들이 지금 여기서hic et nunc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각한다. ④지금 여기서 실천 가능한 그 수단을 선택한다. ⑤문제의 행위를 한다.

(예: K는 행복을 원한다. 건강이 행복의 수단임을 알고, 운동이 건강의 수단임을 안다. 산책을 가는 것이 지금 여기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임을 지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선택하고 실제로 산책을 간다.)

3.1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이 일반적인 원리들로부터 출발해 결론에 이르는 논증 방식을 취하는데 비해, 윤리학은 결론들로부터 출발하는 것처럼 말한다. 즉 사람들이 일상적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도덕 판단들로부터 시작해 그것들을 비교, 대조, 선별하여 일반 원리들의 형식에 도달한다고 본 것 같다.

①행위 A, B, C, ... 등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 ②행위 A, B, C, ... 등은 성질 Z를 가진다. ③고로 Z를 가진 모든 행위들은 바람직하다.

3.2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들은 일반 원리들에 관해 분명한 관념이나 인식 없이도 인생 경험을 통해 어떤 행위가 바른 행위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3.21 고로 3에서 ①을 아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②~⑤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3.22 이것은 또 윤리학에서는 일반 원리의 인식(3.1에서 ③)이 중요한 것이라기보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가능한 최선의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이라는 말도 된다.

3.3 그러나 그는 행위자가 도덕적인 선택에 의해 어떤 행위를 수행하고 또 그 행위 자체만을 위해서 (즉 그것이 선하다는 혹은 고귀하다는 이유에서) 행했을 때에만 (본래적 의미에서) 선한 사람일 수 있다고 보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VI, 12, 1144a13ff.; III, 7, 1115b12ff.) [칸트와 유사!]

4. 특히 근대 이후 윤리학은 윤리적 행위가 보편(도덕법칙이나 의무)을 특수한 경우에 적용하는 문제라고 보았다.

4.1 그러나 보편이 특수에 반드시 적용되려면, 우선 특수의 속성 내지 본질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고 급선무라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는 사항처럼 보인다.

4.2 즉 우리가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데 있어서 관건은, 용감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고, 용감한 것으로 인정되어 온 것을 수행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아니며, 지금 이 상황에서 용기가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4.21 다시 말해 그것이 도전적인 행동이나 말에서 성립하는가?, 냉정하고 침착한 데 있는가?, 목숨을 거는 모험에 있는가?, 절망적인 투쟁에 있는가?, 장래를 위해 일시 후퇴하는 데 있는가? 등의 물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4.22 천차만별의 구체적인 상황들을 고려하면, 이러한 것은 일반적인 연역 추리에 의해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4.23 또 수단의 실제 효과와 기대하는 목적의 성취 사이에도 무한한 괴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간격을 (노력과 행운으로) 극복하는 데 있어 실천적 지혜phronesis가 요구된다.

5. Phronesis는 “phronein”에서 나온 단어인데, 이것은 “have understanding”,“be wise”, “think or mean”, “feel by experience”, “be well aware of”, “be in possession of one's senses(be sensible)” 등을 의미한다.

5.1 한마디로 정상적인 인간이 관찰이나 경험에 입각해 정상적이고 건전한 생각, 균형 잡힌 판단을 하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5.2 이와 유사한 희랍어 “noein”은 nous에 의한 합리적인 사고(플라톤의 경우는 예지적인 직관까지)를 뜻한다.

5.3 Phronesis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능력이 속한다.

①bouleusis(deliberation): 우리는 우리와 이해 관계가 있고 우리에 의해 그 결과가 좌우될 수 있는 일에 대해 숙고한다. 영원 불변하는 존재나 필연적인 일(자연 질서, 천체의 운동, 수학이나 논리학의 명제, 신학적 진리), 우연의 일(가뭄, 홍수, 보물찾기) 등은 숙고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인간의 nous가 관계하는 필연과 우연의 중간 영역, 즉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그 결과가 불확실하고 비결정적인 것, 목적에 대한 수단이 여럿인 경우 등에 대해서만 숙고한다.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들을 숙고한 뒤에 특정 수단을 선호하여 내린 결정이 “proairesis”)이다. 이것은 우리(인간)에게 가능한 것들 중에서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으로서 비교급의 선택이지 절대적인 선택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우데모스 윤리학> II, 11, 1228a2에서 목적보다는 수단의 선택, 즉 proairesis에 도덕성의 소재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수단 자체도 실천적 행동에서는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②deinotes(cleverness): 인간적인 좋음과 이 좋음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알고 실행하는 능력
③aisthesis(perception): 개별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의 한 사례로서 직관하는 것
④synesis(sagacity or understanding): 이해력, 양찰(諒察), 분별지. 구체적이고 개연적인 현실 상황을 목적 실현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직관하는 능력. 구체 상황에서 그때그때 문제되는 것을 분석하고 찾아내어 즉시 착수할 수 있는 일을 파악하는 것. 목적을 위한 수단에서 누락되거나 잊은 것이 없는가를 최종 점검하는 능력.
⑤gnome(judgment): 경험empeiria과 밀접하여 연륜과 더불어 성숙하는 능력. 공평한 것을 올바로 분간하는 능력. 공평한 판단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정적인 판단과 연관시킨다(<니코마코스 윤리학> VI, 11, 1143a).
⑥architektonike(architecture): 개별적인 것들의 연관을 목적 관계 속에서 기획하고 지시하는 능력(<니코마코스 윤리학> VI, 7, 1141b). 덕은 그 덕을 그 자체로 고립시켜 실현하는 데에서 성립할 수 없고, 다른 덕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실현하는 데에서 존립한다는 것. 즉 누군가가 관대함의 덕을 소유하면서 동시에 겁쟁이일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6.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순환 논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유덕한 행위를 통해 유덕한 사람이되고 결국 행복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데(2.1, 2.2), 과연 우리가 이미 어떻게든 유덕하지 않고서 어떻게 유덕한 행위를 할 수 있는가? 그는 어떤 행위에 관한 반성적 지식이나 신중한 선택 없이 그저 객관적으로 유덕한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를 시작함으로써 (예컨대 어린 아이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서 반복적으로 그렇게 행동할 때의 경우처럼, 그 자신은 왜 진실 말하기가 좋은 것인지도 모르면서 습관적으로 진실만을 말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것이 습관화되고 또 진실 말하기가 그 자체로 좋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유덕해질 수 있다고 한다. 유덕한 (따라서 행복한) 인간은 유덕한 행위를 통해 가능하고, 유덕한 행위가 어디에서 성립하는가는 (최소한 그 초기 단계에서는) 유덕한 사람의 판단이 결정한다.

6.1 그는 우리가 신뢰할만한 건축가의 지시에 따라 반복해 건물을 짓다 보면 어느새 좋은 건축가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6.2 어쨌든 그는 유덕한 행위를 올바로 수행하는 조건으로서 ①그가 행하는 것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②그 행위를 그 자체를 위해 선택해야 하며, ③그 행위가 습관화 내지는 성향화(hexis)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7.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론의 의의: 모든 가치 요소들은 그것들을 따로따로 고려해 보면 어떤 한계점을 지니며, 이 한계점을 지날 때 위험하게 되고 전제적이게 된다. 또 그 요소의 진정한 실현에는 늘 그 대립 상태가 존재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요소들의 종합에서 중용의 덕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선

부족                              악                                과도



참고문헌


St. Thomas Aquinas,
Commentary on Aristotle's “Nicomachean Ethics”, trans. b. C. I. Litzinger, O. P., Notre Dame, 1993.

Frederick Coplestone, S. J., History of Philosophy, vol.1, Greece & Rome, part 4, “Aristotle”, New York 1962.

Roger Crisp, “Aristotle: Ethics and Politics”, in: Routledge History of Philosophy, vol.2, From Aristotle to Augustine, ed. b. David Furley, London & New York 1999.

박전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서광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