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률(Goldene Regel, golden rule)과 정언명령
황금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2),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누가복음 6:31), “너에게 남이 행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결코 남에게 행하지 마라” (외경, 토비트서 4:5)
칸트는 목적의 왕국의 정식을 설명하면서 그것과 특히 셋째 버전의 황금률을 서로 혼동하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2장, B 69, Anm.) 비록 여러 제한 조건들을 달 경우, 후자가 전자로부터 도출될 수는 있으나, 이 후자는 결코 보편 법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 또 타인에 대한 사랑의 의무의 근거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더 나아가 타인에 대한 법적 책임 의무의 근거조차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친절을 베푸는 일이 자신들에게 면제될 수만 있다면, 타인이 자신들에게 친절하지 않는 것에 기꺼이 찬동할 것이기 때문이며, 범죄자도 같은 이유에서 자신을 처벌하려는 판사에게 항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타인의 이익에 대립되는 것을 원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오거나 자기 이익과 모순되는 것도 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황금률은 “[너희가 보기에] 남들이 스스로 대접을 받고자 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로 패러디되기도 합니다.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상대방의 위치에 놓는 것(易地思之)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지요. 나의 주관적인 경향성이나 타인의 그것을 근거로 한 판단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상은 칸트의 견해일 뿐이며, 기타 얼마든지 다른 해석들이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황금률은 성경의 권위로부터 주어진 명령이고, 정언명령은 모든 이성적 존재자가 스스로의 이성에 의해 (따라야 할 것으로) 파악한, 그러므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명령이라는 점도 차이점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