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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 그리고 호크니의 봄

Kant 2025. 2. 11. 03:44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는 예술비평가 게이포드(Martin Gayford)가 화가 호크니(David Hockney)와 오랜 기간에 걸쳐 나누었던 대화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우리말 번역이 나온지는 좀 오래됐는데 난 최근 어느 FM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다. 방송 작가도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원제는 Spring cannot be cancelled이니 번역서(주은정 옮김, 시공사, 2021)의 제목과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림을 잘 몰라서 그런가 책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호크니의 그림들이 별다른 감흥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무식하니 용감하게 평하자면, 그저 조금 단순한 터치로 그려낸 풍경화와 정물화가 대부분인데, 첫인상으로는 사물에 대한 표피적인 묘사에 불과하고 뭔가 깊이가 부족해 보인다. 내가 갖고 싶은 그림들은 분명 아니다. 다만 화가가 아이패드로 수선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담은 속표지 사진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연출된 모습이긴 하겠지만. 행복한 노화가! 시공사 같은 거대 출판사가 픽한 책이라니 ...ㅎ

 

게이포드의 서술에 따르면 그는 현대 화가들 가운데 "작품 거래상, 조력자 들뿐 아니라 많은 미술 애호가 대중들을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가장 핫하고 "영향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인물이란다. 하기사 같은 배를 탄 사람이라 할 수 있을 예술 전문 비평가의 썰이니 100% 내 안목의 빈약함만을 탓할 일은 아니지 싶다. 로댕과 릴케가 살았던 시공간과 달리 요즘은 예술 작가와 비평가가 상당히 가까운 사이인 모양이다. 

 

그림보다는 호크니의 말, 그리고 그것을 게이포드가 철학으로 포장해 낸 해설에 눈길이 더 간다. 

 

호크니는 건강한 생활보다는 좋은 삶을 믿는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풍요로운 삶은 온전한 의미에서 삶을 즐기는 것, 즉 주변 세계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경험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와 일치한다.  ... 현대판 에피쿠로스 지지자인 클라인처럼 호크니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커지는 절박함에서 젊은 신체에 매달리는 '영원히 젊어지려는 사람'과 거리가 멀다. 그는 W. H. Auden의 짧은 희극시 <내게는 의사가 필요해>를 즐겨 인용한다. 이 시의 화자는 '토실토실한 자고새 의사'를 원한다. 그는 결코 환자가 나쁜 버릇을 버려야 한다는 '불합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의사다. "하지만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 내게 나는 죽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예술에 즐거움의 원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원칙이 없다면 예술은 이 순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예술을 거의 소멸시킬 수도 있겠지만 예술은 여전히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은 극장 관람과 유사합니다. 여흥은 최대가 아니라 최소한의 요건입니다. 모든 것은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 적어도 즐거움을 성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6년이던가, 내가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서 그 작가 아니 작가 일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평소 내가 존경하는 모교수님처럼, "난 채식은 좋아하는데 채식주의는 싫어!" 하며 익살로 넘길 수 있는 노련함이 아직 내겐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예술에서 즐거움의 원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예술이 쉽고 즐겁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십자가 책형을 그린 그림에서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뮌헨의 알테 파나코텍에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십자가 책형 그림이 두 점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주아주 강렬합니다. 예수가 극심한 고통 속에 십자가에 달려 있고 예수의 몸을 타고 피가 흘러내립니다. 그 옆에는 붉은 색 겉옷을 입은 아주 경건한 성직자가 있습니다. 성직자의 겉옷에는 털이 달려 있는데 털이 그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한 사람은 확연하게 편안하고, 반면 다른 사람은 극도의 고통에 놓여 있고 끔찍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 작품에서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겁니다. 고통 속에 즐거움이 있죠. 예술에서의 즐거움은 단순히 꽃을 보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예술가들은 고령이 될 때까지 살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죠."

 

호크니는 예술적 차원이서 공간 탐험가이면서 공간 중독자이기도 하다. 그는 공간을 더욱더 갈망하면서도 가벼운 폐소 공포증이 있다고 시인한다.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 같은 한 점에 고정된 원근법에 대해 그가 본능적으로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보는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소실점이 고정되면 보는 사람 역시 고정된다. 보는 사람의 눈과 시선은 자요롭게 움직일 수 없다. 이 때문에 호크니는 뉴욕을 싫어한다. 뉴욕은 그리드 위에 지어진 기하학적인 도시로 하늘을 향해 모서리가 뽀족한 직사각 형태의 건물이 솟아 있다. 그에게 그것은 ... '원근법의 악몽'이다. ... "내면의 공간과 외부의 공간은 유사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우주선으로는 결코 우주의 경계에 이르지 못할 겁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곳은 머리로만 가볼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다음과 같은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모든 일이 잭을 만들었다." ... 

"매일 그림을 그리는 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생활이 맞죠. 그렇게 할 때 현재를 살게 됩니다. 화가들은 오래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젊어서 죽거나 피카소, 마티스, 샤갈 또는 내 오랜 친구 질리언 에이리스처럼 장수하며 성공을 거둡니다. 그 이유를 압니까? 그림을 그릴 때 아주 깊게 몰입하게 되어 자신의 존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추가로 얻은 시간이 됩니다."

 

"나는 어딘가에 있을 필요가 없어." 브라운은 이 말을 호크니가 작업을 하기 위해서 특별한 어딘가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실제로 수년 동안 호크니는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북아프리카 곳곳의 다양한 장소에서 그림을 그리고 드로잉을 그렸다. ... 호크니는 반 고흐가 미국에서 가장 따분한 모텔, 이를테면 털사에 위치한 간소한 1인 객실이라 해도 물감과 이젤만 있다면 갇혀 지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2, 3일 뒤 반 고흐는 입지 못할 아름다운 매혹적인 그림을 들고 나타났을 것이다. 사실 호크니의 발언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긴 했지만 실제 아를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한 것이다. ... [아를은] 요즘으로 치면 빨래방과 편의점, 자동차 타이어 할인점만 있는 지역인 셈이다. 그의 주제 중 많은 수가 19세기의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장소였다. 그는 철로 위의 다리, 철도 측선의 화물 열차, 별 특징 없는 공원, 가스관 매설을 위해 파헤쳐진 그의 작은 집 밖의 거리를 그렸다. 호크니는 반 고흐가 전원 지역을 그리러 나간 들판, 즉 웅장하고 강렬한 수화 장면에 묘사된 장소조차 사진에서는 평범하고 단조롭게 보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호크니와 게이포드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니 호크니의 작품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은 역시나 그의 인문학적 소양 ㅡ 과도하게 포장되지 않고 소박하게 드러나는 ㅡ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는 반 고흐처럼 그림 자체로 승부를 거는 화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