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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보다 걱정되는 것들

Kant 2022. 3. 22. 11:34

급기야 아내와 아들 녀석까지 확진판정을 받았다. 두어 달 전 딸애가 이미 격리시설을 다녀왔으니 온 집안 식구가 코로나를 피하지 못했다. “PCR 검사 한 번도 안 받은 사람은 인간관계에 문제 있는 거래”, 아내가 어디서 읽었단다.

첫날은 그럭저럭 지낼만하더니 둘째 날부터 평소 부실하던 허리가 아파오고 어깨, 가슴, 허벅지 온몸이 쑤셔 잠을 설쳤다. 하루 60만이 넘는다는데 이러다 119도 못 타보고 가는 거 아닐까? 다행히 48시간 정도 지나니 통증이 수그러들었다. 후각은 거의 다 잃었지만 그래도 급사는 면한 듯하다. 정신 좀 돌아오기에 핸펀 들여다보니 온통 전쟁 소식, 청와대 얘기

역사가 이따금 크게 뒤틀린 방향으로 질주하는 광기를 부린다는 거야 누군들 모르겠나마는 이번 전쟁, 난민, 사상자 보도는 가뜩이나 불편한 몸땡이를 더 힘들게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에 무지한 입장에서 원론적인, 이른바 정의로운 전쟁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순진하다 못해 사태에 대한 편견만 부추길지도 모르겠다.

 

Jus ad bellum, 전쟁에 나아갈 권리, 솔직히 100%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어떤 진보 매체는 미국과 나토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너무 성급하게 꼬드겨(?) 러시아를 불안하게 만든 게 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러시아어를 좀 배워둘 걸 그랬나 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보도들이 모두 친미 매체들뿐이라 그런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치 세력 제거를 명분으로 내걸었다는데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단다. 미국 잘못이라 한참 설교하시던 어느 선생님은, 내가 설령 네오나치 움직임이 파악되었더라도 주권 국가를 상대로 마음대로 무력을 사용하는 건 정당화될 수 없다. 딴 맘먹지 않게 평소 좀 잘 대해주었어야지 쥐어 팬다고 뭐가 달라지랴했더니 말문을 닫았다.

 

Jus in bello, 올바른 전투 수단과 전쟁 방법은?

민간인 포격과 사망 보도 역시 친미 매체의 조작이 아니라면 이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전쟁이다. 비대칭 전력(asymmetric war)을 감안하면 러시아인 전반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테러 공격이 오히려 정당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덩치 국가가 주변국을 괴롭힌 사례는 늘 있어왔고 있을 일이다. 러시아가 과거에 우크라이나에 얼마나 큰 투자를 했고, 은혜를 베풀었는지, 그래서 최근 몇 십 년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힘으로 두들겨 팬다? 걸프전에서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우크라이나의 러시아는 전 세계 젊은 세대들을 암울한 미래로 떠밀고 있다.

 

https://news.sky.com/story/ukrainian-forces-bunker-down-in-kharkiv-as-the-deep-sounding-boom-of-tank-and-artillery-fire-rings-out-12571740

 

와중에 우리는 아직도 청와대 풍수 타령이라니, 정말 모든 붕괴는 내부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맞나보다. 세종시 때도 나왔던 그놈의 풍수 얘기는 언제나 좀 안 들을 수 있으려나? 난 아직도 선거용이 아니라 정말 국가 미래를 생각해 새로운 수도가 필요했다면 통일을 대비해 경기나 강원 북쪽 어느 곳에 자리를 틀었어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두고 벙커가 준비되어 있느니 어쩌니 하는 보도를 접하니 전장 소음 체험 기억이 떠오른다. 벙커 안에서 주로 밖에 박격포탄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던 거 같은데, 그 소음은 나중에 실제 전방 지오피에서 들은 지뢰나 크레모아 소리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지뢰는 주로 고라니가, 다발식 크레모아[클레이모어]는 우리 초병께서 . 격발기 안전핀에 나무를 깎아 끼어 넣어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었지만, 후반야 초소 근무자가 졸음을 못 이겨 휘청~’하면서 짚는 힘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새벽 한두 시경 ~하는 소리는 온몸의 근육을 오그라뜨렸다. 근무 교대 후 소초장이던 분대장이 문제의 초병 대신 군기교육대를 다녀오는 전우애를 보여주었다(경기도 화성에 대한 부심이 나름 컸던 하사, 고향에서든 어디서든 복 받고 잘 살고 있기를!).

군 면제 받았다는, 나하고 동갑내기인 대통령 당선인이 혹시 벙커 소음 정도는 들어보았을지 모르겠다. 행여 당선인 대학선배이자 검사선배이시기도 한 모 정치인처럼 피탄 지역에서 보온병 들고 포탄피라 우기는 기막힌 퍼포먼스로 보온 00” 같은 별명 얻는 일이야 없겠지만, “군대는 썩는 곳이라는 발언으로 귀를 의심케 했던 통수권자의 사례도 꼭 거울로 삼길 희망해본다. 전쟁에 대한 공포는 창피해할 일은 아니다. aphobia(겁 없음)andreia(용기)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공포를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 플라톤의 말이다. 당선인이 검찰 조직에서 보여주었던 강골 이미지가 온전한 용기로 거듭나 임기 내 모든 국민이 함께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