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일기

옥스포드 31주차

Kant 2010. 8. 1. 11:18

옥스포드에 잠든 사람들을 만나다.

Wolvercote cemetery에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을 비롯해 몇몇 철학자들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마침 집에서 자전거로 15분 거리도 채 안되는 곳이니 예의상 안 들려 볼 수 없지 않은가.




평소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아예 입구부터 톨킨 안내 문구와 표지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아내와 함께 묻힌 곳은 특별할 것도 없었고 다른 묘소들보다 조금 작아 보였다. 그래도 톨킨의 묘는 누군가 놓고 간 꽃화분들도 있고 한 게 을씨년스럽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생전에 자기 돈 들여 또 지관까지 고용해가며 명당 자리 선별해 누울 곳 장만하고, 주변 압도하려는 듯 야산 자락 버겁게 만드는 사람들 자주 보아 온 터라 좀 더 초라해 보이는 건지..

숨줄 끊어지면 누군가의 기억 속 말고는 어차피 더 이상 그 사회의 구성원도 못 될 터, 땅에 대한 지속적인 처분권을 욕심 내는 꼴은 아무래도 볼썽사납다. 돌에 대한 집착은 왜 또 그리들 강한지 역시 도통 모를 일이다. 한 쪽에선 친일 행적을 문제삼는다 해도 다른 쪽에선 돌 위에 그 사람 공적 기리기 바쁘니.. 

기왕에 내친 걸음이니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묻힌 곳도 찾아 보기로 했다. 그는 옥스포드에서 활동한 철학자로서는 드물게 대륙철학을 폭넓게 다루었던 학자였던 것 같다.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모르겠단다. 한 아주머니는 자기 생각엔 옥스포드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 물어보는 게 가장 좋겠다고. 나 왈, "그 사람 옥대 교수였지만 톨킨만큼 유명하진 않았거든요."
솔직히 나도 이사야 벌린 제대로 접한 건 번역서 한 권 읽은 게 전부니까..  아무래도 "반지의 제왕"과 "비코와 헤르더"를 비교하는 건 무리지..  톨킨 책은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어느 명문대 도서관에서 "드래곤 라자"인가 하는 책(만화책?)과 대출 인기도 1, 2위를 다툰다던 책인데.. (전에 어떤 도서관장님한테 전공도서 구입 신청 무시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바로 이 대출 가능 정도가 신규 도서 구입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란다. 전국의 대학 도서관들이 그분 기준에 충실했다면 지금쯤 그곳에는 "드래곤 라자"와 유사한 책들로 넘쳐난다고 봐야겠지!) 
"반지의 제왕"은 옥대 영문과 교수가 개척한 '판타지소설' 장르의 기념비적 작품이라니 "드래곤.."과는 달리 봐야하는지..  근데 어차피 문학 작품은 다 fantasia(상상력)의 산물 아니던가?


다른 청년은 자기가 본 옥대 교수 묘가 하나 있는데 이름은 기억 못하겠다며 비석 하나를 가르쳐 준다. 가 보니 헐~ 왠 중국인 교수? 
묘지 관리인도 없고 딱히 더 물어볼 곳도 없어 돌아올까 하다 '혹시' 하고 유대인 출신 망자들을 위한 구역을 천천히 더듬어 보기로 했다. 오늘은 그래도 운이 따랐다! 이름이 좀 그렇다 했었는데 과연 유대인이 맞았다.
 

역시 별 군더더기 없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벌린의 묘소.

아쉽게도 Peter Strawson은 찾지 못했지만 법철학자였던 Herbert Lionel Adolphus Hart (1907–1992)의 이름을 찾을 수는 있었다.  정작 하르트 자신보다는
John Rawls, 또 지난 학기 옥대 특강에서 만날 수 있었던 Ronald Dworkin 등 그 제자들이 더 막강한 감이 없지 않지만.


역시 
The Queen's College의 Senior Tutor였던 (Laurence) Jonathan Cohen도 유대인 구역에서 만날 수 있었던 철학자다.



화려하고 예쁘게 치장한 묘소들 모습과 한쪽에 걸려있는 물뿌리개가 묘한 대조를..


 

. . .

카뮈에게 한끝 차이(?)로 노벨문학상을 내어줬다는 "희랍인 조르바"의 작가 Nikos Kazantzakis의 묘. 그리스 정교회의 거부로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크레타 바닷가에 묻히게 됐단다.
십자가가 영~~ 안 어울린다. "조르바"의 작품세계가 십자가하고? .. 이건 누가 봐도 매치가 안 된다. 묘비 뒤에 새겨있는 글만 보아도 빤한 것을. 누구 장난질일까?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ά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비인에서 만났던 음악가의 무덤들은 작가나 철학자의 그것에 비해 훨 넉넉해 보였다. 물론 우리나 그들이나 대개 규모와 치장은 무덤 주인공이 지니는 중량감에 반비례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반드시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위로부터: 비인 중앙공동묘지 2번 게이트 묘역(구역 32A)에서 만난 슈트라우스 부자, 브람스, 슈베르트, 모짜르트, 베토벤, 주페
 


친꿰 떼레(Riomaggiore)의 한 납골당 - 저 많은 사람들이 땅에 대한 사후 권리를 고집했더라면 절경을 뽐내고 있는 해안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