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일기

옥스포드 34주차 - "so much owed by so many to so few.."

Kant 2010. 8. 22. 00:45



8월은  어느 나라나 전쟁에 관련된 기념 행사가 몰려 있는 달인듯. 영국도 이 달 20일은 처칠이 1940년 이른바 "the Battle of Britain" 중 활약한 Royal Air Force의 pilot들을 기리고 건투를 다짐하기 위한 연설을 행한 날이란다.

"Never in the field of human conflict was so much owed by so many to so few. All our hearts go out to the fighter pilots, whose brilliant actions we see with our own eyes day after day…"

처칠이 그 당시 이미 "소수"라 불렀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아직 생존해 있는 극소수의 파일럿들이 참가한 기념 행사가 열렸단다.
징병제를 실시하지도 않는 나라지만 이렇게 군대문화를 자주 접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국에서 전쟁은 온 나라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얼마 전엔 전 수상 토니 블레어가 내달 출간될 자신의 회고록 <여정(Journey)> 수익금 전부를 군자선단체(The Royal British Legion)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600만파운드(약 110억6,000만원) 정도로 RBL 89년 역사상 최대 기부금이라는데도, 아직까지 이라크 전쟁 참여 결정의 적법성을 둘러싼 청문회가 진행 중인 가운데 나온 결정이라 그런가 영국인들의 반응은 별로로 보인다. 총리 재직 당시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롱까지 무릅쓰며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었으니...
인터뷰에 응한 한 전사자의 아버지가 서슴없이 "피 묻은 돈은 싫다"라 내뱉는 모습이 무척 안타까와 보였다. 하지만
이방인이 보기엔, 대부분 원치 않던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영국인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실망의 감정을 이제와서 블레어한테 분풀이해대고 있다는 인상이 짓다. 블레어인들 전쟁에 휘말리고 싶었을까?



그렇다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지 싶다. 현재까지 아프카니스탄이라는 또 다른 나라 전쟁에도 참전해 무려 300 명이 훨 넘는 사망자를 내고 있으니...

한편에선 현지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보도가 나가는가 하면, 다른 편에선 여전히 군입대를 권하는 티비광고가 버젓이 전파를 탄다. 19살 병사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안타까움의 표시 대신 2차 대전 중 숨진 18살 병사의 기록을 찾아 그 기록이 아직 깨지지 않았음을 전해주는 뉴스 앵커. 울부짖기보다는 좋아하던 일 하다 죽은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전사자의 부모. (어느 경찰 간부 아저씨 말이 떠오른다!) 2차대전의 영웅담이 여전히 티비 다큐의 단골 주제인 나라...


Royal Navy Ad 
 
승전국의 경험 때문일까, 내가 겪어본 유럽인들 가운데 가장 여유있고 침착한 영국인들 ("keep a stiff upper lip!").
어쩌면 그들의 핏속엔 고대 어느 제국 warrior의 피가 한 방울쯤 섞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