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주권 형성과 그 분산에 관한 홉스의 입장

Kant 2020. 5. 28. 11:42

홉스의 인간관에서 나타나듯, 그는 개인의 능력이 개개인의 자질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주어져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엇비슷하기 때문에 반드시 특정한 개인이 주권자로 선택되어야 할 결정적인 이유는 없다고 본 듯하다. 확실한 점은, 홉스 자신은 자연상태에서 어떻게 모든 개인들이 예외없이 주권의 형성에 동의하고 참여하게 되는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노예에 대한 주인의 권리와 같이 획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만들어지는 주권의 경우에는 그 주권 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인간들이 서로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지, 그들이 주권자로 선택하는 특정한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이 만든 주권자의 주권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 주권자에게 복종하게 된다.

 

다수의 인간들이 서로에 대해 또 그들의 공동의 적들에 대해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치 공동체로 결합하는 [단계를] 고려해보자. [] 그들이 해야할 첫째 일은 그들이 자신들의 목적에 다가서기 위해 [행해야 할] 어떤 무엇인가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동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 이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들 전체 무리 중 다수의 의지들[민주주의], 또는 어떤 특정한 수의 사람들 중 다수의 의지가 그 다수에 의해 규정되고 [과두제(귀족제)]로 이름 붙여지도록 허용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한 사람의 의지를 모든 사람들의 의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이라고 간주하는 것[군주제]. 이것이 행해지면 그들은 결합된 것이고 정치 공동체[국가와는 구분됨!]인 것이다.”(The Elements of Law, II, i, 2-3)

 

홉스는 위에서 보듯 정부[통치] 형태의 구성과 특정 개인을 리더로 선택하여 국가의 필수요건을 갖추는 단계에서 모든 구성원들의 동의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자연상태의 인간들이 어떻게 그와 같은 동의에 이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투표를 고려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시간 순서에 따라 고려해 보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민주제인데, 이는 필연적이다. 귀족제와 군주제는 동의를 얻을 사람들을 지명(nomination)할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아주 커다란 다수의 인간들 사이의 의견 일치는 다수의 동의로 이뤄지며, 이들 다수의 표들(votes)이 나머지 사람들의 표를 포함하는 곳에서 민주제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같은 책, II, ii, 1)

 

그러므로 홉스는 모든 정체의 선택 과정에서 투표가 불가피하다고 여긴 것 같다. 하지만 투표과정이 민주제적인 정치 결합체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다수의 표가 마치 자동으로 정체에 관한 선택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으로 여겼던 듯하다. 그러나 과연 다수 표가 실제로 주권 후보자를 선택하는 실제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투표의 필요성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리바이어던에서는 사라졌으나 암묵적으로는 등장한다. (Ch.18. 1 참조)

 

홉스는 민주제는 불안정하여 자연의 무정부상태로 되돌아가거나, 선동가 위주의 귀족제나 또는 그 선동가에 의한 군주제로 이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그는 꼭 군주제가 최선의 정체라는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였고 그것을 선호하는 근거들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공동체의 권력 분산은 그 해체로 이어질 뿐이라고 확신했다. 나누어진 권력은 서로를 파괴하게 된다는 것. 각 분산 권력들 사이에 허영심이나 자기보존 등의 이해관계가 서로 권력을 쟁취하도록 만들거나, 또는 상이한 권력들이 특정 갈등 사안에 대한 판결권의 귀속을 놓고 법적 다툼을 벌이게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 본성이 지배권을 나누어 가진 자들 사이의 조화로운 협력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 만약 평화로운 무정부(자연)상태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집단 지배 시스템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는 주권의 분산 가능성에 대한 논란과 그 부정적 결과를 목격하고 법실증주의의 방향을 선택한 것이고, 주 공격 대상은 의회론자들이었다는 점에서 로버트 필머와 유사했다. 또한 성경의 토착어(영어) 번역이 통치자에 대한 신민의 판단 권리와 정부에 대한 참여권 주장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리바이어던은 당시 영국 왕당파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신념)였다. 이 책은 유럽에서 망명 중이던 찰스 2세에게 헌정되었으나, 거절당했다. 찰스 2세와 그 주변 참모들은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절대왕권을 옹호한 홉스의 추론 방식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보존을 위해 맺은 계약으로 왕이 권력을 얻는다면, 왕의 권력은 아래로부터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홉스는 왕이 교회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집중된 권력을 가져야한다고 했었지만, 왕은 권력이 시민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홉스의 논리 대신에 왕권은 신이 부여한다는 왕권신수설을 그들의 논리로 채택하였다.] (“토마스 홉스”, 위키피디아)

 

참고 자료

Jean Hampton, Hobbes and the Social Contract Tradition, Cambridge Univ. Press,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