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ical

칸트 “윤리학적 수양법”(die ethische Asketik)의 철학상담적 함의

Kant 2021. 12. 27. 11:16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관여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할 때의 고통이 가장 큰 것처럼 생각해서 만일 내가 그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을 텐데’”라고 말하지만, 칸트는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고통이야말로 가장 마음으로 취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도덕적 사안에 관한 고통이며, 이때 우리는 자신이 행한 모든 위반 사안들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사안에 대한 비판이 나쁜 결과와 무관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칸트는 도덕적인 문제와 결부되지 않은 종류의 고통을 마음에 끌어들여 그것에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기는태도를 단순한 행위의 결여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후회를 위한 후회에 머물 뿐 개선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자학적인 후회를 경멸한다.

 

우리는 우연히 겪게 된 어떤 불행에 대해 눈물을 흘리기만 하고 상실한 것을 보충하기 위해 기꺼이 용기를 추스르지 않는 인간을 경멸한다. 벌레가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게 방관하지 말아야 한다. 가시에 찔렸을 때 그것[고통]으로 말미암아 행동하지 않을 바엔 괴로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성직자들은 회개란 자학에서 성립하는 내면의 후회이며, 아무리 오래 계속해도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후회 그 자체는 아무 가치도 지니지 않으며, 개선으로 이어지는 충동이 되는 한에서만 가치를 지닌다. 후회가 진정한 것이려면 가급적 신속하게 선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후회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자는 대단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선한 무언가를 행하라. 고통은 그렇게 하라고 네게 주어진 것이다.

 

칸트는 인간 자신이 원칙에 의해 행하는 일 이외의 모든 인생사는 기만적이고 맹목적이라면서 인간을 운명이 가지고 노는 ”(Ball)에 비유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차라리 유쾌해할 것을 조언한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상상된 해악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매사를 이를테면 독창적 측면에서 바라보며 즐거워할(launig)” 줄 아는 사람이, “남을 평가하고 사물들에게 그것들이 갖지 않은 중요성을 부여하려는 아주 엄숙한 부류의 인간들(alle gravitätische Art)보다 인간적인 삶에 더 잘 어울린다.”라고 한다. 칸트는 자주 헤라클레이토스와 데모크리토스를 비교하며, 평소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동정심을 갖고 괴로워했다고 전해지는 헤라클레이토스보다는 인간사의 덧없음에 초연했던 후자를 따를 것을 추천한다.

 

데모크리토스는 늘 기분 좋게 살았고 이렇게 말한 철학자다. ‘인생에 심각한 것이란 없다. 모든 것은 다 어린애 장난일 뿐. 괴로움에 대한 인간의 탄식은 장난감을 잃어버린 어린애 울음이다.’”

 

칸트연구 (48집), 2021, 2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