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역사가는 역사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놓고 고민하지 않는다. 적어도 철학도가 보기에는 그렇다. 역사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가 그러했듯이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들 가운데 기억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후세에 전해지기를 원하는 경험 사례들을 선택하여 기록으로 남기면 그만이다. 물론 그 기록의 대상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리고 기록하는 자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일 터이다. 헤로도토스는 그것을 “위대하고 놀라운 활동들”과 “불화의 원인” 즉 전쟁의 원인에서 찾았고, 후대의 역사가들 역시 오랫동안 그의 선례를 따랐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변하는 현상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질서나 원리적인 것을 찾는 데 관심을 가졌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의 지적 활동의 산물인 역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데 인색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눈에 비친 역사는 문자 그대로 “히스토레오”(ἱστορἐω)된 것, 즉 인식주관이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것, 또 그것들 중에서 기억하고, 이해하고, 해석해낸 것이기에 인식(경험)하는 주관의 한계 안에 있는 지식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리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철학과,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건들을 다루는 역사는 원래 인문학 안에서도 서로 대립하는 관계에 있는 두 분야였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근대 이전의 역사는 주로 영웅들의 이야기나 전쟁사를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아직 보통 인간들이 주인공인 역사, 즉 진정한 의미의 세속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철학자들이 역사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근대에 이르면 역사의 주요 대상도 전쟁이나 영웅들의 행적과 같은 위대하고 놀라운 활동에 제한되지 않게 되었고, 기후, 지형 등과 같은 자연적, 지리적 조건들이나 통치형태, 종교에 이르기까지 인간 자신의 본성적인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온갖 소재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학문으로서의 역사가 이 시기에 와서 경험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역사철학이 철학의 한 분과로서 성립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역사에 대한 철학적 반성 작업인 역사철학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메타 학문적인 방향과 역사 형이상학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 전자는 역사학의 방법론에 관한 체계적인 탐구로서 19세기에 와서야 활성화되었던 반면, 후자는 이른바 “경험적 역사”로부터 그 경험지로서의 개별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합리성을 찾아내려한 철학자들의 오래된 노력을 반영한다. 그래서 이 방향의 역사철학에서는 중세 이래 서양에서 지배적이던 종말론적, 구원사적 관점으로부터 자유롭게 역사 과정 전체의 의미, 목적, 가치 등뿐만 아니라 역사 운동의 기원과 법칙을 발견하고 그 근거를 밝히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진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양의 철학자들은 역사를 근본적으로 인간 자신의 작품으로 바라보고, 그 진행 방향과 법칙성, 과정 전체의 의미와 목적 등에 대한 사변을 인간의 자기 이해를 위한 방편으로 삼게 된 것이다. 투키디데스가 창안했고 이른바 “인생의 스승”(magister vitae)을 표방했던 “실용적” 역사가 18세기에 다시 주목받게 된 것, 그리고 인류 보편사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도 이 같은 역사철학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근대의 역사철학이 인간학적 사고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불가피한 현상이기도 하다.
여기에 모아 놓은 글들은 바로 이 현상에 대한 해석이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역사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근대 유럽의 몇몇 철학자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며 그들이 도달한 것처럼 보이는 결론들을 재구성한다. 내가 이러한 작업을 구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얼핏 보아 역사와 무관한 듯한, 독일 계몽주의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가 제시한 철학의 정의로부터 주어졌다. 볼프는 철학을 “가능한 모든 것들 그 자체에 관한 학”으로 정의했는데, 주석자들의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내게는 철학에 대한 이보다 더 명쾌한 정의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 정의의 함의는 첫인상과 달리 천착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다면적인 의도와 미묘한 성격을 드러냈고, 마침내 내게는 비코(Giambattista Vico)로부터 칸트에게로 이어지는 근대의 역사철학적-인간학적 사고를 이해하는 불가결한 단초로서 다가왔다.
볼프의 정의는 설령 볼프 자신이나 칸트가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서양철학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디딤돌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철학은 이 정의에 의해 단순히 존재자의 전 범위뿐 아니라, 사유를 통해서 비로소 대상화가 가능한 모든 대상을 자신의 탐구 대상으로 삼게 되었고 특히 그 대상을 실현하는 문제까지 모색하는 지적 시도로 간주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론에서 상론되겠지만 칸트의 선험철학은 볼프의 철학 정의가 선구한 방향을 과감하고 용의주도하게 밀고 나아감으로써 얻어진 결과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특히 칸트의 역사철학적-인간학적 사고가 더더욱 그 단적인 사례에 해당한다는 점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다시 말해 철학은, 볼프와 칸트에 의해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 즉 현상으로서의 인간을 넘어 인간의 가능성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 나아가 그 가능성의 실현을 문제 삼게 되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이 같은 의도는 볼프의 철학 개념에 대한 소개는 물론이고(제1부), 칸트의 역사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해석과 그의 인간학적, 미학적 사고 전반에 관한 이해(제3부-제6부)를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 주제와 연관해서 칸트철학이 기여한 부분을 확실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칸트 이전에 시작되었던 역사학의 “인간학적 전회” 혹은 이른바 “생활세계에로의 전회”―이 후자의 표현은 이미 1960년대부터 오도 마르크바르트(Odo Marquard) 등이 18세기 이래 독립된 학문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 세 분과, 즉 인간학, 역사철학, 미학의 공통된 성립 배경과 기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가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개관하고자 하였다(제2부). 미리 밝히자면, 2부에서 다루게 될 모두 여덟 명의 선구적 사상가들 가운데 역사관의 근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섭리를 역사인식의 도구로 해석하고, 인간학적 소질 자체가 역사적으로 규정된다는, 즉 자기 산출적 성격을 지녔다는 관점에 도달했던 비코의 인간관이 칸트의 그것에 가장 근접했던 관점이 아닌가 한다.
내가 처음으로 대학에서 역사철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던 때만 해도 그 과목이 철학과 교과목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만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채 이십 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 땅의 대학에서 철학 전공학과는 해마다 하나 둘 증발하고 있고, 그나마 아직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에서 개설되고 있는 교과목에서조차 ‘역사철학’은 점차 ‘실용성’이라는, 그 자체로는 성립할 수도 없는 가치를 표방하는 과목들에 밀려나 그야말로 역사 속으로 사라질 판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인문학 진흥법”이라는,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법안까지 마련해가며 정부와 정치인들이 인문학을 지원하겠다는데, 정작 대학 안의 인문학자들은 좌불안석이다. 상아탑 밖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자기 성찰적인 성장을 돕는 인문적 가치 그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창출해 낼 수 있는가 하는 이른바 ‘실용적 가치’, 직설적으로 말하면 ‘돈이 되는 것’에 대한 기대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시대착오적인 또는 반시대적인 작업이고 그래서 늘 위기를 먹고 사는 학문이라 해도 작금의 우리 현실을 보면, 그것이 실존의 위기를 넘어 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체계적인 도살 위기에 몰린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소크라테스와 몇 분간만이라도 대화할 수 있다면 전 재산을 내놔도 아깝지 않다면서 IT와 인문학의 결혼 중신까지 자처했던 한 미국 기업인의 레토릭 덕에 엉뚱하게 국내의 철학계가 어설픈 “대중화”, “실용화” 몸살까지 앓고 있다. 이제 인문학 진흥법까지 시행되면 이 땅의 인문학도들은 “산업화”, “사업화”의 선봉에 나서야 할 판이다.
칸트의 호모 히스토리쿠스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율적인 실천을 통하여 늘 자신의 가능성을 넘어서려는 존재, 즉 자기 초월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자기 가능성을 무한히 신뢰하고 긍정하기만 하는 개인이 아니다. 무엇보다 타자와 공감할 줄 알며, 아름다움을 관조할 수도 있으며, 미래의 인간을 위해서라면 자발적으로 자신을 한갓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는 개인이자 유(類), 즉 우리로서의 인간이다. 적어도 그는 부의 창출이나 자기 과시 이외에는 방향도 목적도 없이 천둥벌거숭이처럼 설쳐대며 “자기 경쟁”과 “자기 착취”에 매진하다가 결국 “마모”되고 “소진”되어 버리는 “성과주체”, 스스로 획일적인 삶의 논리와 질서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피로감과 우울감에 시달리기 일쑤인 이른바 “탈-근대적” 인간은 아니다.*
역사학자이자 역사 비평가인 김기봉은 역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인간을 “호모 히스토리쿠스”라 명명한 바 있다. 그는 역사를 “다차원적 구조”를 가진 “담론 형식”으로 이해하는데, “종래의 역사가들이 역사를 생산하는 일에만 전념했다면”, 자신의 관심은 “역사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라고 한다. 나는 여기서 칸트가 생각했던 호모 히스토리쿠스는 단순히 담론의 생산과 소비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담론을 통해 자기 자신의 본성을 조형해 나아가는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칸트의 인간은 이성에 의해 스스로 파악한 자신의 가능성을 목적으로 설정하여 실현함으로써 자신이 무엇임을 만들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활동과 업적을 개별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즉 유 차원에서 고려하더라도 유의미한 것으로서 인정할 수 있기 위해 그러한 목적을 의무로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나는 칸트의 역사철학을 “호소의 철학”으로 규정하였다.
*한병철(김태환 역),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2, 23, 98, 10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