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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필기

Kant 2024. 2. 29. 16:26

"김교수, 막스 셸러 'Gefühlsdrang'이란 개념 설명해줄 수 있수?"
수화기 너머 낯익은 목소리. 수년 전 이미 정년하신 어떤 선배 교수님이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어리둥절했다.
"예? 셸러요? Gefühlsdrang이라 ... 글쎄요, 들어본 것 같긴 한데,  가물가물하네요 ..."
학문에 뜻을 둔 어떤 사람이 당신께 설명해달랬단다. 
"유학 시절 오르트 교수 수업 때 셸러도 다루었었긴 한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저도 기억날만한 게 있나 한번 찾아 보고 연락 드릴께요."
 
연구실 서가 귀퉁이에 꽂혀 먼지만 맞고 있던 낡은 필기노트 묶음을 꺼내 펼쳐보았다. 
Wolfgang Orth, "철학적 인간학" 강의 기록이었다.
 

 
1990년 7월 6일 강의 내용일테니.. 큰 아이 태어나기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ㅎ.
 
"인간은 Naturwesen이다. Natur로부터 새로운 것을 herausbilden하는 Wesen이다. 
Gefühlsdrang  →  Instinkt (erste Form der Organisation der Gedächtnisse) →  assoziative Gedächtnisse {진화론적이 아니라 bestimmt한 Konfiguration이 나타남.) Tradition (Lernenphase로서 인간에게 결[여]한 것임)도 여기에 속함}  →  Intelligenz {(Phänomen der 'Aha' Antizipation), Technik도 여기 속함}   →  Geist {자신과 Umwelt와의 Distanzierung이 나타남. Weltoffenheit가 특징적임. Ideeiert* · Reduktion도 가능함.

*바나나를 하나의 바나나로서가 아니라 바나나 일반으로서 보는 것.

고로 인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distanzieren할 수 있으며, 'Nein'을 말할 수 있다. ..."
 
이렇게 씌여 있으니 뭔 소리인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정작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이 무얼 말하는지보단, 이 강의를 귀에 들리는대로 독어와 또 한글로 정신없이 써내려가던 시기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세월의 거리도 거리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할 여유도 없이 수업을 듣던 내 모습이 보이는 듯해서 왠지 짜~안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어렸었다지만, 낙천적이지도 못한 성격인데, 그 무렵 저질렀던 일들이 다시 소환되고 보니, ... 
포기, 포기, 포기만 하려는 듯 보이는, 그것도 당당하게(?), 요즘 세대는 너무 영리한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