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04/6/5 (18:54) |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 오르고, 온갖 양념과 야채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절정을 살짝 지나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마흔은 <한 웅큼 잡히는 옆구리 살>에서 시작한다. 술 취한 다음날 아침이 괴로워지고 숙취가 길어지면 마흔도 익어간다. 읽기 위해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하고 신문을 점점 멀리 보면서 마흔의 황혼기로 접어든다. 조금씩 내려앉는 잇몸, <새벽 2시의 불면증, 당혹스러운 건망증>, 우두둑거라는 어깨관절뼈 소리를 들으며 어느덧 마흔아홉이 지나간다. ... 육체는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다. ... 그러나 ... <모든 것의 궤멸은 늘 내부로부터 온다>.
...
40대가 천천히 지나가면 청춘도 지나간다. 서서히 육체의 쇠약이 팽팽한 낚싯줄처럼 감지되고, 은은한 불안이 검은 동굴처럼 다가오면, 여자와 <불처럼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인생을 드라마처럼 전환시키고 싶어하고, 마음을 누르는 이 초라한 공허 속에 긴장과 갈등, 그리고 비극적 사랑을 담고 싶어한다. <<설국>>의 주인공처럼 눈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불행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마지막으로 소설과 영화처럼 사랑하고 싶어한다. 50대가 되기 전에, <노인의 모든 특성이 나타나는 그 끔찍한 나이>가 오기 전에. 아직 젊음이 늦여름처럼 무더운 이 40대에 마지막 폭염같은 사랑으로 성년의 절정을 매듭짓고 싶어한다.
...
공자에게는 불혹의 나이였던 것이 2,500년이 지나 유혹의 나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속절없이 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나 ...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시절>이라는 점이다.
...
내가 40대의 모든 부정적인 현상을 나열하는 것은 노화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 다가가는 어두움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며,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육체적 쇠퇴가 주는 또 다른 <성숙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었다. 플로베르의 소설 <11월>에 중년에 이른 한 여인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이 꽃들처럼 싱싱함은 사라졌어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쓰라리고 자극적인 향기를 풍겼다. 분명 지나쳐 갔을 불행이 잠잘 때도 그 입가에 남겨놓은 비탄만큼 그녀를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낮이라면 머리카락을 내려 감추었을 목에 난 <두 줄기의 주름>이 그녀를 더 아름답게 했다.'
[최근 읽은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중에서. <> 안은 개인적으로 특히 공감갔던 곳. 불같은 사랑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