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게 현실이고 어떤 게 이상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대개는 이상을 지향하는 정책이 실패하고 그 댓가를 지불하기 마련일텐데, 유럽에서는 그것도 아닌 건지?
2001년 독일 사민당과 녹색당이 호기롭게 시행했던 성매매 양지화 정책이 심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2001년 당시 여당이었던 두 정당이 매춘을 합법화하고 그 종사자들에게 의료보험과 연금 등의 혜택을 허용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적 신분을 보장하고자 했던, 당시로서는 진취적이고 매력있게 평가되었던 정책이 10여년이 지난 현재 오히려 성매매 시장을 확장시키고 인신 매매를 부추키는 등 더 큰 악효과를 낳고 있다 한다.
반면 비슷한 시기(1999년) 스웨덴은 성매매를 범죄로 간주, 매춘부뿐 아니라 돈을 주고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까지 강력하게 처벌함으로써 매춘 행위를 근절시키는 방향의 정책을 폈다고. 그 결과 지하로 숨어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매춘 행위는 크게 줄어들었단다.
그러나 독일의 집창촌은 그 규모가 점점 더 커져서 아예 유럽을 대표하는 성매매 관광지가 되었다는 것. 상대적으로 성매매에 엄격한 프랑스와 가까운 자르브뤼켄(Saarbrücken) 주 같은 곳에는 기업체까지 진출하고 있다니, 돈 냄새 나는 곳이면 덕국(德國 = 독일의 옛 한자 이름) 기업도 다르지 않은 모양. ㅎ..
현재 독일에는 대략 40만 명의 매춘부들이 하루에 백만 명을 상대로 매춘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 중 불과 44명의 매춘부들(이 가운데 4명은 남성!)만이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정식으로 등록 신고한 케이스라 하니 법은 당사자들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꼴이다.
만일 매춘업계 사람들의 주장처럼 현재 독일의 성매매업 종사자들 모두가 자의로 그 일을 하는 것이라면 2001년의 합법화 법안이 그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다수의 여성들은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빈민촌의 어린 소녀들은 강제로 또 속임수에 넘어가서 독일로 들어오게 되면 이른바 “싱싱한 고기”(Frischfleisch)라 불리며 사창가에 갇히게 되는데, 이들은 밀매업자들에게 빚을 졌다는 이유로, 또는 도망갈 경우 고향 가족들에게 보복이 가해질까 두려워 매춘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
해당 국가들이 2007년 유럽 연합에 가입한 것이 이 같은 현상을 부추겼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민당조차 정책 수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하니 한때 진보적이라 여겨졌던 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불가피할 것 같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웨덴과 독일의 성매매 법 모두 양국의 페미니즘과 좌경 운동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
그러나 스웨덴의 진보주의자들은 국가가 긍정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다고 믿는 반면, 독일의 경우 (특히 녹색당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가를 자기표현에 대한 위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위협물(a hypocritical and authoritarian threat to self-expression)에 불과한 존재로 간주하여 불신한다는 것.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바로 이런 차이점만이 스웨덴 국민들이 왜 여전히 그들의 정책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며, 또 독일인들도 왜 그러한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이 기사의 이 마지막 멘트는 아직도 2차 대전 승리라는 달콤한 수면 상태(the last sweet sleeper!)를 만끽 중인 영국인들의 그들식 독일 "까기"가 아닐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