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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행동치료의 철학

Kant 2022. 12. 9. 17:21

초판의 머리글

 

인지행동치료는 현대 심리치료의 최첨단 방향에 속한다. 심리치료는 증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많은 연구를 통해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의 NICE(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linical Excellence, 국립보건임상연구소)는 공황 발작, 강박 행동, 신체 기형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우울증 및 불안 관련 장애에 대해 인지행동치료를 추천하고 있다(: NICE, 2004, 2005, 2006, 2009). 웰빙을 향상시키고 재정 지출을 줄이기 위해 고객, 즉 대중에게 비용 효율적인 심리치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관계 당국 전문가들이 이 같은 상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국 정부는 IAPT(the Improving Access to Psychological Therapies, 심리적 치료에 대한 접근 개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지행동치료 교육에 자금을 지원하는 논리적인 후속 조치를 내렸다. 연구 데이터에 따르면 매년 스트레스, 우울, 불안에 시달리는 시민들에게 국가 예산 수십억 파운드의 비용이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정신 질환으로 인한 직장 결근율을 줄이는 일도 당연히 국가 정책이 추진하고자 하는 매력적인 목표다. 효과적인 IAPT 프로그램은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광범위한 심리 장애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주요 접근 방식들 중 하나가 되었으며, 따라서 특히 영국에서는 이 접근 방식에 대한 의료 전문가 교육이 크게 증가했다. Aaron Temkin Beck 박사의 인지치료(Beck, 1976) 또는 Albert Ellis 박사의 합리정서행동치료(REBT)(Ellis, 1958)에 기반을 둔, 연수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주요 교재들은 이 치료법들의 역사적 뿌리를 간략하게만 다루고 있다. Ellis는 인지 및 인지행동 치료에 관한 다른 책들에 비해 자신의 출판물들에서 REBT의 초기 기원에 대해 자주 더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문헌들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지행동치료의 기본 철학을 훨씬 더 깊이 다루는 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Donald Robertson의 이 저서 인지행동치료의 철학은 그 이론과 철학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수천 년에 걸친 역사적 여정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현대의 인지행동치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관련 철학들과 개별 철학자들의 아이디어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현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 전에 개발되고 쓰여진 몇몇 치료 기술들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읽기에 매력적이다. 인지행동치료의 철학은 연수생이나 경험이 풍부한 인지행동 치료사 또는 합리정서 치료사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치료 접근법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고자 할 때 표준 교과서의 전편이나 속편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Stephen Palmer 교수. FAREBT(Fellow of the Association for Rational Emotive Behaviour Therapy, 합리정서행동치료협회 회원), FBACP(Fellow of the British Association for Counselling and Psychotherapy, 영국상담심리치료협회 회원). 스트레스 관리 센터 소장, 런던, 영국 20107

 

 

 

서문 철학과 심리치료

 

철학은 인간에 대해 외적인 어떤 것도 확보해 준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 삶의 기술이 다루는 주제는 각 개인들 자신의 삶이다.” (에픽테토스, 담론, 1.15.2, 이탤릭 강조는 필자의 것)

 

현대의 심리치료사들은 어째서 철학, 특히 고대 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철학자들은 어째서 심리치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오늘날 완전히 서로 다른 두 학문들이 되어버린 이들 사이에는 일종의 상호 매력이 존재한다. 사실, 그것들이 원래부터 항상 구별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대 철학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technê tou biou, 삶의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과 자주 연관이 있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쓰고 있다.

 

철학은 우리에게 말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표준에 따라 살고, 삶이 자신이 말하는 것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내적 삶이 자신의 모든 활동과 조화를 이루어 같은 색조를 보일 것을 요구한다. 나는 이것이 가장 높은 의무이자 가장 높은 지혜에 대한 증거라고 말한다. ,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과 일치해야 하며, 항상 일관되어야 한다.”(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도덕적 편지, 20.2)

 

철학은 현대 심리치료나 자기 조력 활동과 대체로 유사한 방식을 통해 언제나 상당한 정도로 해당 철학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에 관한 것이었다. 플라톤 고르기아스편의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철학은 프시케, 즉 정신 또는 영혼을 위한 의술에 비유된다. 달리 말해, 지금 우리가 심리치료라고 부르는 것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철학의 한 측면으로 명시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현대 심리학을 비판하기 위해 이 점을 지적했었다. 행동주의자 스키너(B. F. Skinner)는 언젠가 이렇게 불평했던 적이 있다.

 

그리스의 자연학과 생물학은 이제 역사적 관심사에 불과하지만(현대의 어떠한 물리학자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추천되며 마치 인간의 행동에 빛을 던진 것처럼 인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대 자연학이나 생물학의 한 페이지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마치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들의 경우는 인간 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현대적 논의를 따라가는 데 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스키너, 1971, 5-6)

 

그러나 고대 소크라테스 철학과 현대 심리치료의 관련성이 단순히 과학적 심리학 분야가 더디게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당혹스러운 징표는 아니라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람들이 감정을 관리하는 것을 돕는 데 효과적인 많은 개념과 전략이 상당히 단순하며 심지어 영구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참고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소크라테스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스키너의 책 대부분을 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와 무척 흥미로운 토론을 벌인다면 그가 논했던 것 이상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걸겠다.) 어쨌든 행동치료의 창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인 조세프 울프와 아놀드 라자루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스키너, 1971, 5-6)

 

현대의 행동 치료사는 자신의 치료 작업에 그 학습의 원리를 의도적으로 적용하는 반면, 경험적인 행동치료는 아마도 문명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리라. 인간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어떤 일을 행했을 때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일이 인간의 삶의 특징이 되었을 때부터, 어떤 사람이 자신의 병에 대해 불평하는 경우가 있었고, 어떤 행동 방향을 조언하거나 설득하는 다른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이것은 행동 그 자체가 치료제로 여겨졌을 때마다 행동치료라 불릴 수 있다. 고대의 글들은 이러한 행동치료의 넓은 개념에 일치하는 무수한 행동 처방을 포함하고 있다.”(Wolpe & Lazarus, 1966, 1-2)

 

실제로 고대 문헌은 행동 인지 치료법을 모두 처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현대 인지행동치료법(CBT)에서 발견되는 것 중 일부와 현저한 유사성을 지닌다. 이렇게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주제들의 역사와 관련해 정설로 받아들여진 지혜를 재고함으로써, 우리는 철학과 심리치료 둘 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나는 이 같은 내용을 다루게 될 넓은 제목 하에 자기 조력개인 발달같은, 고독한 추구라고 불릴 수 있는 활동까지 포함시킨다.

 

· 철학자들은 현대의 증거 기반 심리치료가 어떻게 친숙한 철학적 지혜의 실용적인 적용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 심리치료사들은 현대 치료 모델과 자주 일치하지만 상대적으로 무시되어 왔기 때문에 놀랄만한 새로운 실용적인 기술, 전략 및 개념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 뿐만 아니라, 치료사들과 철학자들 모두 그들의 전문직에 관한 기존 이론과 실천이,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위치에 대한 더 큰 철학적 비전의 틀에 적합하게 될 가능성을 발견하거나, 심지어 그들의 전문적 활동에 일치하는 전체적인 삶의 방식을 만날 수도 있다.

 

고대의 철학적 치료 기법들이 RCTs(randomized controlled trials, 무작위 대조 시험)에 기반하지 않았던 것들이고, 그러한 종류의 직접적인 경험적 지지 근거를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으리라. 어쩌면 심리치료에서 증거 기반 치료를 지지하는 현대인들은 이 같은 사실을 불편해 할 수 있다. 나는 이를테면 계시록 이전부터 사용되던 치료법을 선호하기 위해 경험적으로 뒷받침된 치료법이나 원칙을 포기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나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현대의 심리치료는 이미 고전 철학의 특정 측면들에서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공통적 기반은 고대 문헌에서 다른 개념과 기법을 도출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으며, 그것들은 또 적절한 시기에 경험적으로 테스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적 치료의 기원들

 

다수의 현대(modern) 심리치료사들은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최초의 심리치료사로 여기는 듯 보인다. 이 주제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 사람들은 프로이트의 시대에 [이미] 피에르 자네(Pierre Janet), 폴 뒤부아(Paul Charles Dubois) 같은 경쟁자들이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단기간이기는 하지만 최면 심리치료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장 마르탱 샤르코(Jean-Martin Charcot, 1825-1893)의 살페트리에르(Salpêtrière) 강좌와 히폴리테 베른하인(Hippolyte Marie Bernheim, 1840-1919)낭시 의대”(Nancy school) 같은, 당시의 선도적인 두 센터에 다녔었다.

 

현대의 심리치료는 19세기 말경 최면치료를 주도하던 학파들을 중심으로 연합하기 시작했다. 최면 심리치료 자신은 정신분석보다 반세기 빠른 1841년 시작되었는데, 스코틀랜드 외과 의사 제임스 브레이드(James Braid)가 처음으로 메스머리즘(Mesmerism, 오스트리아 의사 프란츠 메스머[Franz Anton Mesmer, 1734-1815가 고안한 최면술]을 임상 치료에 사용하였고 그것을 스코틀랜드 현실주의(“상식주의”) 심리철학으로 재해석했었다. 브레이드는 특히 생명 자기론”(Lebensmagnetismus = animal magnetism)이라는 [메스머리즘의] 초자연 이론을 연상, 습관, 공감, 암시 등과 같은 심리학적 법칙으로 대체하였다. 이것이 대략적으로 말해 내가 과학적 의학의 한 분과 영역으로서 현대의 심리치료의 기원을 바라보는 관점이다(Robertson, 2009).

 

물론 심리치료적 임상실천이 어떤 방식으로는 훨씬 더 오래된 목회자 상담이나 종교적 상담 또는 고해 성사에 관한 신학적 개념을 닮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수의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 접근법이 교조적(doctrinaire)이라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현대 심리치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유사성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제한한다고 생각한다. 몇몇 치료사들은 고대 오리엔트에서 낭송(chanting)이나 명상(meditation) 같은 실천법이 일종의 심리치료적인 목적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자주 이국적인 상징성과 종교 사상에 은폐되어 있어서 우리 문화에게는 불가해하고 낯선 것들이다.

 

심지어 유럽의 역사에서도, 다양한 저자들이 단편적이고 단기간이기는 하지만, 모호한 자기 조력 기법들이나 관조적 훈련법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괴로운 마음을 안정시키는 법을 찾다가 우연히 그런 방법들을 발견했던 것 같다. 신학 문헌, 세속적 자기 조력법, 철학, 전기, 소설, 시 등에서도 치료를 위한 충고들, 개념들, 심지어 심리학적 훈련법까지 발견될 수 있다. 약간의 적절한 예들만 들어 보자면,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치유(Remedia Amoris = Remedies for Love),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Exercitia spiritualia = Spiritual Exercises),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De consolatione philosophiae =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 몽테뉴와 베이컨의 에세이, 스피노자의 윤리학, 러셀의 행복론(The Conquest of Happiness), 토머스 울프의 소설 완전한 남자(A Man In Full) 등이 있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심리치료로 알고 있는 것의 뿌리를 훨씬 더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아볼 수 있다. 심리치료에 관한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기 이전인 아마도 선사시대까지 올라가서 말이다. 현대의 심리치료, 특히 인지행동치료(CBT)는 우리 시대의 가장 현대적인학파의 이론인데, 소크라테스 주변의 비공식적인 철학 서클에서 유래했던 고대의 치료 전통의 일부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BC 5세기 아테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크라테스적인 철학의 다양한 학파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치료적 방향을 취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스토아 학파, 특히 후기 로마 학파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주치의였던 갈렌에 따르면,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들 가눙데 한 사람인 크리시포스는 철학자의 역할을 영혼을 돌보는 의사라고 강조했다. 그것은 결국 오늘날의 심리치료사를 말한다(Sellars, 2003, p.68).

 

현대 심리치료의 다양한 학파들 중에서도 CBT는 소크라테스 철학 일반 그리고 특히 스토아 학파와 가장 강력한 유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CBT 형태 치료는 아론 베크의 인지치료적 접근법에 의존한 것들인데, 이것의 방법은 느슨하게 이해된 소크라테스적인 질문 방법을 모방한 것이었다. “인지치료는 주로 소크라테스적 방법을 사용한다”(Beck, Emery, & Greenberg, 2005, p.167) 우리의 초점을 좀 더 좁혀가면, 에픽테토스의 스토아 철학과 CBT의 주요 선도자였던 알버트 엘리스의 합리정서행동치료(REBT)가 아마도 고대와 현대의 심리치료의 전통들이 가장 가깝게 만나는 두 사상적 학파들일 것이다. 아마도 이 두 학파들 사이에는 고대와 현대의 전통 사상들의 교류가 일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가교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시작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철학자와 심리치료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우선, 고대인들이 했던 것과 현대의 치료가 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대체로 그 범위(scope)에 있지만 꼭 배타적으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철학은 더 광범위한 어떤 것에 대한 갈망(a craving)에 답한다. 그것은 사물의 본질을 통해 그것의 전체를 포용한다. 그것은 현대 심리치료의 머리를 들어 올려 우리 주변의 광활함을 바라보게 하고, 심지어 아마도 소크라테스와 스토아 학파가 실제로 추천했던 것처럼 시간과 공간의 전체를 바라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 생각에는 심리치료사가 심리치료사로서의 경력의 어느 시점에서 씨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더 커다란철학적 그림이다. 치료사가 고객과 헤어져 직장에서 집으로 향할 때, 밤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그들은 어떤 것들에 대해 자문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치료가 무엇을 의미하며 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상담실의 불이 꺼지고 밤새 문이 잠겨 있는 동안 진실은 상담실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확산되고 성장하여 삶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사물 전체를 물들여야 하는가? 치료사는 신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치료사는 신의 부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치료사들은 삶 자체를 무엇이라 여기는가? 조용히 명상하면서 그들 자신이 치료용 침상에 눕거나, 자신들의 사업 밑천이라 할 수 있는 지적 도구를 사용하여 자신과 우주 자체와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생각하려고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심리 치료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들은 많은 전문 심리치료사의 마음을 확실히 휘저어 놓아야 하는 철학적인 물음들이며, 적어도 철학이 대답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물음들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철학적 실천”(Marinoff, 2002)이라고 불리는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카페 같은 학술 기관 외부에서 철학을 홍보하거나, 준 치료 스타일의 개별 상담 또는 그룹 세션 형식으로 자신의 삶의 문제에 철학을 적용하려는 다른 시도가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학계의 많은 철학자들조차 철학적 담론이 실제 적용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단순한 학술적추구가 아니라, 그 담론에 상응하는 행동 및 감정적 변화에 뿌리를 두고자 했던 시대로의 회귀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인들은 이상적인 철학자를 마음의 진정한 전사, 헤라클레스 자신과 유사한 영적인 영웅으로 생각했지만, 헬레니즘 학파가 소멸한 이후로 철학자는 좀 더 책벌레 같은 존재, 그러니까 전사가 아니라 한낱 마음의 사서(librarian)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제임스 본드 스톡데일

 

제임스 (또는 ”) 스톡데일은, 만일 플라톤이 오늘날 다시 살아난다면 학자보다는 권투 챔피언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는, 언젠가 잉글랜드의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을 언급한다(Stockdale, 1995, p.17).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만일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현대에 살아 있다면, 그가 소개받고 싶어 할 사람은 아마도 스톡데일 자신일 것이다. 스톡데일의 이야기는 현대인이 고대 스토아주의를 통해 역경을 어떻게 직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로서 여기서 언급할 가치가 있다.

 

"196599일 나는 조그만 A-4 비행기를 타고 500노트의 속도로 [적의] 대공포망을 향해 나무 꼭대기 높이로 날아갔다. 조종실 벽은 3피트 정도의 폭도 되지 않았는데, 불이 붙자 난 조종할 수 없었고, 제어 시스템이 발사되었다. 조종실이 분리되고 난 다음 30초 동안이 내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고, 난 곧바로 눈앞에 보이는 [북 베트남의 어느] 작은 마을의 주도로에 낙하하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아래에서 [포로가 되어] 적어도 5년 동안 지내겠구나. 테크놀로지의 세계를 떠나서 에픽테토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지 뭐.'"(Stockdale, 1995, p.189)

 

 

스톡데일(1923-2005)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시작하자마자 15명의 마을 폭도들에게 붙잡혔다. 그들은 그를 거의 죽도록 때렸고 다리를 부러뜨려 영구적인 불구자로 만들었다. 그에게 나쁘지만은 않았던 아이러니는, 그 역시 불구자 노예였던 에픽테토스처럼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스톡데일은 스탠포드 대학의 철학 석사 과정에서 에펙테토스의 고대 스토아 철학서 엔키리디온을 열심히 읽었었다.

 

스톡데일은 북베트남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하노이에 수감되었으며 그곳에서 미 해군 최고위 장교이자 적군 영토 상공에서 비상 탈출한 유일한 비행사령관으로서, 포로로 잡힌 400명이 넘는 병사들 집단을 책임지게 되었다. 스톡데일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베트남 포로 수용소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Hao Lo 또는 하노이 힐튼으로 불렸던 대규모의 공산주의 감옥의 일부인, 오래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그 감옥이 일부는 정신과 진료소, 일부는 [정신] 개혁 학교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범죄자들과 함께 수용되었던 미국인들은 고문 전문가들과 교도관들에 의해 끊임없는 심리 재프로그래밍 작업을 받아야 했다. 그는 전쟁 포로로서 7년 반을 지냈는데, 그중 4년은 독방에 격리되어 있었고 2년은 족쇄에 묶여 있었으며 이른바 줄잡기로 알려진 방식으로 15번의 고문을 받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게 '스토아적인 삶의 장점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을 갈고리로 낚아채어, 의무감을 부여하고, 도덕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신을 강요하여 그들의 의지에 굴복하게 하려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고대인들이 제공해 준 고상한 조언들의 패키지다.' 나는 강탈 고문 감옥에서 처음으로 그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난 계속해서 '그것은 그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당신의 정신을 꺾는 사람들에 맞서서 당신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유지하는 공식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Stockdale, 1995, p.177)

 

 

Donald Robertson, The Philosophy of Cognitive-Behavioural Therapy (CBT): Stoic Philosophy as Rational and Cognitive Psychotherapy, 202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