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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이론들이 공유하는 특성

Kant 2022. 12. 3. 16:30

환자의 증상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증상을 해소하기 위한 의식이나 절차(ritual or procedure)를 처방하는 논리적인 근거, 개념적 도식 또는 신화(a rationle, conceptual scheme, or myth)의 역할

우리가 심리치료 이론들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라는  용어를 선택한 이유는, 그 이론들이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신화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1) 심리치료 이론들은 반복적이고 중요한 인간 경험의 이미지를 사로잡는 명료한 진술들로 이뤄어져 있으되 (2)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 치료가 성공을 거두면 그 사실이 (때로는 잘못으로) 이론적 타당성의 증거로 간주되는데 반해, 실패하면 설명을 통해 해명해 버리면 그만이다. "어떤 형태의 치료도 그것이 유니크한 치료적 장점을 갖고 있다는 주장과 더불어 시작하는 않는 경우란 없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형태의 치료도 폐기되지 않는데, 그 실패조차도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한 어떠한 치료 학파도 그 구성원들이 경험적 발견을 통해 그 이론의 논리적 근거가 틀렸다고 확신하여 자발적으로 해체한 적이 없다. 프로이트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신화의 창조자였는데, 그 자신이 프로이트 학파의 본능을 "우리의 신화학"이라고 서술했을 때 그는 문자 그대로 보면 옳은 주장을 한 것이다.

 

치료적 근거들과 절차들은 그들의 특별한 문화가 가진 지배적인 세계관과의 연결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이게 된다. 중세 때는 치료적 상징물들이 기독교 신앙과의 유대로부터 그 힘을 획득했었다. 비-서구 사회에서 행해지는 토착 치유 의식들은 그들의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우주론에 의존하는 일이 불가피했다. 신화적이거나 종교적인 이론들에 기반하는 심리치료들은 결코 그 이론들에 대한 지지자들에 호소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현대 미국에서는 과학에 대한 믿음이 상징적 치유력의 두드러진 원천을 공급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배적인 치료학파들의 지지자들이 참가했던 어떤 심포지움은 이 같은 주장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증명해 주었다. 각 학파들은 과학을 상징하는 내용들로 발표를 시작했다.  한 학파는 해부학 도표들을 보여주었고, 다른 학파의 팀은 다원적인 추적 기록물(polygraphic  tracings)을 제시했으며, 셋째 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하지만 각 사례들의 도입에서 사용된 소재는 정작 발표된 치료법에 대한 설명과는 무척 빈약하게만 연결되었다. 

 

어떤 학파들은 자신들의 이론과 과거의  명망 있는 인물들과의 --- 프로이트, 융, 아들러 그리고 이들의 제자들; 조금 더 최근으로는 B. F. 스키너, C. 로저스, M. 에릭슨 --- 연결점을 통해 설득력을 보장받고자 했다. 위에서 마지막에 언급된 두 명의 이름은 심리치료 분야에서 적어도 과학이 그 화려한 매력을 상실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자신들의 주장이 지니는 설득력을 철학자들의 작품 위에 세우는 실존 치료 이론들은 이 같은 트렌드를 더 또렷하게 보여준다. 

 

누군가는, 사기 저하(demoralization)에 대항하려는 의도로 고안된 치료법의 근거란 희망을 고취시키는 데서 성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종교적 기반을 가진 모든 치료 이론들은 초자연적 힘의 유익한 개입을 초대하기 위한 의식들을 도입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대부분의 미국 심리치료 이론들의 기초에 놓여 있는 근거들도 인간 본성에 관한 낙관론적인 철학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이론들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선하다는 주장을 암시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공격성, 잔인함 그밖의 좋지 못한 행태들은 일반적으로 과거의 상처, 좌절, 손상을 남긴 환경상의 우연적 요인들에서 비롯한 것들이다. 이 이론들이 주도하는 심리치료들은, 환자들의 자의식을 증가시키거나 장악력을 고취시키거나 또는 개인의 안전감을 증강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그들을 그 같은 경험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고 주장한다. 이 치료들이 공유하는 목표는 개인들이 그들을 가로막고 파괴하는 감정들과 행동들을 극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더 충만되고, 더 만족스러우며, 사회적으로 건설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유럽에서 수입 된 다수의 심리치료들은 --- 특히 정신분석적 치료나 실존 치료 등의 여러 형태들 --- 인간의 본성에 대해 좀 더 비관론적이다. 그럼에도, 임상실천가들은 여전히 그들의 이론이 대단히 낙관론적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인간 정신을 본질적으로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의 전쟁터로 바라보며 궁극적으로 타나토스가 승리한다고 보는 프로이트의 관점은, 유쾌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치료적으로 보면, 정신분석은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신념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 진리는 프로이트의 신이었다. 진리에 대한 과학적 탐구로서의 정신분석은 인간이 무의식의 기본적 충동에 대한 이성적 통제력을 획득하게 하고, 그 결과 자신을 해방시켜 사랑과 일에서 사회 친화적이고 자기 실현적인 목표들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고 여겨진다. 

실존주의 계통의 철학들은 실존의 본질적 무의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심리치료가 기반하는 세계관들 가운데 가장 비관론적이다. 하지만 실존주의자들은 이 우울한 조망에 영웅적인 변형을 가하는 데 성공한다. 이들은 치료를, 어떤 개인이 목적에 대한 감각 그리고 인생의 의미 문제와 씨름할 수 있게 해주는 절차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환자와 치료사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며 이들 모두에 의해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수단으로 믿어지는 의식이나 절차

절차는 치료적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치료사의 영향력을 전달하는 운반도구(vehicle)로 작용한다. 그것은 또한 치료사가 일련의 특별한 기술들에 대한 장악력을 과시함으로써 자신감을 강화할 수 있게 해 준다. 최면, 긴장 이완, 감정 홍수 등은 치료사가 환자의 주관적 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는 절차들로서 치료사의 능력을 인상적으로 증명해 보여준다. 

 

치료 의식의 기능에서 자주 그리고 쉽게 간과되는부분은, 그것이 환자가 자신이 겪고 있는 증상이나 고충이 사소한 것이었다거나 또는 어떤 이면의 동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도 그것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체면 유지 방식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의식이 더 장관을 이루면 이룰수록 그것이 제공하는 체면 유지력은 더 강력해진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증상의 완화를 특별한 개입 전략 탓으로 돌리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절차는 그저 환자가 다른 이유들로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자신의 증상들을 포기할 기회로서 기여한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이기에 후자의 이론들에 좀더 냉혹한 판단을 내린 듯한 인상을 주긴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책]

 

Jerome D. Frank & Julia B. Frank, Persuasion & Healing 중에서